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9. 06:06

2026.4.9. 목요일

창세기 22:1-24

 

- 하나님의 시험과 명령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순종의 여정과 믿음의 대답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아브라함의 결단과 하나님의 인정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여호와 이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맹세로 확증된 언약의 복

여호외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 나홀의 족보와 리브가의 출생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유명한 사건이다.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지시를 받을 때 한 마디도 질문하지 않았을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는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 번 협상하던 그가 아닌가

 

밤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것이고 아침 일찍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노년에 낳은 독자, 금쪽같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던가?

아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어디로, 왜 가는지 물었다는 내용이 없다.

사라는 훗날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커다란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야살의 책에는 며칠 째 돌아오지 않는 이삭을 찾아 

브엘세바 집을 떠나 떠돌다가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삭은 번제물이 궁금했을 것이다.

가는 길에 번제물을  구입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종들에게 물어 봤을까? 

참고 참다가 궁금해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여호와가 준비하신다는 아버지의 대답에 의문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했을 때 이삭이 저항했다는 기록이 없다.

아버지 뭐 하시냐고, 왜 나를 결박하느냐고, 왜 나를 죽이려하시냐고 소리치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성숙한 믿음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신앙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테스트를 받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침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는 냉철한 인간이 아니다. 작은 것에도 요동치는 감정을 가진 연약한 존재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이다.

이삭과 사라와 아브라함에게는 평생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일이었다.

이 일로 이삭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엄청난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모리아 산 제단이 머리에 떠오르고 결박된채 번제단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

칼로 자신을 내리치려는 아버지의 모습, 절대절명의 그 순간을 말이다. 

이후에 사라가 죽고 아브라함이 재혼한 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헤어져 살았다.    

믿음으로 모든 감정이 설명되고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에만 주목한다.

물론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큰 복과 자손의 번창과 그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을 약속받는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순종은 하였지만 이 일에 마음이 온전히 편했을까?

믿음으로 나아갔지만 독자를 자신이 칼로 죽이려했다는 사실은 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아브라함도 커다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을 시키셨는지 하나님을 원만하지는 않았을까?

꼭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셔야 했냐고 따지지 않았을까? 

비기독교인이라면 존속살인의 살인미수죄를 범한 비정한 아버지라고 비웃지 않을까?

 

아브라함의 순종이 믿음을 확증받은 사건이었다. 마지막 관문을 잘 통과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발생한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잊을 수 없다.

나에게 가장 귀한 것보다 하나님을 더 섬기는지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는가?

독자 이삭에게 온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뒤로한 책임인가? 

 

주님

머리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배우고 그 믿음을 따르라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마음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사라가 받았을 상처에 가 있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드리겠다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담대하게 말하지만

아직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주여 나의 이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당신은 생명을 주시고 나를 구원하셨는데, 나는 생명을 내어놓을 준비가 아직 안 되었습니다.

주여 이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던 자신의 고백에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성령님, 내 안에 충만히 내주하셔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주님이 사실 수 있도록 통치하시고 다스려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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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결박한 믿음 ]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하여 그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1-2절

아브라함을 믿기에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부르면 즉각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는 관계이기에 연단하십니다.

그가 민족과 나라에 관한 약속의 첫 열매인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뿐 아니라 

그 외아들을 '요구하시는 하나님'도 믿기를 바라십니다.

혈육이라는 인간적인 수단이 소멸할지라도 기필코 이루실 약속을 신뢰하길 원하십니다.

나를 믿으시는 주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3-8절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준비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보다'(준비하다. 히. 라아)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번제를 드릴 곳을 바라본(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제물을 보실(준비하실) 거라고 고백합니다(8절).

아브라함이 살펴본(13절) 숫양은, 하나니이 봐 두신(준비하신) 것입니다(14절).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우리보다 앞서 보시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신 하님을 볼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라아'의 미래형)는 직역하면 '하나님이 보실 것이다'이니,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목격하고 경험한 자들의 고백입니다. 

 

11-14절

아브라함이 아들을 향해 칼을 치켜든 것을 보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며, "친히 준비하시리라"던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숫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향해 칼을 들기 전에는 주께서 예비하신 것이 절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15-18절

외아들을 바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을 다시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이유는 바로 이삭을 드린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천국행 무료입장권이 아닌, 나의 이삭을 드리는 일입니다. 

 

9-10절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의 절정은 이삭의 탄생이 아닌 이삭의 결박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 4:17) 창조주의 능력임을 믿었고,

창조주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줄로"(히 11:19) 확신한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삭을 주께 바치고 주님을 얻을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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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한 마지막 시험을 하십니다.

이삭을 바치는 시험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아브라함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아브라함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주신 말씀이지만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은 이런 명령을 내리는 분이 아니시라고, 

그럴 마음도 먹지 않는 분이시라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7: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런데 아브라함은 실제로 자녀를 불에 살라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하나님, 지금 하신 말씀은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하실 수 없는 말씀이네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삭을 상속자로 삼으시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15:4-5).

 그런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라는 명령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 이 명령은 도저히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들은 이 소리는 하나님을 흉내 낸 마귀의 음성이 분명합니다.

 저는 듣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반응할 법합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순간의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람의 명령은 앞뒤가 다른, 말도 안 되는 명령인 경우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앞뒤가 달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능히 말이 되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 수준에서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하는 믿음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납득이 안 돼. 나는 그런 경우 순종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셨습니다. 

충분히 훈련시키고 또 모의고사까지 치르게 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시험이 바로 모의고사였습니다. 

육신적으로 따지면, 이스마엘도 이삭과 똑같은 아들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소중하고 각별한 아들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첫아들이었으니까요. 

그냥 첫아들이 아니라, 나이 86세에 얻은 첫 아들입니다. 

얼마나 애지중지했겠습니까? 

그 아들을 내쫓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내쫓았습니다. 

재산을 주어 이주를 시킨 것이 아니라,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주어 그 엄마와 단 둘이 나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없으면 광야에서 기진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은 마지막 시험을 맞이하였고,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시험이지만 오히려 더 잘 치렀습니다.

겁 많고 실수 많고 믿음도 그렇게 굳센 것 같지 않은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의 확실하고도 직접적인 명령 앞에서는 즉각 순종하는 기특함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믿음이 일관되지 못하고 약해진 모습 보일 때도 많았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 면전에서 불복한 일은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볼 수 없는 명령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이 분명할 때는 토 달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많이 부족한 아브라함이지만, 이 면에서만큼은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무작정 고향 친척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살아있는 아버지를 버려 두고(11:26, 32절, 12:4 참조) 떠났습니다. 

물론 가나안에 계속 머물지 못하고 애굽으로 도피하는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순종하는 자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가나안 왕들의 전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지키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을 통해서, 그 군대장관 비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사랑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 쫓으라)을 다 들으라 하실 때,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도 단호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 돌이킬 기회가 수도 없이 많이 있었지만, 

끝까지 순종의 길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선지자(20:7)라고 부르십니다. 

그의 삶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죽기까지 복종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대언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를 대언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 곧 복음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서 이 선지자의 사명은 이삭을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이삭이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오르는 장면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모리아산의 살 떨리는 순종의 시험을,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잘 치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배필을 이미 준비해 놓고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믿음의 계보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십니다(20-24절).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의 계보를 이어갈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런 믿음의 용사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 많이 부족힌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도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남자의 체면을 많이 구긴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이 부족한 아브라함을 

여러모로 훈련 시키시고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베풀어 

마침내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놀라운 순종의 믿음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 만들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모로 훈련 시키시고 감당할 수 있는 시험으로 준비시켜 주옵소서. 

그렇게 만들어진 믿음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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