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예수님의 십자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 07:05

2026. 4. 2. 목요일

요한복음 19:17-27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로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 명패 논쟁과 '유대인의 왕'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이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 성경의 성취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니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 십자가 아래의 새 가족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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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과정과 십자가에 달리신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이미 다른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명패의 문제로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속옷에 대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으로 육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이어

새로운 가족,공동체, 교회를 형성하는 일을 기록한다.

 

예수님이 왕이셨음을 강조한다.

모든 민족이 보고 읽고 알 수 있도록 히브리, 라틴어, 헬라어로 기록되었음을 기록한다.

로마 총독이 인정한 유대인의 왕이셨음을 강조한다.

로마가 인정한 유대인의 왕을, 자신들의 왕을 죽여달라고 요청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책임 추궁을 당하지 당하지 않으려고 '자칭'이라는 글자를 넣으라고 요구한다.

 

예수님이 단지 남겨진 어머니를 생각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제자에게 어머니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적인 사적인 문제와 감정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기 보다는

성도가 연합하는 공동체, 교회를 만드셨음을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 하에서 진행되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요한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예언의 성취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주님

주님은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셨습니다. 아니 나의 왕이십니다. 

나아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주님의 마지막 사역, 새로운 공동체, 교회를 만드시고 가셨습니다. 

성령님, 오늘도 주님의 나의 왕좌에 왕으로 모셔드립니다.

요한이 예수의 모친을 평생 모시고 셤겼듯이 

성도가 연합하여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어 가는데 힘쓰겠습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고난의 길, 영광의 길

끝까지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는 그 사랑의 길

아들의 그 고통을 바라보시며 힘들어 하셨을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나의 십자가 지고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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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랑 ]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십니다.

군인들은 못박히신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 갖고,

예수님은 한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십니다. 

 

17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어렵지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곁꾼이 되어 함께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면서 도리어 '마음의 쉼을 얻도록'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마 11:28-30).

 

18-22절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넘어 일하십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써 붙인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는

유대인을 향한 냉소적인 조롱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는 공식 선언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로 기록되어

예수님이 유대인을 넘어 온 세상의 통치자임을 만방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의도조차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23-24절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옷과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눠 가진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시편 22:18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계획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신실하게 진행됨을 믿으며,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그분의 뜻을 신뢰하는 믿음을 배워 나갑시다. 

 

25-27절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서로에게 부탁하시며

믿음 안에서 하나 된 새로운 가족, 곧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개인적인 구원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형제 자매를 사랑으로 돌보는 데까지 자라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혈연을 넘어 영적인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신 사랑의 본입니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사랑을 잊지 않으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섬깁시다.

 

주님을 삶의 왕좌에 모시고, 십자가 아래에서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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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눈물겨운 사랑 ]
찬송가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

독생자가 조롱과 침 뱉음과 옷을 벗겨 제비 뽑는 모욕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관심은

아들의 고통보다도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영멸에서 벗어나야 할 인간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여 믿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이

이미 오래 전에 수없이 말씀하셨고 약속하셨던 그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임을 

우리에게 확인시키는 것에 하나님은 집중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들까지도 성경대로 이루어지게 철저히 통제하십니다.

십자가는 절대로 어쩌다가 일어난 사건이 아님을,

사소한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구원의 도임을 확증하십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를 통해 속죄 제물이 영문밖에 버려질 것을 예언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골고다로 나가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을 것(사 53:12)이라고 하신 대로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다스리는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미가 5:2의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임이 공표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계속 양보하던 빌라도가 유독 이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않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 아닌 참 ‘유대인의 왕’을 고집하는 것이 그냥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또 십자가 밑에서는 시편 22:18절(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이 

문자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이미 성경에 약속하고 예고하신 대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십자가가 틀림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임을 확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구원 통로임을 증명하시며 

그 길을 따라오도록 우리를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못에 걸린 손이 체중으로 당겨져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약속대로, 성경대로 죽으시는 것에 온통 쏠려 있습니다. 

지독한 고통과 갈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가운데서도 

주님은 시편 22편을 암송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가 목마르다”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발하십니다.

‘신 포도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옥소스’로서

문자적으로는 ‘식초’를 뜻하며 시편 69:21절의 ‘초’에 대응하는 단어입니다.

[시편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자신이 성경에 오래전부터 거듭 거듭 약속되었던 구속주임을, 

이 십자가가 모든 죄인의 소망인 바로 그 십자가임을 증거하는 일에 

예수님의 온 마음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십자가가 성경대로 이루어진 구속의 길임을 확인해 주기 위해 애쓰십니다. 

극한의 고통, 혼미한 정신 가운데서 그리 하십니다. 

이 눈물겨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소망이 어디에도 없는 죄인들에게 온통 쏠려 있습니다. 

극한의 고통 가운데서도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을 챙기며 염려하십니다. 

십자가로 새롭게 태어날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새로운 가족관계를 귀중히 여길 것을 당부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사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이다지도 중요한 존재였던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유일한 아들 예수님의 고통과 수치를 작은 일로 여기실 만큼,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와 살이 찢기는 고통을 무시할 만큼,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큰 관심사가 되어 있었던 것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십자가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렇다고 증거합니다. 

도저히 부인하지 못하도록 확인해 주시고 또 확인해 주십니다.

주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이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의 자리였네요. 

그 생생한 장면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네요. 

이해되지 않는다며 외면하지 못하도록 거듭거듭 확인해 주시네요. 

잊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기억이 희미해지지 말도록 계속 말씀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