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 3. 10. 화요일
요한복음음 11: 47-57
- 공회의 위선적 우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 가야바의 냉혹한 책략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히였으니
- 예언이 된 가야바의 말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 예수님을 죽이려는 공식 결의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 예수님의 은신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 유월절 전의 긴장과 체포명령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
예수님의 표적들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민심이 예수에게 향하자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느낀 세력들이 모여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까 논의한다.
가야바의 제안이 당시 훌륭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결의한다.
예수님의 체포 명령이 떨어지자 예수님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에브라임 산지로 숨으셨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예수님이 나타나실지 궁금해 한다.
모든 일에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이 일하기 시작한다.
나의 생각이 사탄에게 지배되면 정의와 공의를 떠나고 만다.
훌륭한 생각이 모두 좋은 생각은 아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마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요한 사도는 주권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일로 힘들어 하지만,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시며
만사가 그분의 섭리 가운데 역사가 운행됨을 기억하자.
예수님의 체포 명령에 예수님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사거리와 흥미거리로 이야기하는 유대인들을 본다.
우리는 중대한 일에도 나의 유불리를 따지고 관련이 없으면 쉽게 가볍게 이야기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미국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전쟁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들 전쟁 이름처럼 거룩한 장엄한 분노인가?
주님
생각하는 것들이 휼륭하고 멋진 것이라고 다 옳고 바른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인도해 주소서.
성령이여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닮아가도록 나를 통치하여 주소서.
날마다 일마다 만나는 일들 앞에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도록 깨닫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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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인의 계략, 계시가 되다 ]
나사로 사건 이후 종교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한 계획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됩니다.
(49-52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대제사장의 사악한 발언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리는 게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정치를 뒤집어 세상을 구원하는 역사가 되게 하십니다.
절대로 악인이 세상을 망치도록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의 계략보다 뛰어난 지략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53-54절)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공식결정하자, 예수님은 위험을 피해 물러나십니다.
두려움의 후퇴가 아니라 십자가의 때가 이를 때가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는 조율입니다.
옳은 일이라고 꼭 직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우회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47-48절)
공회로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정치적 소요가 일어나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력 기반을 잃을 것만 걱정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킬 생각에 진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기존 체제에서 누리던 기득권을 버릴 각오가 없으면
예수님의 새 질서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49-50절)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 한 사람을 죽여 위협의 불씨를 꺼 버리자고 제안합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전형적인 '희생양 논리'입니다.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는 주님의 나라(마 18:12-14)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악마적인 발상입니다.
이런 사고 방식이 우리 공동체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배격해야 합니다.
(55-57절)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그들은 정결 예식을 행하며 겉모습을 꾸미고 예수님을 찾지만,
그 동기는 호기심이거나 체포명령을 따르는 신고 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알고 찾는 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을 왜찾습니까?
호기심이나 종교적 습관 깨문입니까,
아니면 나의 구원자이자 주님이기에 예배하고 순종하기 위해서입니까?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실로 걷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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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주권자, 능력자이십니다! ]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대책을 의논합니다.
그들의 속셈은 각각 다를지 모르지만,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애국입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놓아두면 많은 백성들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무리가 모여 세력이 형성되면,
로마 당국이 반란을 염려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을 염려합니다.
약간의 자치권을 허락하던 로마가 그 약간의 자치권마저 다 빼앗아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의 예방책은 예수님을 없애는 것인데,
예수님을 죽일 죄목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가짜로 죄목을 만들어서 덮어씌우면 되지만,
그들의 양심에 꺼림칙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가야바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무엇이 중요하고 큰일인지를 모르는구나.
한 사람을 죽여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면,
설사 그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라 할지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 아니냐?"
가야바의 이 말에 담대함을 얻어
산헤드린 공회는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야바의 말에 대해
요한 사도는 성령께 감동되어 기이한 해설을 붙입니다.
이 말이 대제사장 스스로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개설하신 대제사장 직분자에 대해,
그 직분에 걸맞는 말을 하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물론 가야바는 악의적인 의도로 이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악한 대제사장의 입을 빌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 기이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선포하시고,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인간이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자기 뜻을 이루어 가시는 주권자요 능력자이십니다.
정치 때문에 걱정들이 많습니다.
좌파 정부가 나라를 빨갱이들에게 팔아넘긴다고 걱정하시는 분이 있고,
극우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라고 염려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대형 교회 담임 목사들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SNS에 오르내립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이쪽도 염려하지 말고, 저쪽도 걱정하지 말라고요.
권세를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목사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허락한 권세, 임명한 직분을 결코 무의미하게 만드시지 않습니다.
그 권세와 직분을 맡은 자의 게으름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사용하여 본래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권세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예를 우리는 엘리 제사장의 경우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심지어 마귀의 경우도 있지요.
마귀조차도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면,
인간의 권세가 어찌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조리나 불공정 때문에, 그런 일을 시도하는 세력들 때문에,
너무 걱정하고 염려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떤 경우에도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일시적인 핍박이나 방해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세력을 동원하여, 심지어 위법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불의(?)와 핍박을 막아내겠다고 나서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했던 짓을 따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뒤에 숨어 있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고 여유롭게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주 하나님, 마귀를 이 세상의 임금으로 놓아두시고도,
세상을 능히 구원해 가시는 주권자요 능력자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의 구원의 큰 물결에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려 가는 자가 되지 않고,
그 길에 동의하며 기쁨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상황을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와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권세에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주눅들지 않게 하시고
그 이면에 계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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