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23. 월요일
요한복음 7장 25-36절
- 출신 논란
예루살렘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욌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 아버지에게서 오신 예수님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 체포 시도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에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근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실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두 번째 이유는 신성모독이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나셨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입으로 진실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2000년이 지난 나에게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보다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감사할 일이다.
만일 내가 그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이 말씀이 쉽게 이해되고 믿어졌을까?
젊은 날에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말씀을 듣고, 표적을 직접 보고,
따라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은 그렇지 아니하였다.
본다고 듣는다고 다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다 이해하고 안다고 믿어지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은혜로 주어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믿어지는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주님
내가 성경 말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감사합니다.
성령 하나님,
예수님이 하늘 아버지에게서 오셨고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우편에 앉아계심을 믿습니다.
또한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이 믿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더 친밀한 교제 속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오늘도 이른 아침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앉습니다.
가르쳐 주시고 깨닫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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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에게서 났다 ]
예수님의 육신적 기원을 근거로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나고 오셨는지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28-29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육신적 기원만으로 예수님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말씀입니다(1:14).
간접적인 교육이나 훈련이 아닌 친밀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계신 유일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그에게서 낫고 그가 나를 보냈셧다"(29절)고 말씀하신 것이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14:6)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30-32절)
때를 주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표를 따라
십자가에 들림받아 죽으실 때(3:14),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13:31),
승천하여 아버지게로 돌아가실 때입니다(13:1).
세상은 그때가 이루어지기까지 예수님을 잡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때에 완전히 성취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오늘을 사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33-36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다시 아버지게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보내신 분에게 돌아가셔서 아들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무리는 흩어진 헬라인에게로 간다는 말로 이해했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전해질 것이니,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맞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25-27절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신비롭고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부모와 자란 곳을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태초에 있는 예수님의 근원과 성령을 통한 신비로운 출생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잘 알고 있다는 섣부른 판단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는
다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친밀히 교제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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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계시는 예수님 ]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어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여기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한 무지에 더해
메시아가 어디서 오시는지는 몰라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롯의 참모들은 성경의 기록을 연구하여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알아내었는데,
성경에 가장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시는지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몰라야 된다고 생각하며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착각한 자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는 그들의 말은
얼핏 보면 겸손한 말 같지만 사실상 교만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미리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만큼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어디서 어떻게 오실지를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수도 있고 모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하나님 마음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실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다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조금도 알지 못한다고...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들이 나를 안다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안다고 하지만
사실상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으니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릅니다.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자기’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 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어디로, 어떻게 보내시는지에 대해 알 턱이 없습니다.
이들의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때가 아니심에도 명절 중간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조금만 더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더 이상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을 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찾아도 다시 만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계셔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아직 하늘의 깊은 것을 맛보지 못하였지만,
표적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도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니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많이는 몰랐지만,
조금 알게 된 것으로 예수님을 좇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31절).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다 알고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100% 확신해야 예수님 믿는 것도 아닙니다.
적은 지식, 51%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진 자에게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면 하늘로부터의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잘 모르던 자들이 믿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금 더 계시면서, 조금 더 보여주시고 조금 더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다 알려주고 다 보여줄 길을 확실히 완성하신 후에야 떠나가실 것입니다(30절, 33절).
예수님에 대해 다 안다고 자부하던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스스로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잘 모르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의 일정, 하나님의 일정은 이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님,
안다고, 교만하게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귀담아 듣겠습니다.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귀를 귀울이겠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하는 무식한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말씀을 계속 더 들려주셔서 믿음의 진보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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