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16. 목요일
창세기 26:1-11
- 흉년과 하나님의 지시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 언약의 재확인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듣고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레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 이삭의 두려움과 거짓말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 진실을 알게 된 아비멜렉의 보호령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의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
아브라함 시절과 이삭의 때에 큰 흉년이 들어 살기 위해 이동을 한다.
아브라함은 애굽까지 내려갔고 이삭은 그랄까지 내려간다.
차이는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더 이상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머무른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랄에 장막을 치고 지낸다
무엇이 그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었을까?
그 땅은 약속의 땅이다.
아버지로부터 이 약속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을 부어주시는 체험을 한 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일까?
부전자전인가?
애굽에서 사라를 누이라 하여 자신만 위기를 피하려던 모습을 이삭도 따라한다.
아버지에게 과거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따라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생존의식에서 나온 행동일까?
아브라함과 이삭은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연약하고
가족과 아내를 지키고 돌보는 데 있어서 약한 모습,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어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저자는 왜 동일한 상황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연약함,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을 말씀하고 싶은 것일까?
사라를 지키시던 하나님이 이번에도 리브가를 지키신다.
언약의 자손들이 그녀들을 통하여 이어져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사람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인입니다.
어리석고 무지하며 임시 방편적인 생각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다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보호자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바라고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성령님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주님만 의지하며 살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의 돌보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더불어 기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가장이, 남편이 되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은혜의 말씀을 붙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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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버지 그 아들 ]
아브라함은 애굽과 그랄에서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는 비겁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12:10-20, 20:1-18).
애굽으로 가려다 그랄로 향한 이삭도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전체
아브라함에게 그러하셨듯이 이삭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보호하고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모두 '그랄'에서 기근을 만났고,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다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으며,
우물을 파다가 블레셋 족속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민족의 어머니'가 될 두 아내를 아비멜렉에게서 되찾아 주시고,
두 사람 모두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게 하셨으며,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로 짓게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어리석고 답답하고 약한 모습이라는 데 있어 그러하지만,
하나님의 끈질긴 은혜를 입는 데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똑같이 넘어지고 무너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일으키고 나아가게 하는 역사를 반복하십니다.
2-5절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삭에게 가지 말라 경고하십니다.
아무리 기근이 심해도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의 약속을 들려주시면서
이삭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약속만 믿고 계속 이 어려움의 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절
약속의 땅에도 기근은 찾아옵니다.
아브라함도 경험했던 그 기근입니다(12:10).
그리스도인에게만 고난이 비켜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만이 고난 뒤에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이 있다고 믿습니다.
6-7절
순종 뒤에 곧 불순종이 이어집니다.
자손의 복을 약속으로 받고도 복의 통로인 아내를 넘겨줍니다.
오늘의 순종이 내일의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말씀을 청종하고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고전 15:13).
10절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은 동일하게 하나님을 모르는 아비멜렉에게 꾸지람을 듣습니다(20:9).
주께서 세상 사람들을 통해 내게 들려주시는 경고와 책망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순종에 자만하지도, 오늘의 실패에 절망하지고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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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여기시는 믿음 ]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또 흉년이 들었고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또 애굽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아브라함 때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듯하나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가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땅 그랄에서 멈추었습니다.
‘이 땅’에 있기만 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이삭은 복을 받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남자답지 못하기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여서
리브가를 누이라고 하며 데리고 다니는 이삭이 뭐가 이쁘다고 복을 주시는 것일까요?
남자답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있어야지요.
믿음의 조상에 걸맞는 담대한 믿음이 이삭에게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 없는 짓을 해 놓고 들키지나 말지,
바보같이 아비멜렉에게 들켜서 하나님의 백성을 도매금으로 욕먹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은 감히 이삭을 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블레셋의 왕을 뜻하는 호칭입니다.
당대의 아비멜렉은 그 옛날의 아버지 아비멜렉에게서
아브라함 족속 건드리지 말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삭을 시기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적대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주관하셨습니다.
감히 이삭을 적대할 수 없도록 그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삭을 후대하시는 것은
그가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삭이 예쁜 짓을 많이 해서도 아님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헌물을 드려서도 아닙니다.
열심과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를 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유일한 이유는 이삭이 언약 안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이 땅’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라고 한 바로 그 땅입니다.
[창세기 12:1-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12장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언약에서 유일한 언약의 성취 조건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조건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 이것 외에는 아무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것만 하면 복을 주겠다고,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겠다고, 복덩어리(복의 근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담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남자다움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약 안에 있었습니다.
적어도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유일한 조건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언약 안에 머무르고 있는 이삭을 지키셨습니다.
용기가 부족하고 실력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좀 찌질해도 상관없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없어도 됩니다. 언약 안에만 있으면 됩니다. 언약을 떠나지 않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이 고백과 믿음이 분명하면 됩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비겁한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소중히 하며 그것만은 붙들어야 합니다.
에서가 하지 않은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브라함 가문의 언약권, 장자를 통해 계승되는 그 언약의 권세를 가벼이 여겼습니다.
거짓말 잘 하고 비겁하고 쪼잔한 야곱이지만
이 언약의 권세를 알고 그것을 귀하게 여겼기에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말라기 1:2-3]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주님, 참 남자답지 못하고, 소심하여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으니 나는 가장 복 받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이 복을 결코 놓치지 않겠습니다.
나의 못남 때문에, 나의 무능함 때문에 기죽지 않겠습니다.
언약 받은 자라는 것, 적어도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부인하지 않는 이 믿음 있는 것,
이 한 가지로 인해 당당해지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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