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26. 주일
창세기 31: 1-16
- 귀향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게 있으리라 하신지라.
- 두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야곱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기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두 아내의 동의와 결단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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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날로 번창하자 라반과 그 아들들이 시기와 질투로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야곱이 상황을 판단하고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라반과 헤어져 귀향을 결심한다.
그리고 아내들을 불러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
두 아내도 아버지 라반을 향하여 가진 마음은 피해의식들 뿐이다.
야곱이 아내들에게 하는 말 중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설명한다,
양 떼에 일어난 일들과 품삯을 열 번이라 변경한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이 보시고 라반에게서 빼앗아 주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벧엘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고 덧붙힌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동행을 이야기하는 야곱의 성숙한 믿음이
지난 20년의 고된 목동의 삶에서, 가정을 일구고 살아 온 삶에서 깨닫은 것인가?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 속에 라반이 자녀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진다.
자녀가 아니라 재물로 여기고 자신들을 '팔아버렸다', '자신들의 돈을 다 먹어버렸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부모 자녀간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 수준이었다.
무엇이 이 가정을 이렇게 파탄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두 아내가 이렇게 같은 목소리를 내며 남편의 말에 동의하고 순종하게 만들었을까?
야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고 함께하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주님
야곱의 고백 속에서 믿음의 성장과 성숙함을 읽습니다.
저의 지난 날들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돌보심과 은혜 베풀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보잘것 없는 미천한 것을 의사로, 장로로,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까지 돌보셨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교회 설립 13주년 기념 예배에 대표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성령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게 하소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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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 주도하는 가정 ]
야곱의 번성함을 보고 라반의 안색이 변하자,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본향으로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3절
안색이 변한 라반을 보며 야곱이 위축되었을 때,
하나님은 벧엘의 약속을 그에게 상기시키고 동행하겠다는 말씀으로 용기를 주십니다.
약속의 말씀은 앞으로 나아가기 막막한 때라도
담대함을 발휘하게 하는 위로이자 소망입니다(수1:90)
모호한 인생 속에서 한 걸음 내디디기도 힘들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꼭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항상 말씀을 묵상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4-13절
라반은 열 번이나 품삯을 바꾸어 야곱의 번성을 집요하게 가로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그 불의를 역전시켜 야곱을 번성케 하셨습니다.
세상의 불의가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의 그 어떤 방해물로도 가로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1-12절
20년간 착취당한 사정을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라반 때문에 무너진 야곱의 마음을 다시 세우시며,
그가 겪은 모든 일을 아신다고 위로하십니다.
전능자의 앎보다 큰 위로는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내 이름뿐 아니라,
내가 흘린 눈물과 견뎌 낸 시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1-2절
라반의 변심과 냉대는 야곱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등 떠밀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관계의 불편함과 환경의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소명의 자리로 이끌어 가기도 하십니다.
14-16절
질투와 경쟁으로 바람 잘 날 없던 야곱의 가정이 놀랍게도 한 목소리를 냅니다.
이기적인 아버지 라반을 떠나, 남편이 받은 소명에 손종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가정을 지키는 힘은 정(情)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향한 거룩한 연합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매일 온 가족과 말씀을 나누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서로의 생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뜻에 주파수를 맞추어 '영적 한마음'을 위함입니다.
말씀으로 위로받고 말씀 안에서 연합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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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믿음을 몸의 믿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날까지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아니함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사실 이제 와서 안색까지 달라질 정도로 시기와 미움이 노골화한 것일 뿐입니다.
속마음은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라반만 야곱을 미워하는 상황이었다면 야곱은 버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의 아들들은 라반보다 더하였습니다.
그들은 야곱이 자기들이 상속받을 재산을 다 빼앗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야곱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야곱의 귀에 들리게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야곱의 생애에 두 번째 위기가 닥쳤습니다.
에서의 살의를 피해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으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야곱은 이제 어디로 도망해야 합니까?
14년을 성실하게 일하여 두 아내를 얻었고,
또 육 년을 더 일하여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라반이 육 년 동안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지만,
꾀(?)를 발휘하여 오히려 품삯을 보통 일군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아
부자가 되는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여전히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야곱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의지의 인물, 노력의 대명사 야곱은 또다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이 위기를 노력과 열심으로 극복하리라 다짐하였을까요?
야곱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도 뭔가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진실을, 진리를 바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지혜에 이르렀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니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과 상황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귀로만 듣고 말로만 인정하던 것을 이제
정말 그렇다고 현실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꾀와 능력, 노력으로 해결해 왔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자신이 매우 번창하게 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술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 때문이었다고 야곱은 비로소 고백합니다.
입술로만 고백할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고백합니다.
예전에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샀던 장자권을
잃어버릴 위기 상황에서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랐습니다.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할 때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서 최종적인 판단은 야곱의 몫이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위기 상황에서 야곱은 자기의 판단을 유보합니다.
자기 판단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여쭤보고 갈 길을 지시받아 나섭니다.
2절과 3절 사이에 야곱이 하나님께 묻는 장면이 생략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라반의 안색이 변한 것은 단순히 한 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야곱이 5-13절에서 라헬과 레아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하란을 떠나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야곱은 외삼촌과 외사촌들의 적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야곱이 아내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적의와 역경 가운데서도 은혜를 베풀어
그를 살게 하시고 나아가 번성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자신에게 명령하셨음을 결론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야곱은 이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힘을 다하여 라반을 섬겼지만
그것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라반을 막아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 된 원인이,
자신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의 껍질을 벗겨
얼룩얼룩하게 해서 교미하는 양 떼 앞에 두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암양 떼를 탄 숫양이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되게 만드셨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자기가 한 줄 알았는데,
자기가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라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형편과 능력을 감안하여 결정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다 준행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최초로 믿음의 선택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벧엘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했지만 이처럼 몸으로 드린 고백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하신 목적이 이것입니다.
돌고 돌아 이 결론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꾀를 부리는 것,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에서가 야곱을 겁박하는 것,
라반이 야곱을 속이며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대적하는 것을 허용하시며 기다리셨습니다.
에서를 통하여, 라반을 통하여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친 환경을 통해 야곱의 믿음을 몸의 믿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작하셨으니 마무리까지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내게도 그리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