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13 월요일
창세기 24:50-67
- 라반과 브두엘의 승낙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 감사예배와 극각적인 귀환 요청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라
그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 리브가의 결단과 가족의 축복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될지어다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헤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니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리브가도 어머니 집에서 그리고 가족들과 인연에 미련두지 않고 곧바로 떠나는 결정을 한다.
더 며칠 체류하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종은 흔들리지 않고 지체없이 길을 떠난다.
사랑하는 어머니 사라의 죽음 후에 큰 슬픔에 잠겨 방황하고 있는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을 바라본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상황과 감정에 주저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다.
하루만에 딸을 먼 길로 시집보내는 것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에게는 힘든 이별이었다.
그런 사정을 배려하고 감정에 이끌렸다면 하룻만에 길 떠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인을 생각하고
맡겨진 일의 중대함을 명심하였기 때문이리라.
리브가의 결단이 대단하다.
어떻게 부모. 형제와 헤어지는 이 일에 단호한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남편될 가정이 부유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인물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을까?
아브라함의 종의 이야기와 오빠와 아버지가 여호와의 뜻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심했을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고향과 친척 집을 떠났던 일이 겹쳐진다.
떠남은 새로운 일의 시작이었다. 그 결정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다.
영적으로 보면 진정한 회개의 모습같이 다가 왹도 한다.
죄에서, 죄악된 세상에서 미련없이 과감히 완전히 돌아서는 모습처럼 비쳐진다.
이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본다.
종이 결혼 승낙을 받았을 때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는 모습,
라반과 브두엘이 이 일을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고백이.
리브가의 과감한 결단과,
리브가를 향한 부모들의 축복의 내용이 그러하다.
주님
세상에 미련두지 않고 살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 두지 않고 살겠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지는 사람들, 두고 떠나야할 사람들입니다.
언제가는 떠날 교회요, 헤어져야 할 교인들입니다.
성삼위 하나님만 바라보고, 천국만 소망하면서 살겠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성령님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인도해 주소서
남은 인생길에서 중요한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합니다.
잘 준비하고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 나의 앞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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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겠나이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미지의 땅으로 떠났듯,
리브가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체 없이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가겠다고 대답합니다.
50-51절
하나님을 의지한 아브라함의 결혼 계획,
믿음으로 주인의 명령을 따른 종의 순종,
그 믿음에 순적한 만남으로 화답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라반은 자신이 결혼을 승낙하고 말 여지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분명한 '여호와의 명령'이고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내게 어찌하지 못할만큼
말씀 안에서 분명한 주의 뜻을 발견하고 그리로 인도받고 있습니다.
52-53절
종은 라반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합니다.
라반의 허락을 이끌어 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아내 구하는 일에 사람의 생각이 들어설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뢰하는 곳에 참된 경배가 있습니다.
54-56절
종은 라반의 강청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즉시 떠나겠다고 합니다.
출발이 지체되면 리브가를 가나안으로 데려가는 일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참조 삿 19:5-10),
무엇보다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고 계심이 확실한데 자신은 뒤처져 머뭇거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긴 여행을 위한 휴식도 마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뒤따르는 것을 최우선에 둡니다.
주님의 종인 우리도 이처럼 철저히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57-60절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자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르는 먼 길을 즉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리브가의 "가겠나이다"라는 대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라"(12:1)는 명령과 같은 단어입니다(히. 할라크).
리브가의 이 담대한 순종은 하란을 떠날 때의 아브라함의 순종처럼(12:4)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데 중요한 고리가 되었습니다.
주의 뜻을 알고도 아직 머뭇거리는 일은 없습니까?
67절
리브가는 어머니를 잃은 이삭의 슬픔에 위로가 됩니다.
사라의 장막에 리브가를 들인 것은,
사라에게 약속된 '열국의 어미'가 되는 축복이 리브가에게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진 하나님 나라의 복은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위로와 기쁨으로 바꿀 것입니다.
제 삶 속에서 하늘의 뜻과 땅의 순종이 조화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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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필을 확인하는 최종 기준-하나님의 뜻 ]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브라함의 친족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된 장점을 보게 됩니다.
물질적인 욕심에 매이기도 하고(롯, 라반),
두려움으로 비겁한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아브라함),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확인되면 따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즉각 따랐고
롯이나 라반의 경우는 한두 박자 늦었다는 점이 달랐지만,
분명한 말씀 앞에서는 자신들의 뜻과 욕심을 접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과정 중,
세부적인 절차나 방법에 있어서 이견들이 생깁니다.
언제 하느냐, 누가 리더가 되느냐,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 등등입니다.
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이런 이견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큰 뜻은 다 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일치를 봅니다.
그런데 세부 절차와 방법에 있어 서로 의견이 나뉘며 심지어 분쟁이 발생합니다.
이때의 해결책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명의 당사자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관한 한 하나님의 뜻에 가장 민감한 자는, 바로 사명의 당사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의 가족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리브가가 종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는 것에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모두가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당사자인 리브가의 의견에 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권위 있는 자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다수결도 아니었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명의 당사자인 리브가로서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로 이미 결심한 리브가로서는,
다른 누구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브가를 맞이하는 이삭의 태도에서도 동일한 순종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22장에서 보듯이 이삭은 참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아브라함이 아닌 이삭이 나무를 지고 갔다는 것은
이삭이 짐을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장성하였음을 알려줍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할 때에 반항하거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기꺼이 자기 목숨도 내어놓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내를 얻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해지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이삭이 했던 것은 묵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부모가 정해주는 배필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아들 에서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 줄 배필
곧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을 온유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종이 돌아왔을 때,
그가 리브가를 아내로 맞기로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한 것은
리브가에 대한 확인이 아니었습니다.
리브가가 얼마나 예쁜지, 성격이 어떤지,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들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음에 있어, 유일하게 확인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배필이냐 아니냐였습니다.
이삭은 종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와 이삭이 만나서 서로를 배필로 받아들이고 확인한 최종 기준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명을 함께 감당할 의사가 있고 그 사명에 적합한 자질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확인해야 할 배필의 기준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기준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배필인가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의 잘남을 따져보고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선택하여 내게 주신 배필임을 확인함으로써
받아들이는 믿음이 존경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신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선택하셨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을 전혀 보지 않으시고
신부로 맞아주신 우리 신랑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신부로서,
나도 동일하게 주님의 몸 곧 교회의 부요함과 건강함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택 하나만을 확인하고 섬김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마땅히 그리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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