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죽어야 사는 신비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13. 07:04

2026. 3. 13. 금요일

요한복음 12:20-33

 

- 헬라인들의 방문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뱃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의미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예수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

 

-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올 결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

헬라인의 방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아시고 하시는 말씀인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싹이 나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이치를 설명하신다.

자신의 죽음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는 비유이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여 예수를 따르지 않고 죽지 않으려 하면 잃어버리지만

자기의 생명보다 예수님을 따라 살고 죽으면 영생이 보전된다고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여겨 주실 것이다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십자가 앞에까지만 가다 멈춘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를 바라만 보고 있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를 두렵게 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게 만든다.

죽음의 위력 앞에서 멈추지 말고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령님 도와주소서.

죽어야 산 다는 이 진리를 붙들고 나아갈 용기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시며 괴로워 하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그러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아시고 그 목적을 위해 죽으실 것을 다짐하신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이 되기를 바라신다,

이에 하나님이 지금까지도 영광스럽게 하였고 그 죽음도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지지하신다.

그리고 죽음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그 죽음의 결과로 어떤 일을 하실지 말씀하셨다.

 

죽음, 죽음이 가져다 주는 결과를 말씀하셨다.

죽어야 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 중요한 영생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 죽어야 사는 신비를 이루시게 위해 이 땅에 ,이 때에 오셨다고 하시고

그 죽음이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를 기도하신다.

주님이 죽으셔야만 우리를 하늘 나라로 이끄실 수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먼저 죽으셨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서 죽어야 한다.

우리가 죽어야 주님이 계신 곳에 이를 수 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귀하다 인정해 주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주님

나를 사랑하고 이 땅을 사랑하다가 영생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죽이고 주님만을 따라 살다가 주님이 주시는 영생을 받아 누리고

주님이 계신 곳에서 영생토록 함께 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령이여 오늘도 나는 죽고 예수님만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죽어야 사는 원리를 기억하게 도와주소서.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됨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

 

[ 한 알이 밀이 죽으면 ]

 

헬라인들이 찾아오자, 예수님은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리는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한 알의 밀이 죽음으로써 풍성한 생명을 낳는 십자가의 역설을 설파하십니다.

 

(23-26절)

이방인의 방문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영광'은 왕좌에 앉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밀알의 죽음이 많은 열매로 이어지듯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영광'이라는 원리는 제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이 사신 방식을 따를 때,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사랑의 섬김과 희생을 감수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

십자가까지 주님을 따른 자만이 예수님의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27-30절)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는 피하고 싶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수님을 "너의 지난 삶도 나의 영광이었고,

너의 십자가 죽음도 나의 영광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지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른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31-33절0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쫓아내시고,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방법은 '땅에서 들리는 것',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실패와 패배처럼 보이지만,

실상 십자가의 길은 사탄의 나라를 굴복시키고

죄와 사망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20-22절)

유월절에 예배하러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는 이방 세계를 포함한 '온 세상이 주님을 따르기'(19절)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하나가 되고(11:52),

유대인의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이 편입되어 한 무리가 되는 일(10:16)이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은 온 세계를 품고, 모든 민족은 복음을 향해 나아옵니다.

우리 주변에도 교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교회는 빌립과 안드레처럼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통로입니다.

 

한 알 그대로 있는 밀알이 아닌, 썩어 열매 맺는 밀알이 되게 하소서.

 

=======================

[ 인자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
찬송가 33장 영광스런 주를 보라

본문의 말씀이 예수님을 만나러 온 헬라인들에게 직접 주신 말씀인지,

아니면 헬라인들을 예수님께로 소개하려한

안드레와 빌립에게 주신 답변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답변 내용이 그들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생명의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헬라인들은 메시아로 소문이 난 예수님께 자기들의 구원에 대해서 묻고 싶었던 것이고, 

예수님은 이제 율법이 아닌 다른 생명의 길로서 십자가 복음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답변이 그것입니다.

‘인자’는 단순히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고, 

사람의 아들로 오신 하나님을 칭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영광을 얻는다는 것은, 

인자의 하나님 되심이 밝게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28절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로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실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실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인간의 수준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의 어떤 이름에 대해 가장 흡족하게 여기며 만족스러워 하실까요?’

라고 질문함으로써 정답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41절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칭송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거나 더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에게 본래 있던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칭송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로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구원의 사역입니다. 

이사야 48:1-11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결코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시는데 

자기 이름,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선포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5-6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기 이름을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로마서 11:32-36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찬양하며,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백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그분의 긍휼과 은혜가 더없이 찬란하게 드러날 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이 가장 빛나게 나타난 자리가 어디입니까? 

예,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장 영광스러우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십자가 사건을 '들리는 사건'으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불쌍하고 비참해 보이는 십자가가 

주님께는 영광스럽게 들리는 자리로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천박한 옛사람이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들려 올려지는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자리로 끌어올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32절).

32절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오해할 것이 뻔하니까 33절로 오해의 여지가 없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리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킨다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율법 속에 그림자로 숨겨진 이 하나님의 영광이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 헬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하여 밝게 비칠 것을 

예수님은 증언하고 계십니다(32절). 

이 영광을 본 자들이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아가페)한 것 같이 

자기들도 서로 사랑(아가페)하는 자들로 살기를 소원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자기 생명에 집착하는 자에서 

형제를 위해 자기 생명을 기꺼이 버리는 자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영생을 명하십니다(25-26절). 

거기에 ‘니 인생은 니 것’이라고 부추기는 마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31절).

주 예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십자가의 영광을 조금 엿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우리가 더 알게 하시고, 

더 사모하고 사랑하며 따라갈 수 있도록 

믿음과 지식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