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 토요일
창세기 34장 1-17절
- 폭행당한 디나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다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여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 야곱의 침묵과 아들들의 분노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렵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의 어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 통혼 제안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너희가 우리와 함게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 할례로 포장한 속임수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렵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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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에서 정착하여 살아가는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딸 디나를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이 강간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순 강간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여 사건이 복잡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딸이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야곱은 침묵하고 있다.
단순히 숫적 열세라는 현실적인 파악이 항의도 못하고 전전긍긍 하며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괜히 항의를 했다가 낭패를 당하고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을까 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에서를 맞이할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일 앞장 섰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하몰과 세겜이 찾아 오자 누군가 아들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이를 듣고 들에서 아들들이 내려와 씩씩거리며 흥분한다,
그러나 야곱은 어떤 말로나 태도로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인 기록이 전무하다.
오직 아들들이 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디나가 그 땅 딸들을 보러 내려갔다는 데 있다.
아니 그에 앞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러 살았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것 처럼 땅도 사고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낼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디나가 이방 민족과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댓가는 혹독했다. 강간을 당한 것이다.
우리가 세상 문화에 관심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우리를 가만 두지 않는다.
야곱은 이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을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을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시냐고 항의했을까?
아니면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경고하심으로 받아들이며 깨닫고 회개했을까?
야곱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숫적 열세로 인한 현실적인 타협으로
억울해도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소시민적 무능함인가?
그러나 불의한 일 앞에서 보인 야곱의 행동은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신앙 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마땅히 취할 행동을 하지 못한 모습이다.
왜 아들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일까?
젊은 열기의 아들들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 해결책으로 할례를 끄집어 들인 것은 고도의 속임수이다.
결국 할례로 고통 중에 있는 남자들을 칼로 다 죽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지식과 방법에 의존하는 자녀들이었다.
믿음은 아버지에서 자녀들도 이어져 가야 하는데
아직 자녀들의 신앙 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못한 야곱이었던 것인가?
야곱 가정과 가족들의 신앙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님
살아가면서 문제 없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요?
방심은 금물이라 하였는데,
평온할 때 마음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 풍조에 관심을 보이고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정과 가족들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무책임하게 행동하거나 영적으로 소흘하지 않게 하소서.
성령님 내 안에 내주하셔서 저의 마음을 지키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항시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붙들고 살아가겠습니다.
가정과 가족들의 영적 상태를 돌보고 양육하는데도 책임을 다하게 지혜와 능력을 주소서.
교회에서도 공동체를 보호하고 영적인 문제들 앞에서 지키고 보호하는데
깨어 있게 하시고 늘 기도하며 돌보게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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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겜에서 생긴 일 ]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나
서원한 곳인 '벧엘'로 바로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곳 세겜에서 영적, 도덕적 위기를 겪습니다.
1-4절
전에 야곱은 하나님께 벧엘로 돌아올 것을 서원했고(28:20-22),
하나님도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을 때
벧엘로 돌아가 서원을 이루라고 명령하셨습니다(31:13).
그런데 야곱은 길을 멈추고 세겜에 안주했습니다.
세겜은 교통의 요지이자 목축하기 좋은 비옥한 곳이니,
산악 환경의 벧엘보다 훨씬 나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안주하고 정착할 곳은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안전과 풍성한 삶은 말씀에 순종한는 데 있습니다.
5-7절
야곱은 디나의 소식을 듣고도 침묵해습니다.
그러자 아들들의 잔인한 분노가 그 공백을 메웠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범했을 때 다윗의 방관이
압살롬의 복수를 낳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삼하 13장).
불의하고 부당한 일 앞에서 지도자나 부모가 사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공동체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혼란에 빠집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공의를 세우는 책무를 미루거나 방기해서는 안 됩니다.
8-12절
하몰은 통혼과 통상을 제안하며 경제적 번영을 보장했고,
세겜은 야곱이 요구하는 대로 신부의 대가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평화적인 제안처럼 보이지만,
언약 백성의 거룩한 정체성을 빼앗고 그들을 가나안 문화에 흡수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버리고 세상에 동화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럴 때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세상속에서 거룩한 정체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13-17절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에게 통혼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했습니다.
할례를 받아 움직이기 어려울 때 살육할 심산으로 내건 속임수였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언약의 징표를 복수를 위한 기만적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악한 욕망을 충족하고 일그러진 감정을 해소하는 데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는커녕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풍요와 안락에 미혹되지 않고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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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 하나님보다 세겜의 하나님? ]
찬송가 83장 나의 맘에 근심 구름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33:18).
평안함이 나태함을 불러왔습니다.
언약을 재확인했던 곳 벧엘로 곧장 가지 않고
중간 기착지인 세겜에 정착을 해 버립니다.
레아가 여섯째 아들 스불론을 낳은 후에 낳은 딸이 디나입니다(30:21).
그렇다면 디나를 낳은 때는,
아무리 빨라도 결혼 후 7년 이상 지난 시점이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년을 머물다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7년 봉사 후 결혼하였고,
적어도 7년을 더 지나서 디나를 낳았으니,
밧단아람에서 나올 때 디나의 나이는 최대로 잡아도 6세입니다.
이 디나가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록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최소 10년 이상을 머문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부르겠다고 했던(28:21) 야곱이
세겜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33:20).
세겜에서 장막을 위하여 땅까지 샀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거류지에서 매장지 외에
아무 땅도 소유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가 됩니다.
더 좋은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이 약화된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가 된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보다 세겜의 하나님이 더 좋아졌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닥다리가 연결된 땅 벧엘을 잊어버렸습니다.
언약을 재확인했던 곳,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거기에 제단을 쌓겠다고 서원했던 곳 벧엘을 잊어버렸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엘엘로헤 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로 부른 것은
야곱의 믿음이 진일보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곧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배운 하나님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말씀하시고, 자신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백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미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그냥 좋으신 분, 나를 지키시는 분,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고백하는데서 더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엇을 주시려 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나가야 했습니다.
장막을 위하여는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달리
야곱은 세겜에서 땅을 매입하고 거기에 안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주신 평안과 번창이
오히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번성과 평안이 신앙의 나태함과 안주를 불러왔습니다.
하나님은 서둘지 않으십니다.
야곱이 충분히 나태하도록 놓아두십니다.
어떤 계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만드십니다.
디나 사건을 통해 그렇게 하십니다.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그것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십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이 눈을 돌려 다시 벧엘로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십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문물이 풍부하고 사람이 많은 세겜과는 달리
허허벌판에 야곱이 세운 돌기둥 하나가 있을 뿐인 땅입니다(28:11).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이 죄인을 만나 주시는 곳,
죄인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고백하는 곳이 벧엘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이미 가진 것임을 고백하는 자리가 벧엘의 자리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을 다시 부르게 될 것입니다.
세겜의 하나님이 아닌 벧엘의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물질과 환경의 풍부와 안온함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것 때문에 행복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억만금 재물을 앞에 두고도 그것 때문에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눈에 차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함 때문에
평안하다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재물이나 사람의 도움이 하나도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신 주 예수님 붙들고 있음으로
모든 것 가진 자임을 담대히 고백하는 믿음 주시옵소서.
이미 받은 것 때문에 감사하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귀한 것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은혜 베푸신 목적, 내게 생명 주신 목적을 생각하며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 이르지 않은 본향을 향하여 계속 달려가는 삶이 이루어지도록 권고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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