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레아의 찬송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3. 06:53

2026.4.23. 목요일

창세기 29:1-35

 

- 야곱을 속이는 라반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 라헬과의 결혼과 추가 봉사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 레아의 출산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은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하 하였으며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신부가 결혼식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반이 철저히 두 딸과 가족들에게 함구하게 명령하였을까?

야곱만 모르고 다른 모든 가족들이 철저히 야곱을 속이는 이 일에 동참한다.

라헬까지도 몰랐을까? 사랑하는 야곱에게 일말의 귀뜸도 하지 않았다

잔치애 참여한 이웃들도 레아가 결혼하는 줄로 알았을까?

'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야곱은 철저하게 속임 당하였다.

 

속임을 당한 댓가는 컸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혼만을 위해 14년이라는 젊은 날 소중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야곱은 그 기간 동안 자신이 형과 아버지에게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을까?

자신의 지난 날들의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잘못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르면서 야곱은 얼마나 변했을까?

하나님이 당신의 쓰실 사람을 오랜 시간 동안 훈련시키심을 본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훈련시키셨다.

훈련받지 않고 쓰임받는 성경적 인물은 없다.

인생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은 인물은 없다.

준비된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속아서 결혼을 하였다고 해도 아내가 된 레아를 사랑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아내에게 괴로움을 주고 사랑하지 않음은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야곱이 레아에게서 태어 난 자녀들을 사랑했다는 기록이 없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의 행동을 보면 야곱이 자녀들에게 어떠했는지 가늠이 된다.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가 야곱에게 이어진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말이 딱 맞는 말처럼 다가온다.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고통 당하는 레아가 안쓰럽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딸이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 라반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레아는 남편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식들만 낳고 기르면서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녀가 얼마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까?

자녀들의 이름에서 그녀의 마음과 믿음이 들어난다.

유다를 낳고 나서는 기도의 내용이 바뀐다.

남편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는다.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의 사랑만 기대하는 레아가 바뀌었다.

오직 여호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찬송하는 레아의 기도가

긴 세월 고통 속에서 기도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온

한 여인의 성숙한 믿음의 고백처럼 들린다. 

 

레아가 낳은 유다를 통하여 구원 역사가 진행된다.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가 이 계보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레아의 기도를 들이시고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를 사용하심인가?

야곱도 결국에는 그녀의 믿음을 인정한 것인가. 그녀의 역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인가 

야곱은 그녀를 조상들의 묘에 안치한다.

그녀는 젊은 날 괴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인생의 후반부와 사후에 합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으로 보인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던 하나님 아니신가

힘들고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게 하소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사랑하고 돌보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나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레아의 기도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찬송하며 영광을 올려 드리는

성숙한 믿음, 성숙한 기도자가 되게 하소서. 

 

---------------------------------------------------

[ 야곱을 향한 보응, 레아를 향한 위로 ]

 

외삼촌 라반의 속임으로 야곱은 라헬보다 레아를 먼저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레아는 아들들을 낳았음에도 야곱의 외면을 피하지 못합니다.

 

21-24절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명분과 복을 가르챌 때처럼,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이려고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일부러 사람들을 모아 야곱이 결혼을 무르지 못하도록 하고,

어둡고 정신없는 틈을 타 라헬이 아닌 레아가 야곱과 합방하도록 했습니다.

술수를 쓰던 야곱이 외삼촌의 술수에 당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꾀에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십니다(갈 6:7).

 

31-35절

사랑받지 못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야곱은 부모의 편애로 인한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레아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네 아들을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야곱이 가장 사랑한 라헬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레아의 아들 '유다'를 통해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 속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구속사의 주역으로 삼으시는 반전과 역전의 하나님입니다.

 

25-30절

악의 속성은 교묘히 숨는 것입니다.

자신을 속인 일로 야곱이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라반의 그것이 자기 뜻이 아니라 '우리 지방'이 관습이라 어쩔 수 없고

이후 '우리가' 라헬도 줄 것이라며 자기 만행을 '우리' 뒤에 교묘히 숨깁니다.

거짓은 그 자체로 불안하기에 도망치며 숨을 곳을 찾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당당하지 못한 것은

우리 안에서 악이 시작되는 징조임을 잊지 맙시다.

 

32-35절

레아는 셋째를 낳을 때까지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을 우선으로 두었습니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음으로",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는 이름짓기가

그 소원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그러나 넷째 유다를 낳고서는 남편에 대한 언급 없이,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내면의 공허가 채워지고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외롭고 괴로울 때 돌보시는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
찬송가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야곱 참 못됐습니다. 어찌 레아에게 이리할 수가 있습니까?

못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라반이 부당하게 한 것과 그것 때문에 레아를 구박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받은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였으니, 야곱이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구요? 

그렇다면 그가 나이 들고 눈먼 아버지를 속인 것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야곱은 아버지와 하나님으로부터 그 일에 대해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용서받은 자로서,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반에게는 혹시 섭섭한 마음을 가질지라도, 

레아에게 이렇게 앙갚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레아가 얼마나 서러웠으면 자식을 넷 낳을 때까지 

그 마음에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까지, 

자신을 선대하시는 하나님만으로 감사하며 찬송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야곱의 갈 길이 아직 많이 멉니다. 

험악한 세월을 많이 겪어야 하네요. 

우리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나서십니다. 

레아가 야곱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반면 야곱의 편애를 받은 라헬에게는 역으로 은총을 막으십니다.

이렇게 야곱에게 계속 신호를 주시는데, 야곱이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십니다. 

라헬은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고(30:2), 

레아에게는, 야곱의 구박으로 인한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어

입에서 찬송이 나올 때까지 자녀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레아는 셋째를 낳을 때까지도 여전히 야곱의 사랑에 미련이 있었으나,

넷째 유다를 낳으면서 야곱의 사랑 없이도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하게 됩니다.

레아가 야곱보다 훨씬 믿음이 좋습니다.

과연 열조의 묘실에 묻힐 만합니다(49:31).

사랑 받지 못하던 여자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확인하였습니다.

 남편이 있었으나 명목상의 남편이 있을 뿐이었던 여자에게 진짜 남편이 생겼습니다. 

남편 있는 여자에게는 자녀가 없었으나 남편 없는 여자에게 많은 자녀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남편으로 모시게 된 여자가 이제 더 이상 애통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남편에게 목을 매지 않습니다. 

세상에 목을 매면 애통할 수밖에 없고 가난한 수밖에 없으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었고 더 나은 복을 얻게 되었으니 이제 기뻐하며 찬송합니다. 

더 이상 못된 옛 남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는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우리에 대한 사랑을 독생자를 주심으로 확인해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기대하십니다. 

거저 용서받았으니, 은총 받았으니 너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용서받았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용서를 기대한다면, 

마땅히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땅히 용서하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먼저 드리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주님,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용서와 긍휼을 베푸는 사람 되겠습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내게 섭섭하게 대하는 것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빼앗긴 것보다 받은 복이 훨씬 많음을 잘 세어볼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계속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마누엘의 은혜  (0) 2026.04.25
라헬의 기도  (0) 2026.04.24
하나님의 인도하심  (1) 2026.04.22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1) 2026.04.21
안도의 전율  (0) 202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