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이삭의 기도, 하나님의 선택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15. 06:50

2026.4.15. 수요일

창세기 25:19-34

 

- 이삭의 간구와 리브가의 임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담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 쌍둥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민족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 에서와 야곱의 출생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상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 형제의 성향과 부모의 편애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 장자권을 판 에서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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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귀한 집안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린다.

결혼 후 20년이 지나서 쌍둥이 아들을 얻는다.

 

왜 자녀를 늦게 주시고 쌍둥이를 주시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다.

이삭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고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인가?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며 모든 것을 이루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인가?

젊은 날 자신이 번제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고 기다리는가? 

달랑 아들 두 명인데  태중에서 부터 시작하여 평생 원수처럼 싸우고 부딪히고 갈등함으로 인하여

자식들을 위하여 평생 기도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삭은 평생 리브가 한 명만 아내로 삼고 살았다.

이복 형제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더 이상 결혼과 후손에 대하여 미련을 갖지 않았던 것일까?

 

리브가가 싸움으로 표현한 태 안에서 태아가 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쌍둥이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인간적으로는 보면 활달하고 용감해 보이고 개척적인 성격의 에서가 가정을 다스릴 것 같은데

조용하고 집안에는 있으며 여성적으로 요리나 하는 야곱이 실질적인 집안의 장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판단과 달랐다. 

사람의 능력과 외모와 성격이 아니었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니 이들이 태어나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복중에서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오늘 이삭의 기도와 기다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구원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능력과 외모와 성격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가에 달려 있음을 봅니다.

아니 만세 전에 택하여 불려 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셔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겠습니다.

성령님 내 마음이 오직 주님께로만 향하게 도와주소서.

세상의 것들로 영향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굳건한 마음 주옵소서.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신뢰하며 의지하고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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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

 

이삭과 리브가가 20년을 기다려 낳은 에서와 야곱은 태에서부터 다투기 시작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19-21절

'천만인의 어머니'(24:60)가 될 리브가에게 오랫동안 자녀를 주지 않으십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자녀를 얻었으므로(20,26절),

그의 '간구'(21절)는 20년간의 끈질긴 청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즉각적인 요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뜻에 대한 응답을 지체하심으로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게 하십니다.

기도 제목이 응답되어 기도를 멈추는 것보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 때문에 이삭처럼 기도하는 것이 복일 수 있습니다.

 

22-23절

태 안에 있는 쌍둥이의 씨름 속에서 야곱을 통해 이루실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장자권에 대한 당대의 상식을 뒤엎는 계획입니다.

어린 자, 과부, 고아, 나그네, 세리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뒤집힌 관심처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은혜로, 거룩한 지혜로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을 보이십니다. 

 

22-26절

야곱과 에서의 분열과 대립은

야곱(이스라엘) 민족과 에돔 민족 사이의 오랜 갈등을 이해하는 기초가 됩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롬 9:11)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됨이 인간의 탁월함이 아닌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비롯됨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에서가 아닌 야곱의 길에 있는 것도,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29-34절

야곱은 사고팔 수 없는 장자권을 속여서라도 쟁취하려는 교활함을 보이고,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는 경솔함을 보입니다.

에서는 미래보다 현재를 중요시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야곱은 미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스런 야망을 보입니다.

팥죽 이야기는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 영원한 가치를 저버린 에서의 영적 무감각을 강조하지만(참조, 히 13:16),

야곱 역시 하나님의 용납과 인도 없이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 죄인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어제의 우리를 용납하신 하나님이 새로 허락하시고 이끌어가시는 하루입니다.

팥죽 한 그릇과 같은 세상의 것들에 흔들릴 삶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야곱보다 더 특별하게 저를 선택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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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이 받은 복 ]
찬송가 427장 맘 가난한 사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선뜻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하자마자 곧바로 이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약도 없이 약속을 해 놓으시고는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너무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러시더니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인 이삭에게도 그리하십니다.

왜 그러시는 걸까요? 이삭의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며 생각해 봅니다.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와 늦은 결혼을 하였지만, 자식이 없어서 애를 태웁니다.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21절).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흘러갔습니다. 여전히 자식이 없습니다.

결혼 후 20년이 되기까지 애태우며 간구하였습니다.

그렇게 60세에 얻은 아들이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였습니다(26절).

20년만에 얻은 아들인데, 너무나 감사하고 반갑고 기뻐야 할 임신 가운데서 

이삭 부부가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태속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22절). 그냥 보통 싸웠다면 웃어넘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들 장난으로 여기며 웃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나 심하게 싸우는지, 리브가가 고통과 염려 중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여호와께 또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괜찮다, 아무 염려하지 말라'가 아니었습니다. 

태중의 아이가 두 민족으로 나뉠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된다는 기괴한(?) 말씀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었던 이삭과 리브가에게 20년만에 생긴 자식은 마땅히 복덩어리와 기쁨의 원천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한꺼번에 두 아들을 주셨다고 기뻐했던 이 쌍둥이는, 

두고두고 부부를 걱정시키며 기도하게 만든 애물단지였습니다.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싸우며 나오더니, 하는 짓과 성격이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거칠고 외향적인 성격의 에서는 들사람이 되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야곱은 집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은 물과 기름처럼 같이 섞일 수 없는 성격이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산 사건을 계기로 

둘의 대립은 본격적인 상속 전쟁으로 격화되어 갔습니다.

참 온유한 사람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하는데, 무슨 복이 이렇습니까? 

오랫동안 아들을 주시지 않고 애간장을 다 태우게 만드시더니, 

20년 만에 얻은 아들들이 평생을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며 한숨짓게 만드십니다. 

부모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식들이 서로 의좋게,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다 주고 맛있는 것 많이 가져다주어도, 

자식들이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꼴을 보면서 행복해할 부모는 없습니다. 

많은 자식도 아니고 달랑 둘 있는 자식들인데...ㅠ

겉으로 보기에 이삭은 아브라함에 비해서 참 평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26장의 흉년 사건 외에 그의 인생을 굴곡지게 만드는 어떤 외부적인 시련이 없었습니다. 

26장의 사건도 사실 시련이라 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삭이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내면적으로는 이삭이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평생을 자식 때문에 속 썩이면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25:11). 

무슨 말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려 한 진짜 복이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은 자식이 복인 줄 알고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한대로 자식을 주셨지만,

하나님께서 정작 이삭에게 주신 복은 다른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또 이삭이 이어받은 복은, 

하나님 경외를 잃지 않게 만드는 복입니다. 

부족함과 미천함이 계속 드러나는 가운데 어찌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로 살아간 것이 복입니다.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도록,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 끊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것이 복입니다.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게 된 것이 복입니다.

이 경외하는 믿음으로 인해 아브라함과 이삭은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가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가족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 애통하는 자의 복 다시 붙듭니다. 

애통하는 상황 만들지 않으면 하나님 경외를 금방 팽개쳐 버릴 죄인이기에 그러신 줄 압니다. 

이삭같이 온유한 자에게도 애통이 필요하였다면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음을 인정하며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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