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18. 토요일
창세기 26:34-27:14
- 에서의 결혼과 부모의 근심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 이삭의 노쇠와 장자 축복 준비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른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획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 주저하는 야곱과 강권하는 리브가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근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질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
이삭은 장자권이 야곱에게 넘어간 것을 세우러이 지나 잊어버렸을까?
반면 리브가는 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들의 실수와 죄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이삭과 리브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걸림돌을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 실수들 마져도, 잘못된 선택마저도 사용하신다.
리브가의 이런 행동은 에서의 결혼과 실망에서 발단한 것인가?
아니면 편애하던 야곱이 장자의 복을 꼭 받기를 원한 결과인가?
아니면 큰 아들보다 작은 아들이 크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인가?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객기를 부리면서까지
거짓말과 속임수로 목적을 이루려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까?
이삭은 육신의 눈만 먼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도 멀어 버렸던 것일까?
분명히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서 잊어버린 것인가?
기도하던 사람 이삭이 아니던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겨버린 에서처럼
별미 한 그릇에 축복권을 잘못 행사하려고 한다.
장자의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도록 영적으로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했다.
에서가 부모와 상의 없이 자기 마음대로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하도록 방치했다.
그로 인하여 근심만 하고 책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로서 가장이 권위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편애하는 아들이라 아들이 좋아 하는대로 그냥 묵인해 주는 것인가?
육신의 연약함과 노쇠함이 영적인 민감함도 영향을 미친 결과인가?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은 사라지고
인간의 욕망과 편애, 편견을 따라 행동하는 노쇠한 노인의 모습만 보인다.
야곱도 이삭과 리브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뻔히 잘못된 일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일임을 알면서도
들통이 나면 저주 받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장자의 축복이 더 탐이 나서 리브가의 작당에 못이기는 척 동참한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낳게 만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한 성경의 말씀 대로다.
주님
인간의 욕심과 경험과 편견과 지식에 의지하여
잘못된 판단으로 실수하거나 죄를 짖지 않게 도와주소서.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영육간에 강건하게 도와주소서
주를 향한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바르고 신실하고 굳건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충만히 내주하셔서 나를 통치하시고 지배하셔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더 분명하고 확실하고 단단해지며 성숙해지게 은혜 베풀어 주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들고 살아가겠습니다.
--------------------------------------
[ 하나님보다 앞서는 사람들 ]
에서의 혼인 선택, 이삭의 편애와 축복 시도,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가 얽혀 있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여전리 전진합니다.
전체
아브라함은 언약을 잇는 이삭의 집안은 사실상 상처와 불신, 편애와 조급함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왜곡된 선택까지 사용하여 언약 성취의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언약의 성취는 인간의 의로움이나 지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34-35절
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헷 사람의 딸들, 즉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가나안 여인을 엄격히 금지한 원칙(24:3)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자신의 안목과 정욕을 따랐으며, 이러한 태도는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습니다.
신앙과 언약의 가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자기 욕구에만 충실하면
공동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게 근심을 안기게 됩니다(엡 4:30).
27:1-4
하나님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말씀하셨고,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스스로 자격 없음을 드러냈는데도,
이삭은 자신이 사랑하는 에서에게 장자의 복을 주려 했습니다.
또한 아들에게 축복의 조건으로 영적인 준비가 아닌 '별미'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만족과 인간적인 정을 앞세웠습니다.
기호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면 영적인 눈이 어두워집니다.
사심을 버려야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27:5-14
리브가는 에서를 축복하려는 이삭의 계획을 알아채고,
야곱이 그 축복을 받도록 이삭을 속일 계획을 세웁니다.
임신 중에 받은 말씀(25:23)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짓말과 속임수로 뜻을 이루려 한 것입니다.
야곱도 들통나지만 않는다면 아버지를 속여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리브가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과정의 불의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선택은 결국 야곱이 20년간 타향살이를 하게 만들고,
모자가 생전에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낳습니다.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매순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게 하소서
===============================
[ 실패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
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이삭이 왜 이러는 걸까요? 리브가는 또 왜 덩달아 날뛰는 것일까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사람은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믿음이 퇴보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이 세지고 완고해집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이삭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영적인 눈도 같이 어두워졌음을 암시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믿음의 성장이 시간의 방향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서 이삭이 이상한 고집을 부립니다.
40년도 더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린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20년간 간구하며 기다렸던 자식의 잉태 가운데서 경험한 기이한 말씀을 잊어버릴 리가 없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편애하는 에서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권한으로 축복하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이삭에게도 이런 고집과 욕심이 있었네요.
말년에 이런 불완전함이 드러나네요.
누구도 믿음 앞에서 방심할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마지막까지 겸비하게 은혜의 구원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삭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도 마주 대항합니다.
리브가만이라도 좀 온유함으로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당찬 여자 리브가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은 좀 무리겠지요 ㅠㅠ.
하나님께서는 놓아두십니다.
이삭이 노년에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것도, 거기에 대항하여 리브가가 이삭을 속이는 것도,
야곱이 엄마의 등쌀에 못이기는 척 사기극에 동참하는 것도, 모두 다 내버려 두십니다.
쌍둥이가 출생 이후 장성하기까지, 이삭 가족의 삶이 외면적으로 너무 평탄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태중에서조차 싸웠던 쌍둥이들이
자라가면서 얼마나 많이 싸울지 조마조마하며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했던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자
모두의 마음에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평탄한 삶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실패와 시련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성도를 나태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삭의 가족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간섭하시면, 큰 아픔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믿음의 연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아프겠지만, 언약 자손의 계보를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단련이기에 실수와 실패를 허용하십니다.
[야고보서 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주님, 적당한 굴곡, 시련이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알겠습니다.
실패도 유익하게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연단을 통해 단단한 믿음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1) | 2026.04.21 |
|---|---|
| 안도의 전율 (0) | 2026.04.20 |
|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1) | 2026.04.17 |
| 부전자전 (2) | 2026.04.16 |
| 이삭의 기도, 하나님의 선택 (0) | 2026.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