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본질과 비본질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21. 21:31

2026. 2. 22. 주일

요한복음 7장 14-24절

 

- 아버지의 교훈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 율법과 안식일 논쟁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이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 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두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안식일 문제이다.

율법의 정신은 망각하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 하는 유대인들의 한계를 말씀하신다.

자신의 가르침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이 교훈은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강조하신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보기 보다는 보이는 사실만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때가 많다.

교육도 받지 않했는데 어떻게 글을 아느냐는 식의 생각은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유한한 인간의 상식과 지식으로 평가하는 한계와 모순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진리 앞에서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마음보다 따지고 들려는 습성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리 앞에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순종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주님

성령께서 내 마음을 온전히 주장하셔서 주님의 말씀 앞에 열린 마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잘못 판단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없게 도와 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게 하시고 정확하게 분별하도록 가르쳐 주셔서 진리 앞에서 겸손하게 하소서.

 

오늘도 당회를 진행하면서 안건의 핵심을 잘 파악하게 인도하소서.

 

 

-------------------------------------------

[하늘의 교훈, 땅의 오해 ]

 

예수님은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시며,

외모로 판단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 판단하라고 가르치십니다.  

 

(14-18절)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십니다.

유대인들은 제대로 배우지 않은 예수님께는 율법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가르침의 출처가 하나님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율법 기관이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배워 전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곧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기에 틀리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받은 말씀을 말과 삶으로 옮겨야 합니다. 

 

(21-23절)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했다며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본래 뜻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안식일에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율법 준수이듯이,

예수님이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안식일 제도에 담긴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비의 실현이었습니다.

율법의 글자에 매인 자들은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규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율법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완성한 것입니다.

 

(24절)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나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과 마음을 보십니다.

공의로운 판단은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않으며,

차가운 법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진리를 분별합니다.

이 공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19-20절)

유대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지만, 마음으로는 외면했습니다. 

율법을 소유하고도 율법을 거스르는 모순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알고 신앙을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아는 지식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우리를 참된 믿음으로 이끕니다.  

 

말씀이신 주님을 매일 묵상하며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

[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
찬송가 262장 날 구원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습니다.

내 욕심과 내 입장을 고려하는 마음이 끼어들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잘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애써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고 하신 17절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정말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분별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하시게 한 일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세밀히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애매해서 발생하는 불순종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 그런 경우를 만났다면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확실해질 때가지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기의 욕심과 권위, 체면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규례의 권위에 집착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을 폭로하십니다.

안식일에 할례 받는 것에 대해 아무 거부감이 없는 것을 보면,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님을 유대인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일을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은, 오히려 안식일에 장려해야 할 일입니다.

안식일 계명에서 강조된 안식은, 

나 혼자만의 안식이 아니라 이웃을 안식하게 하는 안식이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식일은 

내가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이웃을 안식하게 해 주는 날입니다. 

[신 5: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가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권위가 훼손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에만 골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율법에 세부 조항을 추가하여 그것으로써 사람을 얽어매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자기들의 권위를 지키는 도구로만 율법을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라고 하십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내 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서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의를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실상입니다. 

이 죄를 이기는 비결은 예수님을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밥으로 매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내 속 사람이 예수님의 체질로 바뀔 때 죄를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늘도 노심초사하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애쓰십니다. 

명절 중간이라도 올라오셔서 가르치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우리를 도우십니다.

말씀이 잘 소화되고 우리 몸에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38절).

끊임없이 주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만드십니다(요 14:26).

주님, 죄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시고,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만드시옵소서. 

'믿음의 일'을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내 안에 깊은 곳까지 비추시어 죄를 들춰 내시옵소서. 

욕심과 교만, 거짓의 죄는 밀려나고 

내 안에 주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가득채워지기를 원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