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9. 월요일
요한복음 11:38-46
-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
이에 에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믿음과 영광에 관한 재확인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무리의 믿음을 위한 감사기도
돌을 옮겨 놓으니 에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나라로를 살리신 에수님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배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물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믿음과 고발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
현장에 있던 제자들과 마리아 가족과 조문하러 온 유대인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죽은 자가 온 몸이 수의에 싸인 채 걸어 나오는 모습이라니 ....
자기 눈 앞에서 생생히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기적 앞에서
놀라움과 충격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도 이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보다는
바리새인에게 고자질하는사람이 왜 생기는 것일까?
이렇게 하셔야만, 이런 표적을 보아야만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인가?
보지 않고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믿음인지 생각한다.
주님은 마르다에게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다.
믿는 자만이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나오라"는 명령에 순종해 걸어 나와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돌을 옮기고, 걸어 나오고, 믿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주여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죽은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주, 생명의 주,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성령님,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나사로를 살리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게 해 주소서.
순전한 믿음을 주소서. 의심치 않고 믿는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대로 행하고 실천하게 인도하여 주소서.
나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믿게 하시고,
지금까지 믿고 살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믿음 끝가지 잘 지켜가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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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옮겨라, 영광을 보리라 ]
예수님은 시신이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는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오라"고 명령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십니다.
(38-40절)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기라 하시고,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난다며 만류하는 마르다에게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는 경험적인 사실에 근거해 죽음을 받아 들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체념하지 말고 믿음으로 영광의 새 역사를 기대하라'고 요구하십니다.
현실이 무덤에 갇힌 것 같아도 주저앉지 않고,
영광을 나타내실 주님을 믿으며 단념의 돌을 치우는 것입니다.
(41-42절)
성부 하나님과 늘 소통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시기에
굳이 소리 내어 기도하실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둘러선 무리'가 믿게 하려고 공개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선교적인 목적을 위해 행동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언행에도 타인의 믿음을 도우려는 배려가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43-44a)
'나사로야 나오라" 하는 예수님의 외침에
나사로를 묶었던 죽음의 결박이 끊어지고,
그가 살아서 무덤 밖으로 나옵니다.
'부할이요 생명'(23절)이신 예수님의 음성이 생명력이 있기에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5:25).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10:10) 부할의 나날을 삽니다.
말씀을 펼쳐 듣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죽음의 흔적들을 제거합니다.
(44b)
살아난 나사로가 자유롭게 다니도록 그를 묶고 있는 것을 풀어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신 사람이 온전히 그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든 고난이든 그 어떤 이유로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45-46절)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어떤 이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부활의 세계를 거절하고,
바리새인 중심의 옛 질서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와 함께 나오지 못하고,
무덤 같은 옛 세계에 남은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일하시는 생명의 능력을 믿고 체념의 돌을 치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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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더해 주시는 예수님 ]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예수님은 마르다, 마리아 자매와 그 집에 모인 무리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 위해서 작품을 만드십니다.
먼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있는 믿음은 온전한 지식의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세계와 영생의 신비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했으며
그래서 계속 오해를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다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수준으로 해석하고 재단하여 그들 나름대로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 마리아가 참 잘한 것이 있습니다.
온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최소한의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무덤 쪽으로 오라는 예수님의 명에 순종했습니다.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마리아를 데리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11:28절).
마르다의 집에는 조문객이 아직 많이 있었습니다.
상주인 마르다와 마리아 모두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께로 오라는 명은 순종하기 쉽지 않은 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매는 순종하였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에도 또 마찬가지로 억지로(?) 순종합니다.
온전히 믿지 못해서 처음에 토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명하시니 군말 없이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명백한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 최소한의 믿음이 이 자매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최소한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굳이 소리내어 기도하지 않으셔도 되고,
심지어는 나사로를 일으켜 달라는 기도 자체를 할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권한과 능력으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명령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하나님께 간청의 기도를 하시며,
또 그 기도를 주위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하십니다.
그 이유는 둘러선 무리, 순종하는 무리가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42절).
최소한의 믿음으로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는 복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순종하는 자에게, 자상한 배려를 통해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이 순종과 그 결과를 똑같이 듣고 본 자들도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45절).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심지어 믿음이 생기지도 못합니다(46절).
믿음은 단순한 인지와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며,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고(살후 3:2)
예수님의 양에게 허락된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그러합니다.
이 믿음 확실히 갖게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썩어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리며 애를 쓰셨습니다(39~42절).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순종하는 믿음을 발휘할 때,
최소한의 순종으로 기다릴 때,
더 큰 믿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순종에 힘쓰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순종을 낳고, 순종은 더 큰 믿음을 낳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주 예수님, 제게 계속 믿음 더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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