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누가 부활의 주를 만나는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5. 07:29

2026.4.5. 주일

요한복음 20:1-18

 

- 빈 무덤을 확인한 마리아와 제자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싸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 천사들과의 만남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러 여자야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마리아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지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게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

 

.......................................................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무덤에 찾아갔다.

빈 무덤에 시체가 사라진 줄 알고 달려가 제자들에게 말하자

베드로와 요한이 한 걸음에 달려가  빈 무덤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냥 시체를 찾으려는 아무런 행동이나 노력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 상황에 어찌할 바 몰라 슬피 울고 있다.

그녀는 울면서 다시 무덤을 자세히 바라본다. 그 때 그녀의 눈에 두 천사가 보인다.

천사와 이야기하는 중에 자기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라 부르신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너희들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며

곧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것이라 전하라 하신다.

그녀는 달려가 제자들에게 주님을 보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을까

새벽 일찍 무덤을 찾는다. 요한은 마리아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무덤을 찾지 않았을까?   

빈 무덤 앞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자들에게 달려가 상황을 이야기하자 제자들도 달려가 직접 상황을 확인한다.

주님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싸던 세마포가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주님의 시체를 찾을려고 노력고 하지 않고 세마포만 확인하고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에 대조적으로 이 난감한 상황에 울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자세히 무덤을 들여다 본다.  그러자 천사가 보인다.

천사들이 왜 울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러자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를 누가 옮겨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울먹이며 대답하자

뒤에 서 계시던 주님이 마리아에게 천사들처럼 왜 우는지 또 물으신다.

슬픔에 잠겨 말을 걸어 오시는 주님을 자세히 바라보지 않고

동산지기인줄로 여기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러자 주님이 마리아야 부르시자 익숙한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반가운 마음에 '랍오니'하고 달려가 주님을 붙들려 한다.  

주님은 자신을 붙드는 것을 허락치 않으시고 대신 제자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신다. 

마리아는 곧장 제자들에게 달려가 주님을 보았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 주었다.

 

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가

주님을 사랑하고 늘 주님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자가 주님을 만날 것이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지 그렇지 않은가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향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세상 근심에 마음을 다 빼기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 없다.

주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주님이 자기 앞에 서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 마리아처럼 말이다. 

 

주님이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신다. 

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이 직접 주님을 보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전해 들어야만 했을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리아 같은 심령이었다면 그들도 주님을 직접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주님은 그 자리에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지 그들이 눈이 어둡고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나의 하나님, 너희들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

인간들의 죄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이를 

하나님과 사람을 아버지와 자녀로 화목시키셨음을 가르쳐 주셨다. 

 

주님은 왜 마리아가 주님을 붙잡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가?

이 땅에 계속 머무시도록 하는 붙듦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이 땅이 아닌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 함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인가?

아니면 부활의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재촉하시는 말씀인가?

 

몸을 샀던 새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다른 복음서에는 세마포와 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시체를 강제로 가져간 것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인가?

 

주님

당신은 육체로 완전히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육체를 가지신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이 육체로 부활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나같은 죄인도 주님처럼 부활할 수 있음을 믿고 간절히 소망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마리아처럼 주님을 뵙고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부활절 아침입니다.

성령님, 오늘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내가 듣고, 살아계신 주님을 뵙기 원합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시고 중보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복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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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신 주님 ]

 

안식 후 첫날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제자들은 빈 무덤만 확인하고 돌아가지만, 마리아는 남아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1-10절

부활하신 승리와 생명의 주이십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들은 두 제자는 급히 무덤으로 달려가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몸을 담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시신이 도난당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으나,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빈 무덤은 부활의 분명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꺾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약속을 누릴 것입니다.  

 

11-15절

슬퍼하는 마리아 뒤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슬픔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이 슬픔이나 절망에 가려지면,

부활하신 주님이 곁에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처럼 슬픔에 짓눌려 곁에 계신 주님을 못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슬픔의 눈물을 닦고 믿음의 눈을 들 때

부활하셔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십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 하고 반응합니다.   

수많은 설명보다 익숙하고 사랑이 담긴 주의 한마디 음성이 마리아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요 10:3-4)는 말씀대로입니다.

절망의 순간, 주님은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우리의 부활 신앙은

나를 아시고 내 이름을 부르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경험에서 피어납니다.

 

17-18절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자신을 붙들고 서 있지 말고, 

지체 없이 "가서 형제들에게 이르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즉시 순종하여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듯이,

우리 또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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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보이신 예수님 ]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수제자 베드로에게도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도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나타나 보이신 사람은

일곱 귀신이 들렸었던(눅 8:2)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덤이 비었음을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달음질하여 무덤으로 갔습니다. 

달음질은 요한이 빨랐지만 정작 빈 무덤을 먼저 확인한 것은 성질 급한 베드로였습니다. 

세련되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 성질만 급한 사람이 오히려 믿음의 길에 더 유리한 듯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자질로서는 거기까지였습니다. 

빈 무덤을 확인하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냥 되돌아가고 맙니다.

요한에 비해서는 베드로가 믿음의 길에서 앞선 듯하지만, 

결국 결정적으로 앞선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탁월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기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무덤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보고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다고 울고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마음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가 더 탁월했습니다. 

자신들이 평생 쌓은 것이 무너질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던 그들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의 방편을 따라 오는 것이 맞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열정으로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것이 

은혜를 받게 되는 방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게 되는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은혜를 주시는 분의 긍휼과 자비에 있습니다.

12제자에 속하지도 않은 사람, 남자가 아닌 여자, 

여자 중에서도 귀신이 들렸었던 여자, 귀신도 일곱 귀신이 들렸었던 여자에게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을 최초로 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정치적 리더십을 고려하셨다면 당연히 베드로에게 먼저 보이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리더십은 권위나 경험, 능력으로 발휘되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돋보이고 탁월한 자로 앞에 서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란 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끌려가는 자로 확인되는 리더십이

교회의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서 받게 될 생명은 바로 이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생명입니다. 

단순히 영생불사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죽어서 다시 얻는 생명입니다.

이 부활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주님께서는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자복하는 자가 부활 생명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지금의 자신을 다 죽이고 다시 살리시는 역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은혜입니다. 

열심은 물론이고 믿음조차도 은혜에 앞설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주님의 기이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우리의 옛것들을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내어놓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아니 더러운 것들 투성이임을 자백하며 내어놓겠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폭로시켜 주시고 들춰서 내어놓도록 만드시옵소서. 

그렇게 벌거벗겨진 자리에 새 생명, 부활의 생명을 채워 주옵소서. 

은혜로 이 일을 이루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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