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24. 화요일
요한복음 16: 1-15
- 박해 예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게 있었음이라.
- 떠남의 유익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세상을 책망하실 성령님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야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러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성령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제자들을 남겨 두고 떠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발이 무거우셨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장래 일들을 미리 말씀하셔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신다.
더불어 예수님이 가셔서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인데
그 성령님이 죄, 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실 것을 말씀해 주시며 믿음이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셨다.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은 시공을 제한 받으시지만
영이신 보혜사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내주하시고 일하실 수 있으시다.
그것이 유익이다.
성령께서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아버지에게서, 예수님에게서 들으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우리가 구원에 필요한 죄의 문제, 의의 문제, 심판의 문제에 대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지금도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 일하신다.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오늘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말씀의 인도함 받기를 소망한다.
주님
주님이 보내 주신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히 내주하셔서
오늘도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선하게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오늘도 주신 말씀을 잘 깨닫게 하시고 분별하게 하시며 가르쳐 주시옵소서.
이 땅을 살아 가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게 하소서.
------------------------------------
[ 부재 속에서 드러나는 임재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를 미리 알리시고,
자신이 떠나면 성령님이 오셔서
세상을 책망하시고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 1-4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출교와 죽음에 이를 박해가 올 것을 숨김 없이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미리 알게 하심은
그 고난을 믿음의 시각으로 해석하도록 도우시려는 배려이자 보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보여주듯
고난은 패배가 아니라 구원의 길이며,
결국 영광으로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오늘 나는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고난을 해석하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며
믿음의 자리를 견고히 지키고 있습니까?
(5-7절)
예수님은 떠남을 통해 더 깊은 임재를 예비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떠남 앞에서 흔들렸지만,
그 떠남은 성령님의 오심을 가능하게 할 더 큰 유익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임재는 사라지는 듯해도,
성령님 안에서 제자들은 오히려 더 깊고 친밀한 임재를 누릴 것입니다.
곧 주님의 임재는 '곁에 계심'에서 '안에 계심'으로 한층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현실로 이끄시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삶에 더 깊이 오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8-11절)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판단을 바로 잡으십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고,
이 세상 임금인 사탄도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로 말미암은 성령 강림을 통해
예수님이 의인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음이 죄이며,
십자가 사건에서 진정한 심판받은 존재는 사탄임이 드러났습니다.
양심을 깨우는 성령님의 책망을 옳다 인정하고 회개한 자들은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12-15절)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 진리는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게 들은 것, 예수님이 말씀하신 장래 일, 예수님의 것,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복잡한 시대에 무엇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성령님은
무엇이 예수님의 진리인지,
무엇이 예수님의 계획인지,
무엇이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인지 알려 주십니다.
두려움과 흔들림 속에서도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선택하게 하소서.
===========================
[ 믿음 가르치는 일에 예수님보다 더 적임자이신 성령님 ]
찬송가 192장 임하소서 임하소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의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죄를 좋아하면서 계속 죄 가운데 살기를 선택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스스로 주인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생명이 저절로 생겼다 우기면서, 자기 자신이 자기 생명의 주인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거꾸로 예수님 믿는 자들을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 당시 이미 제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자기 인생을 자기가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며 모든 것을 상대화시켜버리는 시대 풍조 속에서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하면서,
예수님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외치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편협하고 이상한 분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합니다.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자기들이 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라고 선전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얻고,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깨달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구원에 관심이 없습니다.
구원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으니까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각자 좋은 대로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분명하게 증언하십니다.
우리 심령에 분명하게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켜 하나님 우편에 올리심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이심을 확증하셨다고,
그분의 의가 분명히 드러남에 따라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세상은 이미 정죄를 받았다고(8-10절).
왜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직접 몸으로 나타나셔서 증거하여 주시지 않고
성령님을 보내어 증거하시는 것일까요?
심지어 열두 제자들에게조차
본격적인 진리는 성령님을 보내시어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온전한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참믿음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으로 온전하게 인식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고 있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데에 방해가 됩니다(12절).
그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초만 마련해 주시고 떠나가십니다(7절).
영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고 키워주시는 데에는
성령님이 예수님보다 더 적임자이십니다.
진리의 성령님, 우리에게 반복하여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십시오.
신령한 지식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깊이 깨닫고 온전한 믿음에 이르도록 깨우쳐 주십시오.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0) | 2026.03.26 |
|---|---|
| 근심이 기쁨이 되다 (1) | 2026.03.25 |
| 왜 미워할까? (0) | 2026.03.22 |
| 사랑의 열매 (1) | 2026.03.22 |
| 평안을 원하는가? (0) | 202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