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4 수요일
요한복음 10장 1-21절
- 목자와 강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 청중의 무지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 양의 문이신 하나님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선한 목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생명을 버리고 다시 얻는 권세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상반된 반응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증언 중에
예수님이 직접 자신을 나타내신 말씀이 7가지 소개된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는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고 하셨다.
밤에 양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양의 우리이다.
그리고 그 문을 지키는 자가 양의 문지기이다.
양이 정상적으로 들락거리는 것은 양의 문을 통해서다.
목자가 이 문을 통해 양을 들이고 내고 하며 양들을 불러 꼴을 먹인다.
양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받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올 때이다.
이 양의 문이 구원의 문이다.
이 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선한 목자라 하신다.
양들이 위험할 때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기 양들을 돌보는 자가 참된 목자이다.
삯꾼 목자는 위험에 처할 때 양보다 자기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겨 도망한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다 알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잘 안다.
이 목자와 양의 관계를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로 설명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내가 예수님을 아는 관계도 이와 같다.
나를 아시는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다.
이 예수님이 다시 목숨을 얻으시고 자기 양들을 찾아 오실 것이다.
주님
주님이 양의 문이시고 선한 목자이심을 믿습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위험에서 구원하여 주시며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저를 아시는 주여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도 저를 아실 줄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 그 날에 저의 이름도불러주시옵서서.
성령님 이 선한 목자를 믿고 따르며 알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오직 양이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출입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통하여 출입하고 살아가며 주님의 음성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
---------------------------
[ 목숨을 내어 주는 사랑 ]
예수님은 자신을 양이 생명을 누리기 위해 드나드는 '양의 문'이자
양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는 '선한 목자'로 소개하시며,
거짓 목자와 참 목자를 분별하는 기준을 알려 주십니다.
(1-2절)
도둑이나 강도와 달리, 문을 통해 양의 우리에 들어가십니다.
문이 아닌 데로 넘어가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기에
편법을 쓰는 바리새인들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문을 통해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행동에는 숨은 동기가 없습니다.
맑은 유리 같은 투명함, 이것이 참된 목자의 자세입니다.
(3-5절)
양의 이름을 부르며 오랜 시간 관계를 쌓고,
신뢰와 친밀함 속에서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이로써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기쁘게 따르게 하십니다.
삶으로 신뢰를 주지 못하면 양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일 뿐임을,
말만으로는 양이 따르는 목자가 될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규범'을 내세우는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이 우리 목자가 되시는 방식은 '관계'와 '신뢰'입니다.
(6-10절)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양들이 문을 통해 드나들며 양우리의 안전과 초원의 꼴을 누리듯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라는 문으로 출입할 때, 우리 삶에 참 만족이 찾아옵니다.
삶의 모든 출입을 예수님을 기준으로 결정할 때,
살 만한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11-16절)
양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삯꾼과 달리
목숨을 버리기까지 양을 사랑하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과 양의 관계는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처럼 순전한 사랑입니다.
삯꾼의 계산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순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향한 이리(죄와 죽음)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 내고 죽으셨습니다.
또한 계산하지 않는 사랑으로
잃어버린 양들을 찾고 계십니다(참조 마 18:12-14).
(17-18절)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고 다시 얻으시는 일,
십자가에서 희생하고 부활하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기 생명을 바칠 수 있었고,
자기 생명을 온전히 비움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채워지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기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목숨 버리신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르며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
[ 둘째 아담의 선언 ]
찬송가 189장 진실하신 주 성령
맹인 이야기가 양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좀 뜬금없어 보입니다.
맹인 이야기가 끝나고 무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맹인 이야기의 배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21절이 확인해 줍니다.
예수님은 맹인처럼 길을 잃기 쉬운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자신만이 양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듯이,
예수님은 길 잃은 양의 참 문이시며 참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게 하는 길잡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종으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나타내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드러내시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종의 모습으로 있으면서 아버지의 왕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가 왕이 되는 길로 슬며시 빠지는 자들은
절도요 강도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1, 7, 8절 말씀의 뜻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양의 목자시라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우리에 대해서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왕의 권세를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으로 확보하셨습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가진 자를
양의 왕으로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태초에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첫 아담에게 두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언제나 하나님이 진짜 왕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게 하신 계명(창 2:17)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창 2:24). ‘하나’의 의미는 곧 사랑입니다.
두 가지 계명은 사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을 다하여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왕으로 모시면,
그 왕께 속한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이신 하나님이 언제나 하나(=사랑)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하면서 서로 나뉘어 반목을 계속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아담은 이 계명들을 잘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잘 고백하는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대리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왕권을 주신 것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인간의 왕권의 근거는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가 하나님께 왕권을 받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곧 이 고백을 철회합니다.
하와는 더 이상 그에게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나는 너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왜냐하면 너는 곧 내 몸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는
참 아담, 참 왕,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당당히 선언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창 2:24절의 명령(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은
사실상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겨냥한 명령이었습니다.
이 둘째 아담, 참 아담의 고백으로 인간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에베소서 5:31-32]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참 왕이신 둘째 아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는 작은 목자의 사명
곧 셋째 아담, 넷째 아담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임마누엘의 은혜로 계속 말씀하여 주셔서
우리의 눈을 온전히 밝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를 분별하고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은혜를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영, 예수님의 마음을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죽음을 이기는 권세가 누구에게 있는가? (0) | 2026.03.06 |
|---|---|
| 믿어지는 은혜 (0) | 2026.03.05 |
| 영적 눈 먼 자 (0) | 2026.03.03 |
| 진실을 말하여야 할 때 (0) | 2026.03.02 |
| 진흙, 실로암, 빛 (1) | 202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