2026.2.21. 토요일
요한복음 7장 1-13절
- 믿지 않는 형제들의 재촉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러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 아직 이르지 않은 예수님의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평가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중에서 수근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
사람이 누구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더욱 나의 형제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정하고 믿을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같이 동거동락한 형님을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도 부모와 형제들에게 자신을 소개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형제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할 큰 일, 좋은 일을 하시려면
숨어서 하지말고 밖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옳지 않냐고 질문한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니 적절한 때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신다.
물론 형제들도 다른 유대인처럼 해방자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형제들의 질문에 구지 변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신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아시는 예수님은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명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은
지난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시던 예수에 대하여 궁금해 한다.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 이번에 어떤 표적을 행하시려나?
예수님을 평가하면서 좋은 사람, 무리를 미혹하는 사람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주님
저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믿어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주님을 따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보거나 직접 말씀을 듣거나 표적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도들이 전해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이 말씀 통해 하나님을 더 분명히 알고 확실히 믿어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성령님 오늘도 내 안에 충만히 내주하셔서 나를 통치하시고 질서 가운데 지배하여 주소서.
자존심 때문에 나의 은퇴 문제를 결정하지는 말자
나의 판단과 결정보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자.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끄시는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자.
성령님
하나님의 일하심의 때를 기다리면서
섣불리 나의 어떠함으로 나의 때를 결정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침묵과 기다림의 지혜와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성령님보다 앞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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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때를 따라 ]
초막절이 되어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세상에 존재감을 과시하자고 부추기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따라 결정하십니다.
(1-2, 6-8절)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어진 길을 걸어가십니다.
형제들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라고 종용했지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표적이나 환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완성될 구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의 기회를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며 '지금'이 적기라고 주장하지만,
주님의 때를 벗어난 선택은 결국 나의 영광을 추구하는 길일 뿐입니다.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걸음입니다.
(7절)
세상의 악을 악이라 말씀하셨기에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빛의 숙명입니다.
세상이 미워할지라도 빛은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도리어 책망합니다(엡 5:8,11)
진리를 말하는 용기를 통해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자랍니다.
우리의 입술과 삶이 악을 감추거나 합리화 하지 않고
어둠을 책망하는 등불이 되게 해야 합니다.
(9-10절)
"올라가지 않겠다" 하셨지만,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세상의 시선 속에서 영광을 구하는 행보가 아니라
가만히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드려진 순종의 걸음이었습니다.
(2-5절)
예수님의 형제들은 세상의 무대에서 성공을 꿈꿨습니다.
초막절의 예루살렘은 명성을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적기 적소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예수님을 채근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믿음이 아니라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이름으로 성공을 포장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결과를 앞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원대한 비전'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11-13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수근거림이 가득했습니다.
각기 다르게 평가했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아무도 주님을 담대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합니까?
세상의 때를 따라 영광을 얻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순종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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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 아님에도 은밀하게 올라가시는 예수님 ]
찬송가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이 말씀 속에 오늘 예수님께서 취하신 행동의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계속 일으켜 주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주님을 공격합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어 예수님을 증오합니다.
심지어는 육신의 형제들까지 공격에 가담합니다.
보내신 이의 영광만을 구하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내신 이가 정한 때가 아직 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
불만을 토하다 못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의 영광을 위해 봉사해 주지 않는 것 때문에 미워합니다.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는데 감이 익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꼴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미리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십니다.
왜냐하면 미리 알려주실수록 예수님은 그 때를 잘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때를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때는 부지불식간에 닥치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미리 알려주실 경우 인간이 꾀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미리 알려주면 잘 준비하는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고 요령을 부리는 것으로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때를 알려주시지만 우리에게는 때를 알리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중에서 예수님은 뜨거운 긍휼의 마음으로
철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는 무엇이든 하려고 애쓰십니다.
아직 영광의 때가 아니어서 영광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제약 속에서도
어떻게든 복음의 영광, 영생의 생수를 보여주고 맛보게 하려고
노심초사 애쓰는 예수님이십니다.
아직 때가 아님에도 혼인 잔치가 엉망이 되면 낙담하게 될 연약한 인간들을 위해
몰래(?)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2장).
명절에 올라가지 않을 것처럼 하시고는
때가 아님에도 명절 중간에, 명절 끝날에(37절) 은밀하게 올라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영광의 맛보기라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십니다.
지금 때가 코앞에 닥친 인간들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때가 바로 눈앞에 닥쳤는데도
무지하여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 때문입니다.
오늘 밤 그 인생을 결산해야 할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그렇게 욕심만 부리고 있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서 그러십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5절)'고 한탄하시며 그렇게 하십니다.
이런 예수님 때문에 내게 소망이 있습니다.
결코 냉정하게 내치지 않으실 예수님 때문에 내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이 인간에게
때를 놓치지 않도록 갖은 방법을 다하여 권면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말씀으로 경계하시고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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