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27. 금요일
요한복음 17:1-16
-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아버지의 소유인 제자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보전과 하나 됨을 위한 기도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게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 악예 빠지지 않게 보존하소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
요한복음 17장은 그 유명한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라 일컫는다.
구약의 대제사장의 기도는 백성들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아뢰고 용서를 구하며
백성들의 필요를 아뢰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는 중보기도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나아가시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제자들이 자신을 믿게 되어 기뻐하시며 영광을 올려 드린다.
우리는 늘 형이하학적 세상에서 형이상학적 상황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우리의 사고와 이해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믿음으로 자신의 사역을 다 마쳤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다 말씀하셨다고 하신다.
제자들이 자신이 가르치신 것들을 다 믿었다고 하신다.
이러므로 자신의 소임을 다 하셨기에 기쁘고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신다.
그리고 세상에 남아 있을 자들의 안전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신 주님의 모습이다.
주님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생을 허락하셨음을 믿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성령님, 이 믿음 끝까지 단단히 붙잡고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의 어떤 상항과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실하게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소서.
성령님, 요즘 허탈하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우울하고 울적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용기와 힘을 얻게 도와 주소서.
안개처럼 사라질 일들, 물질들, 사람들, 관계들,.....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남겨 놓을만한 것도 없고, 지난 삶들이 너무나 하찮은 것들로 여겨집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허무함을 극복하게 도와주소서.
지난 나의 삶의 흔적들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정말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한 줌 먼지와도 같은 존재이고,
인간이 무언가를 행한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일들이 다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자의 고백을 생각합니다.
말씀 속에서 위로를 찾기 원합니다.
성령님, 제가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면
저에게 말씀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더 간절함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삼위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은혜 베풀어 주소서.
성령님 이 우울함과 허무함에서 벗어나게 인도해 주소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가게 도와주소서.
속히 이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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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질 제자들을 위한 기도 ]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과 영생의 참된 정의를 선포하시고,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의 보전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1-5절)
십자가의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이때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고, 자기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길이며,
창세전에 누리신 영광을 다시 아버지와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영광을 얻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희생과 섬김과 순종이 하나님과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6-10절)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다 아시면서(16:32),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들을 선택하여 아들에게 주시고 그들 안에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그들 속에 심긴 말씀과 장차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갈 그들의 모습을 미리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부족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내 것'이라 부르시며 우리를 통해 영광받기를기뻐하십니다.
(11-13절)
제자들 스스로 거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킬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그들을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비록 자신이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공동체의 하나 됨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덕에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14-16절)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을 아시지만,
세상에서 빼내 달라고 구하지 않으시고 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고 유혹을 물리치는 인내를 주심으로 우리를 보존하십니다.
(3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믿고 사랑하며 교제하는 관계입니다.
영생은 죽은 뒤에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입니다.
관계가 곧 생명입니다.
주님을 더 깊이 알게하시고,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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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광’ ]
찬송가 566장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만민에게 영생을 주는 것(=구원)을 동일한 일로 이야기하십니다.
2절 첫머리에 번역이 생략된 접속사가 있습니다.
영어의 'as'에 해당하는 접속사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 같은 일입니다.
그 결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 같은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인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완성될 것을 믿으며,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반복됩니다.
영화, 영광, 아버지의 이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하나님께 속함)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세상이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힘과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꾸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는 희생하고 섬기는 영광과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세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에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영광이요 영화입니다.
[요한복음 10:17-18]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버리는 권세’가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만이 목자의 권세를 인정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이런 권세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자, 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감히 목자, 지도자로 자처할 수 없습니다.
이런 권세를 세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십자가가 영광이라는 것을 어떻게 세상이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시는 분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어찌 세상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세상에서 택하여 구별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고 놀라운 사랑인지 알게 되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3절).
그 사랑의 기이함과 위대함을 확실히 알게 되면,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말씀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래서 이들은 더 이상 세상의 욕심에 매이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있으면서도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광’을 향해 살게 됩니다.
셋이 하나 되는 사랑, 둘이 온전히 하나 되는 사랑을 추구하며 삽니다(11절).
그 고귀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13절).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니,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절)라고 하십니다.
언제 영광을 받으셨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했던가요? ... 믿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직 사랑의 결실이 보이지 않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 믿음 보시고, 예수님은 미리 사랑의 열매를 그리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안쓰러워하며, 하나님께 제자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줄 뻔히 알면서, 주님은 우리들을 세상에 두십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예수 믿으면 그 순간 바로 천국으로 옮겨주시면 좋을 텐데,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남겨두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십니다(14-15절).
우리 주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맛보아 알고,
우리도 온전히 그런 사랑을 가진 자가 되기 원하시기에 그러하십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세상을 위해 목숨을 버린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광’을 우리도 가지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완성된 천국에서는 희생하며 섬길 기회가 거의(?) 없고, 물질적인 손해를 볼 일은 더욱 없을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제대로 훈련할 기회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두십니다.
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그러면서 기도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15절).
주님, 주님의 기도 때문에,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될 줄을 믿습니다.
희생하는 사랑, 겸비한 사랑,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랑을 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의 영광이 될 것을 믿습니다.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머물게 하여 주옵소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의 열매, 영광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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