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당신은 두렵고 답답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9. 06:33

2026.4.29.수요일

창세기 32장 1-21절

 

- 하나님의 군대와 마하나임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 에서의 접근 소식과 야곱의 두려움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게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가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 야곱의 간절한 기도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내가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와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예물 준비아 전략적 배치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아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셌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

'산 넘어 산이다'라는 말이 있다.

라반의 추격을 당했지만 다행히 평화롭게 화해하고 귀향길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 주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겠다고 안심을 시켜주신다.

 

이제 가나안 땅이 가까와지자 형 에서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많은 생각들이 야곱의 생각을 어지럽게 하고 두려움에 어쩔줄을 모른다.

에서의 성질을 알고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 혈기와 그 살의를 잊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슴은 답답하다.

몇 가지 계획을 세워 보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야곱은 조상들의 이름을 불러 기도한다.

두렵고 답답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야곱으로 변해 있었다.

야곱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밧단아람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믿음이 달라 보인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숙한 신앙인으로 빚어 가고 계셨다.

 

조금 전에 기도하는 야곱의 모습은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였다면 야곱은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할까?

그렇다고 기도만 하고 손 놓고 마른 하늘만 처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신앙인들이 가장 고민거리이고 어찌하지 몰라 힘들어 하는 것이 이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동시에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약삭빠른 야곱은 다시 꾀를 내어 에서의 마음을 누구러뜨리기 위해 

선물 작전을 생각해 낸다. 사람은 뇌물에 약하다.

많은 예물로 에서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생각한다

장자권과 축복을 독차지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까

만만찮은 짐승의 떼들을 먼저 보내어 에서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작전을 세운다.

종들에게 각각 짐승들도 간격을 두게하여 자신들이 피할 시간을 벌기 원했다.

에서가 아직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여 공격해오면 피할 차선책도 대비한 것이다.

 

하나님이 군대를 보내어 함께하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보여주셨음에도

당장 눈앞에 펼쳐진 두려운 현실 앞에서는 믿음은 무용지물이다.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믿음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습,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주님

야곱의 두려움 앞에서 취한 행동들이 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그런 믿음과 모습이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믿음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도록, 기도와 삶이 다르지 않도록 인도해 주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과 믿음과 삶이 되도록 

성령님 나의 마음을 주장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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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히 두렵고 답답할 때 ]

 

야곱은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만났지만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두려워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한 예물을 준비합니다.

 

1-2절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야곱은 자기를 호위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발견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두 군영)이라 짓습니다.

홀로 도망하는 것처럼 보이던 야곱의 길 위해,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가 동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이미 내 곁에 진 치고 계십니다.

적군만 보이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눈을 뜨면

나를 둘러싼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보입니다(왕하 6:17).

 

3-8절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에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사람들과 가축 떼를 둘로 나누어 피해를 최소화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도,

눈앞의 위협 앞에서

다시 인간적인 술수를 쓰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야곱을 절망에 가두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찾는 동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도에게 '두려움'과 '답답함'은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두려울 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9-12절

야곱은 그저 살려 달라고 떼쓰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합니다.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이니

하나님이 안전을 책임지셔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호소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성공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자신은 은혜를 감당할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이렇게 낮아진 마음으로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구체적으로 아뢰고,

"자손이 모래같이 되리라" 하신 언약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는

하나님이 서명하신 약속의 문서를 다시 그분 앞에 펼쳐 보이며 

신실한 이행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13-21절

야곱은 형의 마음을 누구러뜨리려고 예물을 여러 떼로 나누어 보냅니다.

여전히 계산하고 술수를 쓰는 모습이 남아 있지만,

동시에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고 보상하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게 기도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자기 책임을 다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렵고 답답할 때.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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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32장을 두 단락으로 나눈다면

21, 22절 사이에서보다 12, 13절 사이에서 나누는 것이

내용상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어 단락 구분을 바꾸었습니다)

대단한 순종 한 번 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자기 부인의 믿음으로 확실한 회심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전환점이 참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을 향해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하십니다.

믿음의 순종으로 가나안을 향해 출발한 야곱이 도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모르고 지나칩니다. 

그리고는 자기 나름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준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그대로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에 무슨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요?

예,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형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에 가장 큰 걸림돌이 에서입니다.

에서의 분노가 사그라들었을지, 여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분노가 여전하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지만

이 문제는 계속 야곱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사자들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사자를 보내었는데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자기 사자를 또 보낸 것입니다. 

야곱이 눈치 빠르게 그 사자들을 붙잡았더라면, 

그 사자들에게 묻기라도 했더라면, 

야곱의 이후 여정이 훨씬 평안한 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는 눈치가 빠른 야곱이 믿음의 영역에서는 아직 눈치가 느립니다.

야곱이 보내는 사자는 에서에게 자기의 소식을 전하고 화해를 구하기 위한 사자입니다. 

얍복강에서 에돔까지의 거리는 거의 100km입니다. 

아직 거리가 먼데 미리 사자를 보내는 것은, 정탐의 의도도 있어서입니다. 

그만큼 야곱이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사자들로부터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단순히 마중을 나왔다면 그렇게 많은 인원을 대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싸울 군대를 데려오는 것이 확실합니다. 

미리 마중을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에서의 분노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에서가 100km나 떨어진 거리에서, 야곱이 돌아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요즘같이 교통, 통신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연히 소문으로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의 떼가 꽤 컸으니 이동 사실이 소문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시대에 아무리 큰 무리의 이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에서가 야곱을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돌아올 길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을 심어 놓고 야곱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가 알지 못하게, 

먼 거리에서 야곱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이 붙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온전히 언약을 붙들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온전히 붙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붙들지도 못했습니다. 

먼저 자기 무리를 두 떼로 나누는 조치를 취한 후에, 그다음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 방책을 여쭌 후에 행동을 취해야 할 터인데, 거꾸로 했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반사적으로 해결책을 궁리합니다. 

꾀를 동원하고 머리를 씁니다. 

그렇게 해 놓고도 불안하니 그다음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비로소 기도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확실한 해결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야 겨우 하나님께 항복하며 엎드립니다.

야곱에게 뭔가 많이 있어서입니다. 

에서에게 줄 뇌물을 제하고도 두 떼로 나눌 만큼, 가진 것이 많습니다. 

아직 꾀도 녹슬지 않았고 체력도 강건합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모습이고 야곱 같은 우리 모습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늙는다는 것, 점점 몸이 약해지고 머리가 나빠지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1순위, 아니 0순위 될 때까지 

우리의 약함이 폭로되고 고백되어야 합니다. 

우리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자를 보내어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게 될 때를...

주님, 약한 데서 온전한 믿음 일으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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