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25. 토요일
창세기 30;25-43
- 야곱의 귀향과 라반의 회유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을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또 이르되 네 품삯으로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품삯 계약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려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게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 라반의 교활한 술수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을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양 떼를 치니라
- 야곱의 재산 증식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려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울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
들에서 양들을 치면서 고향을 생각하니 그리움이 사무치고 노년의 부모들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형 에서도 수 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화가 풀렸을 것 같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벧엘에서 만났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하고 다시 붙들었을까?
자신의 현실에 눈을 돌리보니 늘어난 가속들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결혼하여 자식들이 늘어가자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과
어떻게 가정을 일구어 낼까 고민하는 것은 가장으로서 당연한 생각이다.
계속해서 똑 같이 양만 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소유는 없었다. 자식 농사만 짓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이고 욕심 많은 야곱은 라반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야곱은 작심하고 라반에게 임금 협상을 한다.
비상식적인 임금 협상이 이루어졌다.
라반은 교활하게 자신의 양과 염소들 중에서 검고 얼룩지며 무늬가 있는 것들은
몰래 빼내 아들들에게 주어 3일 거리에 떼어 놓아
교배가 이루어질 확률을 영으로 만들어 야곱의 몫이 되지 않도록 한다.
라반도 알고 야곱도 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심으로 복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말과 행동의 불일치함을 보여 준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은혜에 합당한 삶의 모습은 거리가 멀다.
협상을 하고 다음날 야곱이 일어나 보니 온통 한가지 색 염소와 양떼들만 보였다.
또 속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고 괘씸하고 분노했을까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라반에게 항의했다는 기록은 없다.
서로 속이고 속이는 일이 벌어진다.
야곱은 비과학적, 비상식적,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양과 염소가 임신을 하게 한다.
당시 목동들이 쓰는 민간요법을 동원하고 하나님보다는 미신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기적적인 복을 내려 주셨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몇 년이 흘렀을까?
야곱에게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할 때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라고 한다.
야곱이 말한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버지 이삭에게도 소유한 땅은 없었다. 자신이 물려받은 땅도 없었다.
벧엘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기억하고 말한 것일까?
본향, 영원한 땅, 돌아갈 땅을 기억하고 나의 땅이라 말한 것인가
주님
누군가에게 억울함이 가지 않도록 모든 일에 공정하게 일하게 하소서.
불가능한 임금 협상에 기적적인 복을 주시는 공평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일들이 벌어짐을 생각합니다.
야곱의 불가능한 협상을 가능케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보호자 되시고 복의 근원이 되심을 깨닫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답입니다.
성령님
저의 삶의 주인 되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는 삶이 되게 해 주소서.
------------------------------------------
[ 공의로 갚으시는 하나님 ]
두 번째 7년이 끝날 무렵, 야곱은 라반을 떠나 독립하려 하지만
라반의 끈질긴 만류끝에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번성합니다.
32-36절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하십니다.
야곱은 자기 몫으로 점 있는 것과 무늬 있는 것, 검은 양과 염소를 취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짐승이 태어날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아는 라반은 흔쾌히 승낙하고,
자기에게 있는 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 검은 것을 철저히 분리하여 교배를 막았습니다.
이대로는 야곱이 도저히 번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마치 엘리야가 불을 구하기 전에 제단에 물을 부은 것처럼(왕상 18:32-35)
하나님이 일하실 무대가 마련된 순간이었습니다.
37-43절
착취하는 자를 벌하시고 착취당하는 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야곱이 사용한 '나뭇가지 요법'은 당시 목동들 사이의 민간요법이자,
어미가 교미할 때 보는 형상대로 새끼를 낳는다는 미신이었습니다.
나뭇가지는 유전자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는' 역전이었습니다.
이는 불의를 지켜보신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입니다(31:9-12).
하나님은 라반에게 속아 14년 넘게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한 야곱이 정당한 임금을 받게 하셨습니다.
25-26절
성도가 돌아갈 곳은 영원한 본향입니다.
라헬에게서 요셉이 태어났을 때, 야곱은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외삼촌의 집에 머물러도 되지만, 벧엘에서의 약속(28:13,21)을 기억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보기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늘 시민권자의 순례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빌 3:20).
세상에서 안정과 현상 유지만이 내 신앙의 비전이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27-31절
라반은 떠나려는 야곱을 붙잡기 위해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백지수표(품삯)를 내밀며 회유합니다.
결국 협상은 타결되어 야곱의 몸은 붙잡아 두었지만,
이미 상처 입고 돌아선 그의 마음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요일 3:18).
나는 돈과 말로 사람을 통제하려 합니까,
아니면 진심 어린 사랑으로 마음을 얻고 있습니까?
불공정한 현실 속에서도 공의롭게 갚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
[ 옛사람의 때를 벗겨주시는 은혜 ]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라반이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이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경험하였고 깨달았고 입으로 고백까지 합니다.
그런데 말과 행동이 따로 놉니다.
분명히 깨달았고 입으로 시인하지만,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옛 습성과 옛 자아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복을 받게 된 줄 깨달았으면,
야곱을 선대하는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을 섭섭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복을 스스로 차 버린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나무 가지 껍질을 벗겨 양 떼가 교미하는 곳에 두는 짓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튼튼한 양과 약한 양을 구분하여 그렇게 한 짓은
라반의 비겁한 짓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39절과 42절에서 한글 번역은 마치 야곱의 이런 술수 때문에
양들이 튼튼한 점박이 새끼를 낳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야곱의 심정을 반영한 의역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문장은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없이
단순히 ‘AND’로만 계속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38절과 39절 사이, 42절 내의 두 문장 사이, 42절과 43절 사이가
다 ‘A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접속사 ‘웨’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 원인이 무엇인가는 31:10-12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삭빠른 성정의 사람 야곱에게
야곱만큼이나 아니 야곱보다도 더 야비하고 약삭빠른 라반을 붙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복성 조치일까요?
아니요. 야곱으로 하여금 라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쳐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자신의 비루한 모습을 확인하는 가운데,
그가 이스라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고백하고 또 고백하면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라반에게서 야곱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43절)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반의 밑에서 무려 20년이나 있으면서,
야곱은 옛 습성과 자아가 깨어지고 점점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도 라반을 붙여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몸이 아직 따르지 못하는 상태를 고쳐주시기 위해서,
옛사람의 때를 벗겨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함께 하심의 은혜가 이런 것이지요.
이렇게 함께 하시며 옛사람의 때를 벗겨주시는 은혜가 싫어서
아하스는 임마누엘의 징조 구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네요(이사야 7:10-25).
주여, 임마누엘의 은혜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온전히 몸까지 은혜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도록,
임마누엘의 은혜 가운데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의 보호하심 (0) | 2026.04.27 |
|---|---|
| 성숙한 믿음의 고백 (1) | 2026.04.26 |
| 라헬의 기도 (0) | 2026.04.24 |
| 레아의 찬송 (1) | 2026.04.23 |
| 하나님의 인도하심 (1) | 202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