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6. 월요일
요한복음 20:19-31
-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도마의 의심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 예수님의 확증과 도마의 고백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두려움에 떨며 문을 꼭꼭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라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선장을 잃고 표류하는 배의 선원들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도 공범으로 잡아 십자가형을 집행할까 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극도의 불안 속에 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전하신 첫 말씀이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으니
저들의 표정과 마음이 어떠했을지 ....
또 하나님이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제자들을 세상속으로 파송하신다.
아직도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제자들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
어린 아이를 물가로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아직도 위협과 협박이 그대로 있는 세상으로 나가라 하시니
제자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그런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닫힌 저 문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지만
성령이 함께하시면 종교지도자들의 법정에도, 군중들이 모여 있는 성전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외칠 수 있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다.
그래서 주님이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모든 믿는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죽으셔야 하셨고 성령을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다.
그리고 성령을 주시며 죄를 사할 권세도 주신다.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주님이 죄를 사할 권세도 제자들에게 주신다.
죄를 사할 권세, 죽음을 이기는 권세, 생사여탈을 결정할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께서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는것이 아니라 죽음을 결정할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현장에 없었던 도마를 위하여 다시 나타나신다.
여드레만에 나타나셨다.
이 기간 동안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 계셨을까? 무엇을 하셨을까?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신 주님을
언제 다시 오시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제자들이다.
다른 곳에 가지도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나타나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록은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기록인가?
직접 눈으로만 아닌 손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져보았다고 하는 사실은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자들에게
더 없이 확신을 갖게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복음을 전하면서 들었을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는 내용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믿음은 보고 만지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복된 믿음임을 말씀하신다.
수제자들이 전하여 준 복음을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다음 세대들이 들었고
또 수많은 세대들을 통하여 전해져 이 곳, 나에게까지 전해져 내가 믿게 되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붙들고 살아간다.
주님은 두고두고 오는 세대들을 바라보시며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복되다 말씀하신 것이리라.
도마가 직접 예수님을 만져보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자기 앞에 서 서 말씀하시는 분이
그가 3년 동안 함께하셨던 그 분, 주님이 분명했다.
3년 동안 따르던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서 계셨다.
그러자 모든 의심의 안개가 걷히고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대면한 도마의 입에서는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자기 눈 앞에 서 계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도마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많은 표적들 중에서 엄선된 7개의 표적만을 기록하고,
에고 에이미 7가지를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고,
그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는 데 목적을 두고 기록하였다고 말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 생명(영생)이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도마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때가 되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어지는 믿음을 주셔서, 여기까지 믿고 살아오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님!
이 믿음 잃지 않고 주님을 대면하는 날까지 지키고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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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의 주님 ]
부활하시는 예수님은 두려움과 의심속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참된 믿음과 사명의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19-21a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신 예수님은
두 번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평강의 선포였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짓누르던 두려움과 실패의 기억은 그 말씀 앞에서 녹아내렸습니다.
닫힌 문이 주님의 임재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두려움도 주님의 평강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평강을 우리 삶의 근간으로 삼고,
세상의 두려움에 갇히는 대신
주님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21b- 23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며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셩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창 2:7),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불어넣으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이 세상에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4-29절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체험에 의존하는 믿음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증언을 신뢰하는 믿음이 더 복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뵙지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도마처럼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기보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성숙한 믿음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믿음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굳건히 세우며,
주께서 약속하신 참된 평안과 복을 누리게 합니다.
30-31절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알리고,
사람들이 그분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를 묵상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부할하신 주님이 선포하신 참된 평강을 누리며 그 평화를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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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이 있을지어다 ]
찬송가 189장 진실하신 주 성령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자들을 위하여,
표적을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한 자들,
심지어 표적을 보고도 머뭇거린 자들,
즉 그들을 위하여 요한복음이 기록되었습니다(31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지금 이 시점까지는 아직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은 21장 이후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 28:16-17]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궁극적으로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 복 곧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29절).
보고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핵심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31절).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영으로 느끼고 믿어야 하는 분입니다.
제자들이 무수히 많은 표적을 보고도, 최종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잘 자라지 않는 상황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위로입니다.
우리는 의심 많은 제자의 대명사로 ‘도마’를 듭니다.
그러나 사실 도마만 유달리 의심이 많은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 모두가 도마와 똑같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 두 번에 걸쳐 나타나셨습니다.
한 번은 도마가 없을 때, 그다음에는 도마가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다 모이지 않은 줄 모르고 나타나셨다가,
'어, 도마가 빠졌네? 에이, 다음에 도마 있을 때 다시 와야겠다.' 하시며
다시 나타나는 수고를 하신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이 닫힌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문이 닫힌 방 안에 도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능력도 당연히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도마를 통해 나머지 제자들 역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자들임을 깨닫게 해 주시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두 번 나타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직접 보고 만지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떼를 쓰는 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아, 나도 지난번 그 자리에 없었다면 똑같이 저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무수히 많은 표적을 보고도, 최종적으로는 가장 놀라운 표적인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만졌음에도,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불신앙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결국 순교자의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이런 제자들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 없음에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19, 21, 26절).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제자들(19절)에게 하신 말씀이요,
그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지금의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22절).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믿는 자로 만들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보고서 믿는 자가 아니라 보지 않고서도 믿는 자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믿음 적은 것 때문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제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믿지 못해도,
예수님은 그들이 온전한 믿음에 이를 것을 믿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십니다.
돌아서서 곧바로 '사탄'이라고 꾸지람을 들을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셨던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마 16:13-23).
베드로에게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셨듯이,
제자들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실 성령님을 믿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보다 더 좋은 증거를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증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계속 계시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복된 선물이신 성령님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님은 예수님보다 더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분’(파라클레이토스)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밖에서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비로소 가능하게 된,
죄인 가운데의 하나님 임재의 실체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죄인인 나와 다른 생각으로 권면하시고
다른 감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성령님을 경험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평강을 누립니다.
여전히 두려워하고 여전히 의심하는 불완전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평강을 누립니다.
우리 평강의 근거는 나의 확신, 나의 단단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 안에 보증으로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주 예수님, 우리에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부활 생명을 약속으로 보여주셨네요.
이 약속, 이 소망이 너무나 엄청나서 우리가 잘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신 거지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결국은 온전히 믿게 만드실 것을 기대합니다.
사도들에게 순교의 믿음 만들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보지 않고 믿는 믿음 만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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