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30. 목요일
창세기 32장 22-32절
- 홀로 남은 야곱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 하나님과의 씨름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세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새 이름 이스라엘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 브니엘의 새 아침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
얍복강가에서 가족들과 짐승들을 다 강을 건너게 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에게 말을 타고 달려오는 에서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홀로 어둠 속에서 서성이고 있는 야곱을 떠올려 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생이 허무했을까?
한 번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에서에게 당하여 끝나는가 라고 아쉬워했을까?
지금까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했을까?
에서의 보복의 두려움 앞에서 피할 최선의 계획도 세웠다.
하나님께 언약을 붙들고 기도도 하였다.
그래도 차마 강을 건너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강 이쪽에 홀로 남았다.
그때 어디서 한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다고 한다.
처음 본 사람과 무슨 상황이 벌어져 씨름을 밤이 맞도록 하였을까?
그 어둠 속에서 한 시간도 아니고 밤새 어떻게 씨름을 할 수 있었을까?
진짜 씨름ㅇㅣ었을까? 아니면 씨름처럼 밀고 당기는 긴 대화의 상징화인가?
야곱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사람을 붙잡고 도움을 구하고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얻고자 함인가?
죽을 힘을 다해 대책을 얻을 때가지 놓아주지 않고 끈질기게,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
야곱은 끈질기게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기필코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어둠이 물러가고 날이 밝아 온다.
그 사람은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고집스런 야곱의 환도뼈를 쳐버린다.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사람이 이기지 못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야곱의 힘인가? 고집인가? 포기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야곱의 자아인가?
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씨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끈질기게 잡고 늘어진다.
그래 네가 이겼다 하고 인정하고 떠나려 한다.
그래도 야곱이 놓아주지 않자 갑자기 이름을 묻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준다.
그가 준 이름, '이스라엘',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
야곱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시려고 선택하신 이름일까?
야곱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생각하고 상대의 이름을 묻고 축복을 구한다.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야곱은 깨닫은 것인가.
그러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고 대신 축복하고 떠난다.
하나님은 원래 이름이 없으신 분이시다.
어둠이 사라지고 날이 밝았다.
두려움에 갇혀 어찌 할 바 알지 못하여 힘들어 하던 어둠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야곱은 어떻게 변했을가? 어떤 마음으로 새 아침을 맞이했을까?
그는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천사 정도로 깨달았을까?
그곳 지명을 브니엘이라 부른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죽지 않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자신감이 회복되었을까? 이제 에서를 만날 용기가 생겼을까?
절뚝거린 몸으로 에서와 대항할 힘이 없다.
자신의 계획과 의지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는다.
에서의 처분 앞에 자신을 내어 놓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이 상황에 개입하셔서 선하게 해결하여 주시기만을 바라고 의지할 뿐이다.
새 아침을 맞이하는 야곱의 얼굴이 보고 싶다.
모든 두려움과 근심 걱정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말이다.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 얼굴말이다.
주님
두려움과 어찌할 바 몰라 힘들어하는 야곱에게 찾아 오시고
이스라엘이라고 새 이름을 주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빛이 되시고 길이 되시며 진리로 가르치셨습니다.
에벧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저의 인생도 선하게 인도해 주시고
험한 세상에서 복 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나의 어떠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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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얻은 이름 ]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야곱은 하나님과 날이 새도록 씨름한다.
치열한 씨름 끝에 야곱의 고집 센 자아가 꺾이고,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22-24절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일대일로 씨름을 거십니다.
가족과 모든 소유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야곱은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 앞에서
재물도, 가족도, 자신의 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싸움을 거셨습니다.
그 시간 야곱은 오롯이 혼자 하나님만 상대해야 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히 혼자 있게 하십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와 독대하기를 원하시는 시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27-29절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며,
"네가 하나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고 선언하십니다.
'발뒤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라는 이름의 야곱은
이제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라는 새 이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옛 이름을 다 아시지만,
그것에 우리를 가두지 않으시고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허벅지에 남은 상처와 함께 주어진 새 이름은
앞으로의 삶이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야 할 여정임을
평생 기억하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25-26절
야곱이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하십니다.
그 순간 야곱은 그동안 의지해 온 자기 꾀와 술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울며'(호 12:4) 축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밤에 야곱은 형을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매달리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인생의 참된 기도는 내 힘이 충분할 때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간절한 붙듦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상황을 조종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꺾으시는 하나님 앞에 끝까지 매달리는 씨름이 되어야 합니다.
30-32절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의 뜻)을 마주한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의 '절뚝거림이야말로 자기 힘을 뺐다는 증거이자,
평생 하나님이라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게 될 영광스러운 흔적입니다.
자기 힘으로 뛰어다니던 야곱이 죽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걷는 이스라엘이 태어났습니다.
해가 돋으며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제힘으로만 살려는 교만함을 버리고, 주님만 의지하여 걷는 새 아침을 맞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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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과 두려움을 사용하여 더 온전한 믿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 ]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아무 문제도 만나지 않도록 왜 미리미리 막아 주지 않으실까요?
평안을 준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나요?
형통하게 해 주겠다고 언약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성도의 앞길에는 문제가 계속 일어납니다.
이것은 아무리 신실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과 형통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문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강과
어떤 문제도 바르게 헤쳐 나가는 담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담대한 믿음의 평강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허락하십니다.
믿음을 키워주시기 위해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문제를 출제하십니다.
왜냐하면 불안과 두려움은 믿음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믿음의 씨앗이 됩니다.
야곱이 처한 심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면밀한 준비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야곱의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신실한 기도였습니다.
단순히 복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약속을 붙들고 드린 기도였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기도였습니다.
무례하고 교만하게 복을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겸비하게 자격 없음을 인정하며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와 함께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상황에 대비하였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자가,
그것으로 상황을 준비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야곱이 에서와 화해할 진심이 있다면
마땅히 에서의 감정을 배려해야 하고 그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합니다.
야곱이 선물을 준비한 것을 불신앙의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며 준비했어도
야곱의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근거하여 겸비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였고,
기도한 후에는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는데,
왜 여전히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야곱의 믿음이 부족하여서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기로 한 야곱의 결단은,
믿음에 근거한 순종의 결단이었습니다.
지금의 야곱은 적어도 우리보다 못지않은 믿음과 순종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믿음이 아직도 더 나아가야 함을 들춰내서 확인시키십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강구했지만,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절박하게 부르도록 만드십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판단하고, 모든 식솔들과 모든 소유가 강을 건너게 했지만
형 에서에게로 나아가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후미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야곱이 비겁하게 모두를 보내 놓고 자신만 강을 건너지 않고 남은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본문을 세밀히 독해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그는 기도하고 면밀하게 준비한 후 과감하게 강을 건너는 믿음을 발휘했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코앞에 닥친 에서의 위협에서도 자신을 포함하여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모든 소유가 강을 건너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 심지어는 믿음의 순종을 믿고 담대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신실한 기도와 노력은 그 자체로는 보잘것없는 능력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을 귀히 여기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해하는 야곱을 건드려 그의 믿음을 더 온전한 믿음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과감히(?) 강을 건너고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먼저 건드려 씨름을 하게 하십니다.
야곱에게서 더 필사적이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이끌어내십니다.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노력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마음,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만 소망을 두는 믿음을 이끌어 내십니다.
환도뼈가 탈골되어 에서의 공격을 받으면
도망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붙드는 믿음을 만들어 내십니다.
야곱도 적극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하는 야곱의 말에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는 대답을 하신 것은,
‘너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느냐?’는 뜻입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그분이 하나님의 사자인줄 짐작하고서 씨름에 응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순종하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이 더 자라야 했습니다.
더 온전한 믿음, 확실한 자기 부인의 믿음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게 만들어서
믿음의 자리로 끌어올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간적인 노력과 의지의 표상인 야곱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이시니,
우리 같은 사람도 반드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얍복강 나루터를 기다립니다.
필사적으로 오직 주님만 붙들게 하시는 그 자리로 한 발짝 한 발짝씩 밀어 넣어 주옵소서.
돌아가게 명하시고 그 명령에 순종한 야곱을 기어코 이스라엘로 만들어주신 하나님,
저도 그렇게 시작하게 하셨으니 완성을 향해 밀고 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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