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나는 세상의 빛이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25. 07:00

2026.2.25. 수요일

요한복음 7장 53절 - 8장 20절

 

-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 간음한 여인에 대한 기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예수님의 판결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에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 정죄하지 않으시는예수님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참된 증언 논쟁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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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 대한 기소와 판결의 사건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은 유명하다.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해소되지 않은 궁금점이 있다.

왜 저들이 갑자기 양심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들도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을까?

예수님은 땅에다 두 번이나 쓰신 글이 무엇이었을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동일한 죄인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주님, 오직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의 영역임을 기억합니다.

남의 허물과 약점과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늘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무교절 성전을 밝히던 불들을 보시고   

주님은 자신을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다.    

그러자 증언의 참과 거짓을 가지고 시비를 걸어 온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았더라면 이런 시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눈에 들어 온다.

'나를 알았다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성부 하나님을 눈에 보인 성자 하나님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보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주님

빛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당신을 날마다 더 깊이 친밀하게 알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주님을 더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나의 모든 어둠을 물러가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어둠이 사라지게 하소서.

오늘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온전히 통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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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상의 빛이라 ]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며 자비를 베푸십니다.

이어 "나는 세상의 빛이라" 선포하십니다.

 

(1-6절)

인간의 함정을 넘어 자비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끌려왔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시고, 침묵으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성급한 정죄를 막고 은혜의 공간을 마련하는 가장 깊은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인간은 돌을 들지만 예수님은 손을 내미십니다.

정죄보다 자비를, 폭로보다 회복을 택하시는 그분 안에서 죄인이라도 희망을 발견합니다. 

 

(10-11절)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새 생명의 길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은혜와 정의가 맞닿는 지점,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주님의 용서는 허락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죄를 덮는 맹목이 아니라, 새 삶으로 이끄는 부르심입니다.

그분의 자비는 죄에 무딘 우리를 일께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12-20절)

어둠을 가르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초막절 불빛이 타오르던 여인의 뜰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그 선언은 교훈이 아니라 존재의 외침이었습니다.

그 빛은 단죄가 아니라 생명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빛을 두려워했습니다.

율법의 그림자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빛은 드러내어 정죄하는 빛이 아니라,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이끌어 자유케 하는 빛입니다. 

우리가 그 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 안의 모든 어둠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7-9절)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돌을 쥔 손들이 하나씩 돌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이 많은 자부터 떠난 것은, 오래 산 만큼 자신이 죄인임을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을 정죄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남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제 어둠을 밝히시고 정죄 대신 자비를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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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언하시고 명령하시며 보증하시는 예수님 ]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가 정죄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결코 착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를 둘러싸고 돌로 치려했던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부족한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자를 정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앞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몰랐었는데, 예수님 앞에 서니까

자신들도 그 여자에 비해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리가 여자를 정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여자를 용서하시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조건 비슷한 것을 달아서 용서하셨습니다.

‘이번엔 용서해 준다. 대신 앞으로는 죄 지으면 안 돼. 알았지?’

다시 죄 지으면 용서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조건이 아닙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신 것은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죄를 사하는 권세를 행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것은, 

그분에게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게 만드는 의의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행사하시며 이 의의 능력도 함께 베풀어 주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명령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주'로 고백하는 여자에게 이미 의의 능력을 주셨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따를 것이 확실한 그 여자가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능히 범죄하지 않을 의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죄 사함을 선언하시고 범죄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참됩니다. 

주님이 사함을 선언하시면 사해진 것입니다. 

주님이 범죄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으면 범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보증이시며, 

또 다른 보증으로 성령님을 보내어(고후 1:22, 5:5) 

생명의 말씀이 항상 우리 안에 흐르게 하셨습니다(38절).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증언을, 예수님의 권세와 명령을 보증하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인간들이 시비를 겁니다. 

아무 증인도 없이 혼자 하는 주장을 누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예수님의 증언이 참 됨을 보증해 줄 사람 증인을 내세워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 증인을 내세우지 않습니다(5:34). 

내세우려 하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례요한이 예수님 앞에 와서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5:33). 

그러나 인간의 증언이 하나님의 존재와 신뢰성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만이 알려 주실 수 있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인간이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하고 증언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모순입니다. 

피조물이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는 증언이나 분석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유용합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창조주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해내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자력으로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 신의 수준은 피조물 이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신’은 창조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신 자신의 증언이 진실됨을 증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우리가 예수님의 증언을 믿게 해 주는 근거가 됩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언제나 조금의 불일치도 없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 거짓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은 결코 삼위일체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수 없으십니다. 

거짓은 반드시 불일치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 짜인 거짓말도, 몇 번의 대질 신문을 거치면 파탄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신 삼위 하나님에게는 그런 파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예수님의 명령과 증언이 참됨을 믿습니다.

주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선언하시고 명령하시며 보증하여 주신 생명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먹고 마시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고,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믿음에 이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