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7. 목요일
창세기 37장 1-17절
- 요셉을 편애하는 야곱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요셉의 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을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도단으로 가는 요셉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러엘이 그에게 이르되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를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
에서의 족보 이야기에 이어 야곱의 족보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서의 이야기와는 달리 갑자기 요셉의 이야기로 족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것이 야곱의 족보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고 가는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17세 소년으로 첩의 아들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 형들이 그를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경계하고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야곱이 노년에 낳은 자식이므로 애지중지하고 사랑했을 것이다.
특히 어릴 때 요셉의 어머니,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이었고,
라헬은 죽은 상태라 더 챙기고 보살폈을 것이다.
요셉을 꿈 꾸는 자로 소개한다.
두 가지 꿈의 이야기는 요셉의 장래를 예시하는 꿈이었다.
단순히 꿈 내용만 보면 시기를 당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편애로 불편한데 꿈의 이야기까지 듣자 더욱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같이 양 떼를 돌보던 이야기에서 요셉은 형들을 따라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었다
야곱은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양 떼를 치는 자식들과 가축들이 궁금하고 염려되어
집에 있던 요셉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고 오게 한다
세겜으로 갔던 형들은 더 낳은 목초지를 찾아 이미 도단으로 옮겨간 상황이었다.
들에서 방황하던 그에게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단으로 내려가 그들을 만났다.
야곱의 인물 만큼이나 요셉의 인물도 창세기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구속사에서 애굽에서 430년을 보내게 될 한 민족의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한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올 동안
구속사에 중요한 한 장을 열어갈 인물이 요셉이다.
요셉의 어린 시절 철없는 행동과
야곱의 편애만을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내용만 언급하고 싶지 않다.
물론 종으로 팔려가 13년이라는 길고 힘든 광야를 통과해야 하였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사람으로 훈련시키셨다.
비로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자기 가족을 돌볼 능력과 신분을 주시고
가족들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고 그 꿈을 붙들었을 것이다.
오늘 요셉의 좋은 면을 보고 싶다.
요셉은 정직하였던가 보다.
형들의 잘못을 눈감아주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른다.
그의 이런 모습은 애굽 보디발의 가정에서나, 감옥 생활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꿈을 꾸는 자였다.
물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꿈을 꾸게 하셨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착하고 정직한 소년이 아니라 장래를 고민하고 꿈을 꾸는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바로의 꿈의 해석도,
민족이 다시 출애굽을 할 것도,
자기의 유골을 자지고 갈 것을 유언한 것도
장래 일들에 대한 관심과 꿈을 꾼 결과물들이 아니겠는가?
매일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주님
올 해 시무 장로의 사역을 내려 놓고 성경 교사로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기억하게 하시며 깨닫게 하셔서
저의 열정을 쏟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게 인도하여 주소서.
노인이 되어서도 꿈을 꾸며 멈추지 않고 도전하게 하소서.
성령이여 저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고 모든 상황들이 순적하게 진행되도록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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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이 아닌 섬김의 꿈 ]
야곱은 노년에 얻은 요셉을 편애하여 형제들의 시기를 낳고,
요셉은 두 차례나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을 암시하는 꿈 이야기를 하여 형들의 반감을 삽니다.
전체
'편애'하신 게 아니라 요셉을 '선택'하셨습니다.
편애는 채색옷 같은 특별대우지만,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곤경과 고난의 길입니다.
창세기 마지막 단락은 요셉의 성공 이야기가 아닌, 야곱 가족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야곱(이스라엘)이 소멸될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이 요셉을 도구로 선택하여 가족을 섬기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내 신앙의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내가 특별한 복을 받아 우뚝 서는 것보다,
누군가를 섬기는 자로 쓰임받는 것을 '꿈'으로 삼아야 합니다.
1-4절
에서를 편애한 아버지 이삭의 과오를 몸소 경험했으면서도,
야곱은 편애의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레아를 외면하고 라헬을 편애하더니,
이제는 레아의 아들들을 홀대하고 라헬의 아들 요셉을 편애합니다.
이름 조차 언급되지 않는 레아의 아들들이
양을 치며 땀과 오물이 엉겨 있는 옷을 입고 있을 때,
요셉에게는 굳이 채색옷을 입힙니다.
그 결과 레아가 외롭고 슬픈 삶에 절규했듯 그의 아들들은 차별로 신음합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내 자녀이기 때문에 쉽게 차별하고 비교한 일은 없는지 돌아 봅시다.
5-11절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은
그가 다른 형제보다, 심지어 부모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할 거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요셉의 이 미래 권력은
가족을 섬기기 위해주어지는 것이므로,
요셉은 우쭐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에게는 요셉의 지위가 유일한 생존의 길이 될 것으므로,
형들도 시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편애받는 요셉은 경솔하게 꿈 이야기를 자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형들은 시기를 넘어 분노와 살의를 느낍니다.
인간은 편애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편애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는 경중이 없으므로 계급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롬 8:28) 하나님의 뜻만이
결국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 공동체도 동일한 분열에 휩싸일 것입니다.
남보다 돋보이고 우월해지는 비전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기는 꿈을 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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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애와 자랑질을 덮는 은혜 ]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오늘 말씀에는 편애하는 자, 자랑질하는 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왜 좀 반듯하고 멋있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실까요?
그런 사람 꽤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에서 같은 사람 말입니다.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위인전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비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주역(?)들은 너무 볼품이 없습니다.
예,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자들이 자신의 못남을 알고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은혜가 은혜로 빛을 발합니다.
은혜가 자랑이 되지 않고, 은혜가 겸손히 섬기는 능력이 됩니다.
못난 자들, 볼품없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못난 자, 볼품없는 자로 만들어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합니다.
단순히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편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철없던 노년의 시절에 얻은 라헬의 아들이기에 편애하는 것입니다.
일단 몸에 밴 편애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냐민을 낳을 쯤에는 야곱이 철이 좀 들었습니다.
베냐민은 똑같이 라헬의 아들이며 더 노년에 얻은 아들인데도,
심지어 라헬이 죽어가면서 낳은 아들인데도
그때는 철이 좀 든 때여서 베냐민을 편애하여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군요.
처음이 참 중요합니다.
일단 몸에 밴 습성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편애하는 요셉이 형들을 고자질합니다.
아버지 야곱처럼 철이 없는 거지요.
편애가 철없음을 만들어 내었을 것입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정직함은, 자칫하면 ‘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나 사랑이 전혀 없는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셉의 고자질은 약자에 대한 고자질로서 좀 비겁하고 잔인한 고자질입니다.
본처인 레아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고자질하지 못합니다.
레아와 라헬의 몸종으로 있다가 야곱의 첩이 된
실바와 빌하의 아들들에 대해 고자질을 합니다.
요셉이 좀 못됐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요셉은 자랑질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비밀과 은혜를 널리 알리는 간증도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때는,
단순한 자랑질에 지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자랑질도 그러했습니다.
야곱의 편애, 요셉의 고자질과 자랑질,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촉발시켰습니다.
야곱의 집안은 형제간에, 부자지간에 미움이 팽배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철없고 미숙한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로 덮으실 계획을 세우셨고 거듭 보여주십니다.
야곱과 그 자녀들이 그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은 이 계획을 진행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하시는 계획이십니다.
종 된 자리에서 구출하시는 계획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는 계획입니다.
그리하여 은혜 계획의 출발점은 애굽이 됩니다.
애굽에 내려가 종이 되는 것이 은혜 계획의 출발입니다.
거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으면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합니다.
오히려 은혜가 자랑거리, 교만의 도화선이 되고 맙니다.
애굽에서의 요셉과 가나안 땅에서의 요셉의 차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요셉을 종 되는 자리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자리로 몰아넣으십니다.
거기서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은 그렇게 애굽에서 출발하여 이루어지는 꿈이었습니다.
아직 요셉은 그 꿈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성취되는지 모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은 단지 결과만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랑질을 합니다. 미숙하고 철없는 짓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에 눈뜨게 되면 보일 것입니다.
그때는 요셉이 자랑하지 않을 것이고, 형들도 시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정직해도 자랑하면 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면, 자랑하면 망합니다.
자랑하지 않게, 교만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
주님,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 어디에서 이루어질 것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옵소서.
그 꿈이 이루어질 십자가의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어코 종의 자리로 내려가게 하셔서
구원의 본질, 은혜만 간절히 붙드는 자로 세워주옵소서.
주님의 온유한 마음을 닮도록 계속 가르쳐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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