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서로 다른 문제 해결책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3. 07:47

2026.5.3.주일

창세기 34장 18-31절

 

- 할례 시행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들의 성읍 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 시므온과 레위 주도의 학살과 약탈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 야곱의 문책과 아들들의 향변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리이까

 

...........................................................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인가 보다

세겜은 상황판단이 서지 않고 할례만 받으면 디나를 아내로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자기 종족들을 얄팎한 말로 속이며 설득한다.

 

아마도 하몰과 세겜의 위치 대문에 그들의 말을 거역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남자들이 설득을 당하고 할례를 받았다.

 

계책을 세운 대로 할례를 받고 아직 통증으로 거동이 힘들어 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몰래 기습하여 성읍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잡혀 있던 디나를 구출하여 나오고 

모든 여자와 아이들과 사로잡고 모든 가축들과 재물을 탈취하여 나온다.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몰살되고 말았다.

 

야곱은 자기가 침묵했던 본색을 드러낸다.

우리가 숫적으로 열세라 주변 사람들이 공격해오면

자신과 가족들이 죽을 것이라며 두려워 한다.

악취를 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나 아들들은 다만 누이가 창녀 처럼 강간 당한 것에 흥분하여

전후좌우를 따지지 않고 복수한 것에 만족해 했다.

피를 피를 부르는 법이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이다.

 

문제의 희생자인 상처받은 디나에 대한 배려와 그녀를 위해 취한 행동은 아무 것도 없다.

어느 누구도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만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문제의 핵심보다 부차적인 문제에 더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주님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가장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요?

야곱의 침묵일까요? 아들들의 피의 복수일까요?

아니면 세겜 성읍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저들을 용서하고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보내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기다려야만 하는가요?

원론적인 말들은 이해가 되지만 실제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동하여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의를 실천하라'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성령님 이 상황에서 주님은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소서.

세겜 사람들의 탐욕과 눈먼 세겜의 행동도, 야곱의 약자들의 태도와

아들들의 감정적인 태도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몰라 저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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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춰진 탐욕, 왜곡된 정의 ]

 

세겜 사람들의  평화 제안 속에는 탐욕이 감춰져 있고,

정의를 위해 뽑은 야곱 아들들의 칼날에는 통제되지 않는 광기와 잔혹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전체

디나의 강간 사건부터 시므온과 레위의 잔혹한 학살극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회와 종교가

얼마나 추악하고 비참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진정한 복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신 30:16, 시 128:1, 미 6:8)입니다.

 

18-24절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으면서까지 야곱 일가와 통혼하려는 까닭은

그들에 대한 호감이나 선의가 아니었습니다.

통혼을 통해 그들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언약 백성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키기보다,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어 지내는 것이 낫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논하는 그들의 겉말과 달리, 

우리를 이용하고 자신들의 방식에 동화시켜 

결국 우리의 거룩한 정체성을 변질시키려는 속내가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25-29절

할례를 받은 세겜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감행했습니다.

그들은 누이의 수치를 씻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그들이 저지른 일은 통제되지 않는 광기와 무자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끔찍한 복수극 어디에도

친히 폭력을 감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정의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정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상처와 분노가 아무리 정당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타인을 무참히 짓밟는 폭력으로 변질된다면,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0-31절

학살 이후 야곱은 가문의 안위와 생존이 위태로워졌다고 탄식할 뿐,

상처 입은 디나에 대한 위로와 공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들 역시 디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칼을 휘둘렀으나,

정작 디나의 깨어진 영혼을 회복시키는 일에는 철저히 무능했습니다.

사랑을 잃은 정의는 길을 잃습니다.

신음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온전한 회복을 최우선에 둘 때 

올바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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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충격적인 사건, 끔찍했던 기억은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심한 경우는 무의식 속에 기억이 봉인되고 아예 기억을 못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끔찍했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와 관련된 기억이라면 꼭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죄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는 자백하고 회개함으로써 용서받아야 하고, 

그 용서를 통해 다시 그 죄를 짓지 않는 데까지 나아가야 온전히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디나 사건이 있었던 곳의 지명은 세겜입니다. 

디나에게 성추행을 한, 그 땅 추장의 아들 이름이 세겜입니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 세겜이지만, 

세겜으로 인해 일어난 위기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후대에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땅의 본래 이름이 세겜이었고 

추장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성읍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 성읍에 대해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훗날까지도 세겜이라는 지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 뼈아픈 실수를 잊지 말자는 다짐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겜으로 인한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세겜 땅이 주는 안락과 풍요에 취한 것입니다. 

안락과 풍요는 야곱과 그의 가족을 나태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겜에서의 나태함으로 인해 야곱의 자녀들은 가나안 문화에 물들게 됩니다. 

디나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볼 수 있고, 

시므온과 레위의 인본주의적인 복수 행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복수를 위해 하나님의 계명까지 이용하는 사악함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야 함(창17:27)에도, 

그들은 할례 언약을 스스로 부정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자신들의 사적인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대범한(?) 짓을 저지릅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편도 마찬가지로 불순한 생각을 품었으니, 

부정한 방법으로 대항하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사람과의 관계만 따지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부당한 방법이 아닙니다. 

율법에도 동해보복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하신 율례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자비와 긍휼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시는 독생자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3-44]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범법하는 자를 범법으로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더구나 인간의 법을 범한 자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범을 범하는 것은 

성도로서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에게는,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더 우선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자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는 자는, 

모든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사람을 대하는 정의보다 하나님을 대하는 정의가 더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람 사이의 규칙보다 하나님의 계명이 더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8절에서 5장의 결론으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명령을 주신 뜻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정의(=온전한 사랑)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가 ‘이웃 사랑’인데, 

첫째와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언제나 하나님 사랑의 전제하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문화입니다.

야곱의 자녀들은 이 문화를 잃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가나안의 문화에 젖어 들었습니다. 

벧엘까지 곧장 들어갔어야 했습니다. 

세겜에 이르러 멈추지 말아야 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주고, 어울려 주었다고 해서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어울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세상이 먼저 악취를 내었기 때문에 

성도가 마주 악취를 내뿜어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31절).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평하신 심판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행위가 됩니다. 

심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 심판자의 자리에 오르는 망령된 행위입니다. 

원수 갚는 것을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의 법도 자력구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처벌을 법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불완전한 세상의 나라에서도 개인이 사사로이 법을 집행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에서 어찌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 악을 갚는 것, 

그것도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 있되, 세상과 구별된 존재가 성도입니다. 

이 구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상 속의 성도는 자주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합니다. 

몸은 땅을 만지고 있으면서, 언제나 마음은 하늘을 보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하셨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신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하늘 소망, 하늘 기쁨이 분명한 자는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하늘 사닥다리 되신 예수님께서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이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살전 5:15-18]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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