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4. 06:50

2026.4.4. 토요일

요한복음 19:31-42

 

- 안식일 준비와 죽음 확인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게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니

 

- 참된 증언과 예언의 성취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 예수님의 장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니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자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게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율법을 어기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보다 더 두렵게 여기는 유대인들이다

저들의 종교적 행위가 얼마나 맹목적이고 진리를 판단하는데 장애가 되는지 역실히 보여 준다. 

 

예언은 모두 이루어진다.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다리가 꺽이지 않으셨다.

죽으신 후에도 구약의 모든 예언이 자신에게 성취되게 하셨다.

예수님은 온 몸으로 하나님의 구역 역사를 다 성취하시고 가셨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구원의 완성이셨다.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듯이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온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나온 것을 상징한다.

피와 물은 예수님과 성령님을 상징하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듯이 말이다. 

 

예수님의 장례는 열 한 제자들이나 가족들이 치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숨어있던 제자들이 나타나 장례를 치렀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유대의 최고 권력자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당당히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는 이 용기 말이다. 

하나도 아까운 것이 아낌없이 다 드린다. 

백 리타의 향품을 자신과 전혀 무관한 예수에게 다 드리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를 향한 존경과 예수가 누구신지를 깨닫은 믿음의 산 고백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본 요셉과 니고데모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무엇을 깨닫은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도 않았던 저들이 십자가에서 무슨 은혜를 깨달은 것일까?

 

요한은 예수를 장사하였다 하지 아니하고 무덤에 예수를 두니라고 표현한다.

부활을 염두에 둔 표현일까?

 

주님

나를 위해 당신은 마지막까지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가셨습니다.

죽은 몸으로도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제자의 증언이 참 됨을 믿습니다.

제자의 그 증언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나의 구주이심을 고백합니다.

두려움에 숨어 있던 제자들이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구하듯이

이 세상 어떤 권력과 힘 앞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나도 두 제자들처럼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평생에 주님의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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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 ]

 

군인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는 대신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숨어 지내던 요셉과 니고데모가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장사 지냅니다.

 

31-37절

죄 없고 흠 없는 몸으로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1:29). 

군인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걲지 말라는 규례(출 12:46; 민9:12)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었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 예수님의 죽음은

오늘 내 삶에 어떤 변화와 회복의 모습으로 연결되고 있습니까?

 

34절

우리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한다고 말합니다(레 17:11; 히 9:22).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완전히 대신한 속죄의 피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완전한 희생이었습니다. 

그 보혈로 우리는 단번에 영원히 깨끗하게 되었고(히 10:10),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멸망할 죄인이 아니며 구원받은 자녀로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피와 물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이 쏟으신 물과 피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며, 정결하게 하는 샘입니다.

 

38-42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히 믿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담대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며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밤에 은밀히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 역시 십자가를 목격한 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값비싼 향품을 아낌없이 바치며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은

세상의 조롱이나 위협,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높이는 참된 믿음의 본보기입니다. 

사람의 시선과 위협이 두렵다해도,

십자가의 은혜를 맛본 이들은 결국 예수님 편에 서서 자기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보혈의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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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이야기(Never Ending Story) ]
찬송가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는 유대인들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예수님의 시체는 꺾이지 않고 보존됩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통제하시고 챙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대로 다리가 꺾이지 않도록 지키시고, 성경대로 창에 찔리게 하십니다.

죽었으면 다 끝났는데 성경대로 되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아닙니다. 상관이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은 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라면 그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죽음이 그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의미한 영광이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일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죽음은 무의미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가 중요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더 중요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삶보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더 굳센 믿음을 얻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며 흠모했지만, 드러내지 못했던 산헤드린 공회원 두 사람(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담대하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냅니다. 

죽은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처합니다.

베드로와는 달리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현장을 보지 못했던 제자들은 여전히, 아니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십자가의 현장을 목격한 자들은 그 기이한 죽음 앞에서 경외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본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주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기이한 사랑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현장에서 지켜본 자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와 전혀 다른 믿음, 담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체험하고 느끼게 되면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 사랑, 그 기이한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고 느끼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자꾸자꾸 바라보는 중에 

십자가의 기이한 영광을 더 깊고 더 생생하게 맛보는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복음의 담대한 증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죽음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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