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3. 금요일
요한복음 19:28-30
- 영혼이 떠나가시다
그 후에 에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가상칠언 ① 누가복음 23:2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 가상칠언 ②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가상칠언 ③ 요한복음 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가상칠언 ④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아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가상칠언 ⑤ 요한복음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가상칠언 ⑥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가상칠언 ⑦ 예수께서 큰 소리로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자신의 사역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충성하시고 복종하시며,
끝가지 맡겨진 사역을 완수하신다.
내가 죽는 순간에 주님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다 이루었다.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죄인들을 용서하심, 낙원을 허락하심, 새로운 공동체,
아버지와의 단절에 대한 절규,
목마름, 성취, 영혼을 부탁하심
누구를 위한 십자가인가?
에수님의 십자가와 나와 상관이 없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아찔하고 절망적이며 참담함이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구주라 고백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나를 주관하시니 얼나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힘든 것인지
주님의 절규 속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세상 죄를 다 짊어지신 그 진노의 잔의 무게를 다 어찌 이해하며
하나님과 단절의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요.
부부의 사별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이 단절의 고통과 결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단절의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은 없다.
주님 안에서, 주님에게 딱 달라붙어 있어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끝어짐은, 단절은 곧 죽음임을 명심하며 살아야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주님이 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타는 목마름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내가 지지 않는다고
주님을 또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저의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성령님 날마다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깨어 있게 하소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어리석고 무지하여, 양심도 없이,
동일한 죄를 반복하거나 실수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허물 많고 죄 많은 이 죄인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연약한 저를 도와 주소서.
주님과 영원히 연합하여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오직 주님 안에서만 제가 발견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아가면서 십자가의 신비를 더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결정체, 십자가를 더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다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고 온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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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십자가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인 '가상칠언'에는 죄인을 향한
용서, 구원의 약속, 인간적인 고뇌, 구속 사역의 완성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습니다.
눅 23:24, 43; 요 19:26-27 [제1-3언]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직후 하신 첫 세 말씀은 모두 타인을 향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겡 못 박은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무한한 자비를 보여 주셨고(제1언),
고통 속에서도 회개하는 강도에게 즉각적인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심으로
구원이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한 은혜임을 밝히셨습니다(제2언).
또한 극심한 고통 중에도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영적인 가족으로 맺어 주시며
끝없는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제3언).
이 세 말씀을 통해
죄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용서받고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며,
이제는 주님의 교회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마 27:46 [제4언]
죄의 대가를 홀로 감당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난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 외침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표현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된데서 오는
깊고 처절한 절규였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하나이신 성부와의 교제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당하셔야 했던 것은
우리의 죄와 그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적 사랑과 희생의 깊이를 마음에 새기며 감사하고 경배해야 마땅합니다.
요 19:28,30; 눅23:46 [제5-7언]
예수니은 "목마르다"(제5언) 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시 69;21)을 성취하시고,
"다 이루었다"(제6언) 하심으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모든 약속이 완성되어 십자가에서 종결되었으며,
사탄의 권세가 완전히 패배했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은
이제 평안 가운데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온전히 맡기십니다(제7언)
사랑으로 구원을 계획하신 아버지와
그 뜻을 끝까지 완수하신 아들의 은혜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생명과 승리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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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26-30+가상 칠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에는 가상 칠언 중 세 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도 다른 세 개가 기록되었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한 개가 중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가상 칠언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일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가상 칠언 중에서 그 중심이 되는 말씀은 제4언입니다.
1언부터 3언까지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말씀이었습니다.
5-7언은 마무리를 짓는 말씀입니다.
제4언은 극한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온,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절규였습니다.
제4언은 위치상으로도 중심이면서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장 절절하게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딱 이 한 가지 말씀만 기록하여
가상 칠언 중 제4언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제5언을 기록한 오늘 본문 28절에
‘그 후에’라는 표현으로 제4언이 구속 사역의 정점에 해당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예수님께서 가상 칠언 중 제4언을 말씀하시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 이후에’의 의미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하십니다.
성경을 온전히 응하게 하는 말씀 “내가 목마르다”를 말씀하시고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셨습니다.
제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이 말씀이 십자가 구속 사역의 정점을 찍는 말씀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십자가의 모진 고통 때문에
아버지께 잠시 원망을 토로한 사적인 고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가상 칠언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뒤 6개의 말씀의 내용을 보면, 단 하나도 사적인 감정이나 원망을 토로한 말씀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주 예수님께서는 주위 사람들을 먼저 챙기시고,
자기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에 일관되게 집중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은 사적인 표현이라고요? 아닙니다.
요한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하신 말씀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하였습니다(요 19:28).
전후의 모든 말씀이 인간들과 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의 표현인데,
유독 그 한 가운데 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만 사적인 원망과 고통의 토로라고 보는 것은
문자 그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조롱하던 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엘리야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소리로 오해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가상 7언의 정 중앙에 위치한 가상 4언을 가상 7언의 핵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제6시(정오)가 되었을 때 어둠이 온 땅을 덮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독생자의 고통, 온 세상의 죄를 뒤집어쓴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피조물이 대변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세상의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상상만 해도 그 고통이 너무나 끔찍했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버림받는 독생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분이 계십니다.
그 현장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외면하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흑암 중에서 이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자신의 고통보다도 더 큰 그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고통스러워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예수님께서 견디고 견디다가
단말마의 외침을 터뜨리신 것이 제4언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렇게 아파하실 것을, 그렇게 힘들어하실 것을 어찌하여 하신 것입니까?
기어코, 끝까지 하시려는 것입니까? 아, 아버지~~!”
아버지는 그 고통과 아픔 가운데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셨고,
십자가 위의 아들도 아버지의 그 사랑의 의지에 순종하여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마침내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천지가 진동하며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는 증표가 나타났습니다(51-53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 독생자에 의해서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 효력이 완전히 정지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버림의 고통을 당하던 예수님에게서
완전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 완벽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후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이 사랑 있기에, 이 사랑을 가진 내 아들이 너희의 주인이 될 것이기에,
휘장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단순히 형벌을 받은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죄인을 위해 끝까지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사랑이
십자가 위에서 너무나 절절하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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