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남고 떠남의 기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5. 06:47

2026.5.5. 화요일

창세기 35장 23절 -36장 8절

 

- 야곱의 열두 아들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녀라

 

- 이삭의 죽음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 에서의 아내들과 아들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흘리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흘리바는 여우스와 알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 에서의 이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하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

이제 야곱과 에서의 시대가 시작된다.

야곱의 열두 아들과 에서의 5명의 아들 이름이 등장한다.

 

언제 아버지 이삭에게 내려갔을까?

이삭이 180세 죽어 장사된다.

에서와 야곱이 함께 장사지낸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도 이스마엘과 이삭이 아버지를 장사하였었다.

리브가가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이때 야곱과 에서가 함게 거주하였을까?

소유물이 많아 함께 기럇여하림에서 동거할 수 없어서 갈라 서게 된다.

야곱과 에서가 영원히 헤어지게 되고, 에돔은 세일 산에 거주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듯 야곱과 에서도 갈라졌다.

 

주님

형제들의 헤어짐에 분쟁은 없었으나 갈라서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머무는 자와

언약에는 관심 없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떠나는 자로 구분이 됩니다.

현실의 삶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행동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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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 ]

 

야곱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열두 아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남지만,

에서는 더 큰 번영과 풍요를 위해 약속의 땅 바깥으로 물러납니다.

 

23-26절

야곱의 아들들은 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질투와 갈등이 뒤섞인 가운데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 묶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뿌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야곱의 지난 세월 속에서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겠다"(12:2)는 말씀을 성취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허물까지 도구로 삼아 약속을 이루십니다.

언약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함에 의해 성취됩니다.

 

27-29절

이삭이 1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을 때

에서와 야곱이 함께 아버지를 장사 지냈습니다.

두 사람이 아버지의 무덤 앞에 나란히 선 장면은 

서로 원수처럼 여기던 형제 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갈등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화해와 존중으로

삶의 단락을 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6:1-5

에서는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이 부모의 근심이었던 것을 알면서도(28:8)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적 순결함보다 자기 욕구와 실리를 선택하고 있던 것입니다.

에서의 삶은 언약이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언약을 버렸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자기 눈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36:6-8

야곱과 소유가 너무 많아 함께 살기에 좁아지자,

에서는 스스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세일산으로 갔습니다.

에서의 이주는 가나안 땅을 야곱의 후손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지만,

더 큰 번영을 위해 하나님의 언약이 서린 땅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에서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살기 팍팍해서' 혹은 ' 더 좋은 기회가 있어서'라는 핑게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의 약속이 머무는 자리를 쉬이 떠나진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재물과 성공을 얻는 것보다 언약 안에 머무는 삶이 더욱 복됩니다.

 

비록 좁고 험할지라도 주님의 언약이 흐르는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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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민계보의 완성 ]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자기 부인의 믿음, 온유한 믿음으로 세워진 야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를 언약의 온전한 계승자로 삼으셨음을 확인해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서는 계속 자녀 중 일부만을 분리 선택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보다 훨씬 못난(?) 야곱에게는 자녀의 전부를 용납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더 이상 아들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언약의 상속자로 정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의 아들 전부를 믿음의 후손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자기 서모와 동침한 르우벤까지 덮어주시는 은혜 언약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살인자 시므온과 레위도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야곱의 이후 실수와 형제(요셉)를 팔아넘긴 자식들까지 

다 덮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 언약입니다.

이삭은 이 은혜 언약을 통한 선민계보의 완성을 보고 죽었습니다. 

여전히 야곱이 이따금 실수하고 손자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지만 

평안히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훌륭하게 성공해서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온유해진 야곱에게 은혜가 부어지는 것을 보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하늘 소망의 땅 헤브론에 묻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분명해진 야곱 일가에 평화의 복도 선물해 주십니다. 

에서와 야곱은 더 이상 적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장례를 함께 도와서 치릅니다. 

소유의 풍성함은 덤입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언약의 상속자로 인정하며 양보의 덕을 발휘합니다. 

산(山) 사람 에서는 아버지가 거주하던 땅을 언약의 상속자 야곱에게 양보하고

새로운 땅 세일 산에 정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서에게 자손의 복과 물질적인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늘의 복은 믿음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지만, 

땅의 복은 믿음의 유무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복, 하늘의 복이 특별한 은혜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것을 받는 유일한 수단을 믿음으로 정하셨습니다. 

은혜는, 구원의 은혜는 반드시 믿음을 통로로 해서 주어집니다. 

믿음 외에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구원의 은혜가 믿음을 대가로 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당연히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가’에는 당연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믿음도 은혜나 복을 ‘대가’로 해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그에 비례하여 믿음이 자동적으로 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복을 많이 내려주시지 않아서 

내 믿음이 작은 것이라고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자와 믿음 없는 자에게 

세상의 복을 차별하여 내리지 않으시는 것은 

대가에 반응하는 가짜 믿음을 차단하시기 위함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같이 그리는 마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단단해진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은 복의 크기와 믿음의 대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에서는 야곱보다 세상의 복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도 더 많이 얻었고 재산도 더 많습니다. 

외모도 더 출중하고 심지어 성품까지 더 좋습니다. 

야곱을 쿨하게 용서하였고 뒤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 가진 상남자 에서에게 유일하게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믿음에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풍성한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주셨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게 되고 그 많은 은혜가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에서에게서 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비겁하고 소심하며 흠 많은 야곱이, 

험악한 세월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야곱은 부족한 자들, 못난 자들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은 잘남과 못남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언약 백성, 믿음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큰 복이요 은혜입니다.

주님,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하늘 생명의 소망을 굳게 잡는 믿음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그 영원 생명의 소망을 

믿음의 자녀에게,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수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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