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왜 미워할까?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22. 22:04

2026. 3.23. 월요일

요한복음 15:18-27

 

- 세상이 제자를 미워함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할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 미움으로 드러난 세상의 죄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도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 성령님과 제자들의 증언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게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사람들은 자기 편이 아니면 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미워한다.

세상은 왜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을까?

좋은 말씀, 진리와 생명의 말씀, 권위가 있는 가르침,

기적과 표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살려주었는데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배척하며 죽이려 하는가?

 

인간은 참 이해하기 힘든 구석들이 많다.

내가 싫어하면 상대방은 틀렸고 잘못되었으며 무너져야 하고 실패해야 한다.

더불어 증오와 미움이 뒤따라 온다. 심지어 상대방을 죽음으로까지 몰아 간다. 

이것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의 증거이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서로를 향한 대립과 갈등과 승패에 집착하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싫은 소리나 잘못을 지적하면 참지 못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거나 약점이 노출되면 흥분하고 과격한 반응을 보인다. 

살아 보니 이런 모습들은 나의 노력과 의지로, 인격적인 수양으로 다 극복되지 않는다.

개개인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다.

 

예수님의 하신 일들을 보고도, 가르쳐 주신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신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그들은 죄인들이고 죄값을 치뤄야 한다.

 

이유없이 예수님을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미워하였으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한 부류로 취급하며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모든 일에 성령님과 제자들이 증인이라고 하신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면 미움을 받게 된다.

세상에 속하면 미움을 받지 않는다.

미움을 받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세상에 속하였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지금 나는 믿음을 받고 있는가?

이 믿음 받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에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음의 선명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믿음 때문에 목숨까지도 내 놓아야 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다.

적색 순교자 들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백색순교가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자세로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주님

인간들은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기입니다.

저 또한 모든 일에서 이타적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땅을 밟고 살면서 이 세상에 미련 갖고 연연해 하는 것들이 적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혀 죽었음을 기억하며 살게 도와주소서.

또한 주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새롭게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처럼 나 중심이 아닌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님 은혜 베풀어 주소서.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판단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미혹되거나, 세상을 사랑하고 미련 갖지 않고 

마음을 지키도록 신실한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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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세상, 증언하는 제자 ]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께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한다 하시며,

그러니 성령과 함께 예수님을 증언하라고 명하십니다.  

 

(22-25절)

인류 역사상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훌륭한 선생이나 성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계시자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귀로 들었음에도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증거가 부족해서 미워하는 게 아닙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싫어하는 악한 본성에서 나온 고의적인 거부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세상은 그 타락한 본성 때문에 복음을 거절할 뿐,

복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의 소리로 예수님을 평가하지 않고 말씀의 증거에 주목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26-27절)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마음 깊은 것까지 확신시켜 주시는 증언자이십니다. 

성령님의 증언은

제자들의 입술과 삶을 통해

세상 속으로 흘러가는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곧 성령님은 직접 예수님을 증언하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 충만'을

단지 내적 위로나 감정의 고양만으로 좁게 이해하지 말고,

예수님을 드러내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령님은

위축된 우리 입을 열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8-21절)

세상은 예수님을 먼저 미워했습니다.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어둠을 폭로하시고,

겸손과 희생으로 세상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보이심으로

지도자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종교를 고발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미워하고 박해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어둠의 빛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격는 거절과 고난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께 속했음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세상과의 충돌은 제자의 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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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미움을 받을 때 ]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계명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고 항상 맺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가지치기’입니다.

둘째는 주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둘이면서 사실은 하나입니다.

앞 단락에서 정확히 ‘가지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비유가 아닌 직설화법으로 표현하시니 분명해집니다.

‘가지치기’는 세상에 속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지치기’를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님께 속하기’ 곧 ‘주 예수님께 붙어 있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를 세상은 미워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이 그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초지일관 미워하였고 박해하였습니다.

‘세상’은 ‘하나님 밖’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독립된 세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밖에 거하는 자(‘세상에 속한 자’)에게 

하나님은 불편한 존재입니다.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당연히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도 같이 미워합니다.

세상은 능력 있고, 강한 자에게 더 많은 관심과 호의를 표시합니다. 

못나고 약한 자에게는 무시와 혐오를 나타냅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유익이 있고 손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반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관심이,

약한 자녀, 부족한 자녀에게 가장 강하게 쏠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명을 압니다. 

강한 자들이 마땅히 약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양심이 하나님의 계명(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지극히 작은 자 사랑)을 가르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는 말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알면서도 모른척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의 존재가 

그들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거슬립니다. 

그래서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때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미리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연히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치치기’를 할 때, 예수님께 더 가까이 붙을 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세상의 이유 없는 미움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증거이니 기뻐하라고 하십니다(마5:11-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것은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붙어 있다는, ‘가지치기’를 잘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 악한 일을 하여 미움을 받는 것을 핍박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를 핍박하는 세상은 온 세상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나를 핍박하고 미워할 만큼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사실 멀리 있는 세상은 나를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나를 실제로 미워하고 박해하는 세상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세상입니다.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님 밖에 있는 자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꺼립니다. 불편해합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보이는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들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고 박해한 사람들은 로마의 정치가나 군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미움을 당하셨습니다. 

지금도 정직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미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세상에 속한 자인지 잘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이 저를 사랑하는지 주의하여 살피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저를 미워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세상이 저를 미워하는 것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담대해지고 즐거워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이 저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호의를 얻는 것과, 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 사이에서

단호히 선택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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