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31. 화요일
요한복음 18:28-38
-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하는 유대인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 빌라도의 신문과 예수님의 답변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빌라도의 결론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나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
심문은 가야바에게서 로마의 관정, 빌라도에게로 옮겨간다.
때는 새벽이다. 밤에 예수님을 체포하여 새벽까지 무슨 재판을 하였을까?
요한은 아무 내용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로마 법정으로 넘기기 위해 관정으로 몰려간다.
새벽에 불려 나온 빌라도는 무슨 일로 잠을 깨우는지 묻는다.
행악자를 끌고 왔다고 하자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무시하며 돌려 보내려고 한다.
그러자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고 자신들은 죄인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자
빌라도가 마지 못해 예수님을 관정 안으로 불러 심문하기 시작한다.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에는 왕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간다.
왜 유대인들이 왕인 네가 무엇을 하였기에 나에게 넘겼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신다.
진리,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셨다고 대답하신다.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님은 죄가 없었고, 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 나가 자신이 심문해 보니 예수는 죄가 없다고 심문 결과를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체포하여 왕의 대리인에게 데려가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 속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드러난다.
네가 왕이라면 무슨 일을 하였기에 유대인들이 너를 나에게 끌고 왔느냐가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신다.
자신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나라가어디에 속했는지를 말씀하시고
자신이 한 일은 이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빌라도는 이 진리에 대하여 질문을 하지만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 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적인 법에 비추어 볼 때 특별한 범죄 사실이 보이자 않자
유대인들에게 죄가 없다고 심문의 결과를 설명하며 곤란한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을 뿐이다.
주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받아들이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성령님 이 진리를 잘 깨닫고 분별하며 지켜 행하도록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왕이신 주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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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를 증언하시는 왕 ]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신문받으시는 장면에서,
진리를 외면하는 종교와 세속 권력의 실체와
그 가운데 진리의 왕으로 홀로 서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29-32절
악인들의 치밀한 계략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삼으십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굳이 빌라도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 '저주받아 나무에 매달린 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고(신21:23),
예수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26:5, 막14:2).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발판이 될 뿐이었습니다.
33-35절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즉 "로마에 반역하는 정치범이냐?" 묻는 빌라도에게
그것이 그의 생각인지 다른 이들의 말인지 되물음심으로,
여론 뒤에 숨어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빌라도의 무책임함을 꼬집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남이 가르쳐 준 정답 말고, 네 가슴으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36절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으십니다.
만약 이 땅의 나라였다면 종들이 칼을 들고 싸웠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의 힘이나 체제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힘이나 정치적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원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28절
유대 지도자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부정해지는 일을 피하려고
총독의 관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죽이려 합니다.
종교적 위선의 극치입니다.
종교적 형식과 의식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주된 내용이 되면,
믿음과 사랑, 정의와 긍휼을 놓치게 됩니다.
37-38절
진리로 다스리는 왕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빌라도는 "진리가 있기는 하냐?"고 묻고 나가 버립니다.
그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죄'만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진리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과 논리가 아닌, 오직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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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왕은 자신뿐이라는 진리를 양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
찬송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무 답변을 하시지 않습니다(마 27:12-14).
그런 중에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답변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에 대한 이야기, 진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리를 어떤 사실이나 원리로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자신이 곧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자들도 ‘짐이 곧 법이다’는 광오한 말들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진정한 왕이며 진리라고 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 변할 수 없는 법칙으로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창세기 1:1절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계시다고, 그분만이 변함이 없으신, 영원하신 진리라고,
만들어진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고.
그것이 물질이든, 법칙이든, 원리든 피조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창조주에게 있는 것이지 피조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진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은 진리이신 분의 용납과 호의에 의해 존재할 뿐입니다.
출애굽기 34:6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해 동일하게 증거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어서 또 증거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출애굽기 34:6절의 ‘인자와 진실’이 요한복음 1:14절의 ‘은혜와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무엇인가 도모해보겠다고 만든 나라의 정치적인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가지신 왕,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 되시고 그것들의 주인이 되신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왕이십니다.
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스스로 자신의 왕이 되어 군림하는 그 가짜 왕좌를 내어놓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 굴복할 것을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이 요구를 견딜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혈안이 되어 불법적인 수단까지도 동원합니다.
그들 자신이 예수님의 무혐의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백주 대낮에 살인죄를 저지르면서도
유월절 정결 규례는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위선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자들의 실상입니다.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고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롬 10:3).
이들은 자기 의를 지키는 것을 위태롭게 하는 것,
자기의 왕좌를 굳고 단단하게 함에 위협이 되는 것은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들춰내시며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을 것을 주문하십니다.
이들의 역린을 건드린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강도를 용서했으면 용서했지,
자기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완악함이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양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을 한 가지는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한 가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영역을 건드리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왕 되심을 내가 진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는지를 확인시키십니다.
내 안에 혹시 하나님조차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지 않은지,
그런 죄악의 영역이 여전히 웅크리고 있지 않은지 두렵습니다.
절대 내어놓을 수 없는, 이것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용납이 안 되는
그런 영역을 여전히 내 안에 남겨 놓고 있지 않은지 두렵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대충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오직 유일한 왕은 자신뿐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왕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진리를 결코 양보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에만은 결코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죽음으로 위협하고 권세로 억압하고 군중으로 위협해도 당당히 선포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왕이신 나의 예수님,
주님의 이 선포 앞에 나의 전인격이 무릎 꿇기를 원합니다.
내 심령의 모든 영역이 진리 앞에 무너져 내리고 점령당하기를 원합니다.
진리에 속한 자가 되어 왕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내 안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자기주장의 영역을 깨뜨려 주옵소서.
강권적으로 부수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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