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들을 줄 알아야 믿는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28. 07:40

2026. 2. 28. 토요일

요한복음 8: 42-59

 

- 유대인들의 소속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내가 하나님께게로부터 나왔음이라 .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예수님을 매도하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는 이가 계시니라.

 

-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네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느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신 예수님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겉도는 대화는 계속된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다.

믿지 못함은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마귀의 자식으로 마귀에게 속하여 거짓말쟁이 마귀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참 진리를 전하여도 듣지 않고 믿지 않는다 하신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이나 귀신들로 자로 예수님을 매도하자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공경하시는데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자신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못하리라 하신다.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분간하지못하는 유대인들은 이해불가능하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알고 전하는 말씀은 진리이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대답하신다.

 

아브라함도 자기를 보기를 고대하여 보고 즐거웠하였다 하자

육신의 나이로는 천년도 넘은 시대에 살았던 아브라함을 소환하자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죽이려 한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믿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는 말이 맞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정함을 입어 영적으로 살아나야 영적인 이야기들이 귀에 들리고 믿어진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들을 줄 모르니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믿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살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말씀들을 듣고 믿고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성령님 더욱더 신실하게 믿어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들을 귀를 주시고 영안을 열어주셔서 보고 듣고 깨닫고 믿게 인도하여 주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관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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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에서 오신 말씀 ]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하는 이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모욕하고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42-47절)

예수님을 믿는 듯하다가 금세 마음을 돌려 그분을 죽이려 한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단언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께서 보내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니의 말씀을 거부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태초부터) 진리를 거스르고(창 3:4)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창 4:8)' 마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결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48-50, 54-55절)

모욕과 조롱 속에서도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부르고 귀신 들렸다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높이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자신을 높이는 바벨의 길(창 11:4)에서 떠나

하나님이 높이시는 순종의 길(창 12:2)을 걸으며, 그곳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51-53절)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3:16).

이는 육체의 죽음을 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약속입니다(11:25-26).

주님을 믿는자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문입니다. 

 

(54-59절)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고, 아브라함을 지으셨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언약(창 12:1-3)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때를 바라보며 기뻐했지만(갈 3:16),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한 유대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을 들었습니다. 

혈통적 교만과 종교적 확신이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근거 없는 교만과 그릇된 신념은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세상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시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영원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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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세우기 위해 먼저 부수시는 예수님 ]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자기 영광, 자기 욕심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아무 잘못도, 악도 꼬집어 발견할 수 없음에도 예수님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편에 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꺼려하고 나아가서 예수님을 핍박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정면으로 지적하십니다. 사정없이 공격합니다. 

심지어 마귀의 자식이라고 욕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정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러실까요? 

교육학이나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빵점짜리 선생님입니다. 

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만 하십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말씀들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짓밟을 뿐만 아니라 잘난 체는 혼자서 다 하십니다. 

‘나는 진리만 말하는 사람이다(45절). 내가 잘못 말한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말해 봐라(46절). 

아브라함이 나를 공경하였고 다윗이 나를 주라 불렀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음을 알고 계십니다. 

배척하고 무시하며 죽이려 하는 대적들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이적만 행하시고 좋은 말씀, 도덕적인 권면만 하시면 인기 있는 선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장소, 해야 할 시간에 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거짓된 짓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피해 가지 않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몰려온 군중들은 오히려 피하셨던 예수님께서, 

핍박받는 상황은 피해 가지 않으십니다. 

입 다물고 계시지 않고 진리를 계속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왜 교육학적으로 전혀 효과가 없어 보이는 말씀을 반복하십니까? 

예수님의 목적이 교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으로는 생명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래에 속한 자가 위로부터 태어나려면 교육이라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래를 버리고, 아래를 떠나서, 위로 소속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육으로 되지 않습니다. 깨부수고 버리는 것으로 시작될 뿐입니다.

자신이 마귀의 자식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나님께로 소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소속을 바꾸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함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영접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인이 없이는 믿음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정없이 깨부수십니다. 

새롭게 세우기 위해 먼저 깨부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복입니다.

‘은혜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이 왜 꾸짖는 말씀을 하실까?

심지어 왜 저주의 말씀을 하실까?’

고민하는 데서 소망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주는 부담감과 거북함을 직시하는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며 함량 미달의 선생님이라고 치부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로 몰아세우면서, 

예수님을 무시해 버리면 문제가 진짜 심각해집니다. 

생명의 문제, 구원의 문제는 

덮어버리는 것으로, 예수님을 돌로 쳐서 눈에 보이지 않게 해 버리는 것(59절)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나의 마음을 직시하겠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라고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주님께 내어놓겠습니다. 

주님께 해결책이 있음을 믿고 문제를 지적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시선을 계속 두겠습니다(51절). 

어리석은 욕심, 미련한 욕심이 깨지고 부서질 때까지 진리의 말씀을 계속 들려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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