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27. 월요일
창세기 31:17-35
- 야곱의 도주와 라헬의 절도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담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아삭에게로 가려 할새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 라반의 추격과 하나님의 개입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삼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 드라빔 수색과 라헬의 기지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배았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 내지 못한지라.
.............................................................
야곱이 식속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듯 가나안을 향해 밧담아람을 떠난다.
출발한지 3일만에 라반이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여 형제들을 데리고 7일을 쫓아왔다.
야곱을 보면 결코 가만두지 않고 죽여 버리고
소유물을 다 빼앗으리라 되뇌이며 낙타를 몰았을 것이다.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야곱과 가족들이 놓였다.
야곱의 장막이 코 앞이다.
밤에 하나님이 현몽하여 흥분해 있는 라반을 향해 선악간에 아무런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을 느낀 라반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속에도 없는 말들을 내뱃고 만다.
그리고 없어진 드라빔만 찾아 가겠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장막을 뒤집는다.
야곱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고 큰 소리 치며
만일 라반의 신을 움친 것이 발견된 자는 죽을 것이고
라반의 물건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다 가져가라고 되려 큰 소리를 쳤다.
야곱은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했을까?
라반이 들려준 이야기, 라반의 꿈에 현몽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얻은 것인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일까?
야곱이 지난 세월 동안 깨닫고 믿은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보았던 것안가?
하나님이 지금 자기와 함께 하셔서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밧단아람을 떠나기 전에 꿈에 나타나셔서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야곱의 모습이다.
라헬의 기지가 위험을 벗어나게 한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지혜라기 보다는 속이는 일이고 그것은 그 아버지와 남편을 닮았다.
우리는 그런 라헬의 기지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미신적 행동과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라헬이다.
아니 이것이 연약한 인간의 한계요 죄인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님
흥분한 라반의 손에서 야곱을 구출하셨습니다.
야곱을 도우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잡고 있음을 봅니다.
저의 지난 인생 가운데도 주님이 보호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며 인도해 오셨음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은 인생도 주님의 손에 제 삶을 의탁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저에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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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하시는 하나님 ]
라반을 떠나기로 합의한 야곱 가족은 지체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라반이 추격해 따라잡지만, 야곱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21-24절
분노로 가득 차서 야곱을 추격하는 라반을 하나님이 먼저 만나셨습니다.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방해하거나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자기 백성을 향하고(시 34:15),
어떤 경우에라도 의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드십니다(시 55:22).
나 혼자 위기에 맞서고 있는 것 같더라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고전 10:13)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17-20절
"돌아가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야곱은 제대로 된 작별 대신 '도주'를 택했습니다.
이 혼란 속에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여행길의 안녕을 비는 미신적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듯 보였지만,
안으로는 여전히 남을 속이고 우상을 의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 야곱 가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른다면,
목적뿐만 아니라 방식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25-29절
라반은 축제와 환송을 운운하며 자상한 어른인 척 위장하지만,
'해할 능력이 내 손에 있다'는 위협 속에서 본심을 드러냅니다.
그의 다정함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조종하고 묶어 두려는 교묘한 통제 수단이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말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함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정직한 삶의 흔적이 성도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31-35절
라반은 야곱이 드라빔을 훔쳤다고 여기고
야곱 일행의 장막을 모조리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낙타 안정 아래에 넣어 깔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상에 대한 성경의 통렬한 풍자입니다.
라반이 '내 신'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드라빔은
라헬의 엉덩이 밑에 깔려 꼼작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나만의 드라빔'을 숨겨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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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우선적인 일 ]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믿음의 길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야곱이 넘어야 할 고개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이루실 것입니다.
한 고개씩 차례로 넘게 하십니다.
이 고개들을 잘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다른 것들에 관심과 에너지가 분산 되면, 믿음의 고개를 넘는 일에 실패합니다.
믿음의 길을 선택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그 길에 집중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당연히 그리해야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유일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곧장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사전 정지 작업을 하셨습니다.
레아와 라헬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데 미련 없이 찬성하도록 상황을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미련 없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데 찬성하는 레아, 라헬입니다.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도망하듯이 떠납니다. 불효자식인가요?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지만, 인간의 도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인간의 도의를 지키는 것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의 길 곧 하나님의 도의와 동격에 올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잘잘못을 따지자면, 사실 딸들의 불효보다 라반의 속임수가 먼저였습니다.
라반의 반복되는 속임수가 없었더라면, 딸들이 그렇게 선뜻 야곱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란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속임수 때문에 너무 속상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말아야 합니다.
속임을 당하지 않는 것보다, 믿음의 길을 잘 따라 걷는 것이 백 배 유익합니다.
믿음의 길을 위해서 당하는 속임수는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몫을 다 챙겨주셨고,
그 속임수로 인해 아직 믿음이 부족한 레아와 라헬이
기꺼이 야곱을 따라 본토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라반의 속임수는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허락된 사전 정지 작업이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도망하여 떠납니다.
라반에게 당당하게 인사하고 떠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라반이 보내주지 않으려 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을 따르려면 오히려 도망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24, 29절).
그러니 우리도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라반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네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덕적인 '선'보다 더 큰, 비교할 수 없이 큰 가치입니다.
믿음이 훌륭해지면, 도덕적으로 당연히 훌륭해집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아무리 훌륭해지더라도, 믿음이 따라서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인 수양보다,
믿음을 키우는 일에 더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가족이 동의하였으며,
야곱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였으니 그대로 진행합니다.
13절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지금 곧장 돌아가라는 것이었고,
16절에 라헬과 레아가 동의한 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곧장(이제) 준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갔을 때에 뒷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주님의 명령이 확실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사람의 눈치도 살피지 말고, 곧장 가야 합니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지금 당장 하라고 명하시면,
라반의 허락과 상관없이 즉각 이행해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의 뜻을 분명히 분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도의가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라반에게 트집거리를 제공한, 라헬의 이상 행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고백하는 16절과는 너무 다르게,
라헬은 아직도 우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우상, 드라빔을 훔쳐서 가져왔습니다.
이런 라헬의 모습을 야곱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32절).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이유가, 그것이 상속권의 증표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14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약합니다.
35:3절에서, 벧엘로 올라가면서
야곱이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야곱의 가족들 중 일부가 우상을 계속 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헬이 그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단순히 라헬이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드라빔을 훔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이유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 주변 사람의 문제들에 대해 따지지 않으십니다.
야곱 자신의 믿음 문제에만 집중하십니다.
야곱의 믿음이 세워지면, 야곱 가족의 믿음도 따라서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까?
예, 믿음의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믿음의 일 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믿음의 일이 아니고,
나의 믿음의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도의를 너무 많이 따지지 말고,
남의 일에 너무 많이 간섭하지도 말고,
나의 믿음의 일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주여,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분명하게 고백하며,
상황과 사람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일에 집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뜻이 분명해질 때,
뒤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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