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1. 06:54

2026.4.21. 화요일

창세기 28"1-22

 

- 야곱에게 내린 결혼 축복과 결혼 지시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담아란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내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담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 에서의 또 다른 아내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담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담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맞이하였더라.

 

- 사닥다리 환상과 하나님의 약속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리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너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야곱의 서원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나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게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

두 아들의 극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아내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밧담아람으로 야곱을 피신 시킨다.

이때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내용이 기억할만 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족속을 이루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땅을 차지할 것을 축복하는 장면이다.

이삭도 아브라함의 축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땅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땅이라는 것을 .

야곱이 그 언약을 이어갈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축복한다. 

 

에서는 끝까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버지 이삭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이삭이 야곱에게 한 명을 듣고 자신도 이스마엘의 딸 마할렛을 아내로 맞이한다.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야곱이 밧담아람을 향하여 가다 중간에 노숙하던 중에 꿈에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신다.

그리고 땅에 대한 약속을 먼저 하시고 자손의 번창을 말씀하신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언약을 이삭에게 들려주신다.

이제 야곱이 언약을 이을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 같다.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시기까지 함게하시겠다고 다짐하신다.

가짓말하고 속여 아버지로 부터 축복을 받아낸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한 마디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전폭적인 복을 내리시고 약속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그가 언약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어갈 사람이기에 그러하셨다.

 

야곱은 얼마나 흥분되었을까?

비록 아내를 구하러 가는 길이지만 형 에서로 죽을까봐 피하여 가는 길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첫 여행이다.

늘 지금까지 부모 슬하에서만 살다가 혼자서 먼 길을 떠나는 첫 여행이다. 

하나님의 복과 약속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였겠는가?

불안과 걱정과 염려가 사라졌을 것이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십일조를 바치며 하나님을 섬길 것을 약속한다. 

자신이 저지를 잘못에 대한 회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야곱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한 행동들에 대하여 반성하였을까?

그의 평생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벧엘을 기억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힘들때마다

교회를 찾고 기도원에 가고 의미있던 옛 장소를 찾아가듯이 벧엘로 올라갔을 것이다.

야곱과 하나님의 대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기대하며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길을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 

이삭의 축복과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는 야곱을 생각합니다.

야곱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언약의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여 주시고

저에게도 오늘 야곱에게 내리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자자손손 믿음의 가정을 이어가고 번창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크게 쓰임받는 가문이 되고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태어나게 해 주소서.

임마누엘의 하나님! 

성령 하나님 평생에 내 안에 충만히 내주하여 주셔서 저를인도하여 주시고 함께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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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

 

야곱은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남은 야곱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임마누엘을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동행에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1-5절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언약과 "자손과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아브라함 언약이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 전수되게 하십니다.

어그러지고 왜곡된 과정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언약의 상속자로 세우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킬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우리의 배경과 과거가 정돈되어 있지 않아도,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위로를 주고 책임감을 심어 줍니다.

 

10-15절

길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든 야곱에게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와

그 위에서 오르내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아삭에게 하신 언약을 다시 들려주시며, 

야곱을 지켜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속임수와 도피 끝에 홀로 남은 야곱에게 언약의 하나님으로 찾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불안한 밤, 가장 외로운 길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십니다.

 

6-9절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아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한 잘못을 만회하려 합니다.

하지만 언약의 계보가 아닌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한 것은

그가 여전히 언약에 무지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무감각함을 드러냅니다.

신앙의 본질을 놓친 채 행동이나 형식을 조금 손보는 것으로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중심성에서 완전히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16-22절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시고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아직 미숙하고 조건적인 서원이지만,

야곱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붙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말씀하실 때,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경험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도리 것입니다.

 

외로운 인생길에 늘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는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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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마누엘의 축복을 맛보는 자리 ]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순종, 불순종과 관계없이 성취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이삭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성취됩니다.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게 된 것은 리브가, 야곱의 꾀와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 꾀와 노력은 그들에게 고통만 더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삭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야곱에 대한 축복을 재확인해 줍니다. 

28:1-5절은 이삭이 온전히 자발적으로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순종, 불순종은 인간 자신에게 그 결과를 돌려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다시 불순종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불순종으로 인한 고통을 필요한 만큼 겪게 하십니다.

다윗의 경우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뼈아픈 고통을 겪었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은 결국 갓난아이로 죽었습니다. 

남의 아내를 몰래 빼앗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백주 대낮에 자신의 아내들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은 눈물의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동생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에서, 

그 에서를 피해서 수천 리 길을 걸어서 도망하는 야곱,

이들 형제를 바라보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는 이런 회한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베풀 것을...’

‘남편의 잘못을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오히려 더 나았을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알아서 하셨을 텐데...’

그 와중에 에서가 부모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애를 씁니다. 

아버지 이삭의 마음까지 완전히 야곱에게로 돌아섰다는 것을 알게 된 에서의 눈물겨운 노력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스마엘의 후손들 중에서 다시 아내를 맞이합니다. 

이삭의 마음이 더욱 아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에서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유로도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가여운 노력을 계속합니다. 

불굴의 의지와 신념으로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는 무익하거나 심지어 화를 초래할 뿐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사람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상하게 여기시는 것은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꺾는 순종입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애통의 과정을 통하여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자신의 뜻을 꺾고 기가 죽은 모습으로 순종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언약을 재확인하며 용기를 북돋우십니다. 

하란을 향하여 2천리길(약 800km)의 도망자 여행을 시작한 야곱이 

몇 일간의 고독한 여행 끝에 벧엘에 이르렀을 때, 그의 심정은 매우 참담했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을 재확인해 주신 시점과 자리들은 

거의 다 실패와 좌절과 두려움의 때, 자기 부인의 자리였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봅니다. 

12:1-3(하란에서 자녀 없음으로 장자의 면목이 없어진 때), 

13:14-16절(롯의 배신으로 상실감에 젖어 있을 때), 

15:1-5절(소돔 전쟁 이후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17:1-8절(99세가 되어 생산을 완전히 포기했을 때), 

22:16-18절(아브라함이 유일한 소망인 독자 이삭을 포기했을 때, 

                  이삭의 입장에서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 

26:3-4절(가뭄으로 이집트로 내려가는 도중의 이삭에게), 

26:24절(이삭이 그랄에서 블레셋인들에게 우물을 다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겨우 우물 하나 건졌을 때), 

그리고 오늘 본문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승승장구할 때,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하여 이기고 노략물을 도로 찾아왔을 때, 

이삭이 그랄 지방에서 농사하여 백배의 수확을 얻었을 때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가장 무기력하고 연약한 자로 인식하는 때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땅에서 하늘(하나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보여주시며 확인해주십니다. 

꿈속에 나타나셔서 재확인해 주시는 언약의 내용과 사닥다리는 무슨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재확인해 주시는 언약의 내용을 보면 그렇습니다. 

땅을 주시고 후손들을 번성하게 해 주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여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기도도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서원이 핵심이 되어있습니다.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함으로 온전한 임마누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언약의 회복에 대한 보증으로 사닥다리를 보여주셨고, 

그 언약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결코 떠나지 아니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시면서 

왜 굳이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에 강조점을 두실까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다면, 

굳이 사닥다리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 필요합니다. 그 땅이 단순히 물리적인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땅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땅입니다. 

그 땅은 사닥다리가 거기서부터 하늘에 맞닿아 있는 땅입니다. 

사닥다리와 연결된 바로 그 땅은 하나님의 집,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임마누엘의 은혜를 가능하게 하는 그 땅의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림 언어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예수님을 붙들지 않고서는, 이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고서는,

진정한 복, 임마누엘의 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임마누엘의 복이 실패와 좌절과 두려움의 때. 자기 부인의 자리에서 선포되고 재확인됩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믿음이 시작되는 자리, 임마누엘의 축복을 맛보는 자리는 이처럼 상실과 실패의 자리입니다.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깨어지고 상실감으로 비워진 심령에, 

사닥다리 되신 주님의 은혜를 꽉 붙드는 믿음이 깃들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얍복 강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야곱을 깨뜨리십니다.

주님, 하나님의 은혜 언약 안에서는 실패와 좌절의 자리가 오히려 복된 자리가 됨을 믿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신뢰하던 불신앙이 깨어지고 자기가 부인되어, 

정말로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쥐뿔도 없으면서 터무니없이 담대한, 그런 멋있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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