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진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8. 06:39

2026.5.8. 금요일

창세기 37장 18-36절

 

-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지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였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 팔려가는 요셉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 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끌어 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거짓말하는 형제들과 애통하는 야곱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동안 그의 아들을 위해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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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얼마나 야곱을 미워했기에 형제를 죽이려고 하는가?

미움은 이렇게 가족도 죽이게 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명분도 모르고 갑자기 자기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얼마나 살라다라고 애원하여 부르짖었을까?

어린 소년이 겪었을 정신적 충격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울부짖는 동생의 애원에도 형들은 태연하게 음식을 먹는다.

르우벤의 측은지심과 장자의 위치가 주는 책임감 때문에 

동생들의 미움과 질투로 부터 일차적으로 요셉의 생명은 계획은 구했으나 치밀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도 요셉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이스마엘 상인들이 가지고 가는 상품은 향품과 유황과 몰약이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방문할 때 가지고 왔던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유사하다.

유다의 계획은 직접적인 살인죄는 범하지 않으면서도

보기 싫은 동생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 것을 제안하다.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유다의 설득이 먹혔다. 은 이십에 울부짖는 동생을 팔아 버린다.

형들은 나눠가진 돈으로 흐뭇했을까? 마음이 시원했을까?

 

그런데 성경은 이상하리만치 요셉의 행동은 한 문장도 언급하지 않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요셉은 예 그리스도의 예표인 양 애굽으로 끌려가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사건의 전말을 하는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이해하지만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애지중지하던 아들 요셉의 죽음 앞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진 늙은 노인 야곱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감은 어떠했을까?

몇날 며칠을 굵은 베옷을 허리에 동여 매고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살기를 포기하고 죽어 아들에게 가기를 부르짖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후회하고 반성했을까? 언제까지 이 비밀을 지키고 살았을까?

그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이 범죄가 영원히 감춰지기를 기대하며 힘든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요셉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상황이 진행되는대로 자신을 내맡기고만 있었을까?

형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이 불타 오르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타게 간절히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을까?

어리석은 행동으로 모든 가족이 많이 힘들어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방법 밖에 없으셨을까?

아니면 인간의 이런 악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것인가?

햡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앞에 다만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주님

살아가면서 남에게 원수를 짖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켜 보호하여 하소서

남을 미워하고 섭섭하게 하고 시기와 질투를 일으키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악의가 없었던 어떤 행동도 상대방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게 인도하여 주소서.

내 삶의 주관자되시고 인도자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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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야곱의 아들들은 자신들을 찾아온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염소의 피 묻은 채색옷을 보이며 동생이 죽었다고 속입니다.

 

전체

장차 닥칠 기근에서 야곱의 가족(이스라엘)을 보존하기 위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 계획을 이루시는 방식은 "선으로 바꾸사"(50:20)입니다.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20절) 하며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는 형들의 '악한 일'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가족을 구출해 내는 '선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야곱의 편애, 형제들의 상처, 요셉의 교만, 꿈 때문에 심화한 분열,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이루십니다.

이렇듯 기적이 아닌 나약한 인생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모든 행동과 결정을 '선으로 바꾸사'

우리를 하나님의 꿈의 자리로 인도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21-24, 29-30절

르우벤은 동생을 살리고 싶어 했지만

형제들의 계획을 가로막을 만큼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인 악이나 공동체의 문제에 대한 내 소심함이,

악에 수동적으로 동조하고 의를 거부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25-28절

유다는 요셉을 제거할 실용적인 묘수를 제안합니다.

노예로 팔면 어차피 죽은 목숨일 테니 '혈육'을 직접 죽여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범죄를 은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며,

돈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7-50장은 요셉의 이야기인 동시에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형제의 생명을 팔아넘겼던 비정한 유다가,

'형제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는(44:18-34) 

유다 지파의 시조이자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요셉처럼 주인공 같은 삶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유다와 같이 교정하고 다듬어 가고 계십니다.

 

29-35절

염소로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을(27:9),

염소의 피로 야곱의 아들들이 속입니다.

자신처럼 요셉이 장자권을 쟁취하길 바랐던 야곱의 채색빛 소망이 깨어집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꿈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장자 한 명이 아닌 이스라엘(야곱)의 열두 지파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꿈은 시작되었습니다.

내 꿈을 내려놓을 때,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 시작됩니다.

 

저의 이기적인 꿈이 꺽인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시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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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 때에 많이 보았던 문구지요.

감동이 되고 멋있는 문구이지만 진리나 사실은 아닙니다.

강렬한 소원을 가지면 그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뜻으로 되뇌는 문구일 뿐입니다.

백범 일지<백범 김구 선생의 감추어진 이야기(일화)를 기록한 책> 중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강렬한 소원을 꿈으로 가진 김구 선생도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다!’가 진리가 되게 하는 조건이 딱 하나 있습니다.

꿈 앞에 관형어 하나를 넣으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꿈과 관련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요셉의 꿈은 어떤 꿈인가요? 

요셉의 꿈은 김구 선생의 꿈과는 분명히 달라 보입니다.

그의 꿈은 그에게 강렬한 소원을 불러일으킨 꿈이 아닙니다. 

김구 선생의 꿈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꿈으로 여겨지고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꿈입니다. 

요셉의 꿈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요셉은 이 꿈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강렬하게 원하고 말고가 없습니다. 

또 요셉의 꿈은 형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꿈입니다. 

결정적으로 꿈 때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루어지지 않은 김구 선생의 꿈과 달리 요셉의 꿈은 그에게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가 소원하지도 않았고, 이루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차이는 이것입니다. 

김구 선생의 꿈은 그 자신의 소원을 표현한 것이고,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 요셉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는 점입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 개인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꾸게 하신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꿈을 꾸시는 분이실까요? 

하나님의 첫째, 둘째, 셋째 소원은 무엇일까요?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꿈이 김구 선생과 비슷하게 ‘나라’와 관련된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비전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당연히 섬기는 자가 더 큰 자이고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더 존경을 받습니다. 

주 예수님은 가장 강한 분, 가장 큰 분으로서 

가장 약한 자와 가장 작은 자들을, 죄인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이 꿈을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자들이 이어받습니다. 

주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 영광스럽게 된 성도들은 

이제 강한 자, 큰 자가 되어 약한 자, 작은 자를 섬기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들이 마땅히 섬기는 것과 달리 

섬김을 받은 자들은 섬기는 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죄사함 받은 자들은 마땅히 어린 양의 발 앞에 엎드려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섬기는 자는 당연히 여기며 섬기고, 

섬김을 받는 자들은 감사하고 존경하며 섬김을 받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이 그러하였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갖은 고초를 다 당하면서, 

야곱 일가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주연으로 섬겼습니다. 

그 앞에 야곱 일가는 엎드려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고, 

그 꿈에 동의하며 참여하는 자는 더 적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 꿈을 미워하여 훼방 놓으려는 자들이 있어도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의 꿈을 훼방하려고 요셉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지만 

그들의 뜻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잘못 이해하여, 좋은 뜻으로 돕는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꿈의 성취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착오조차도 하나님은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자기의 꿈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르우벤이 요셉을 살짝 구출하여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유다에 의해서 무산되고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찢어진 옷을 보고 애통합니다. 

그는 요셉의 꿈 이야기를 그 마음에 간직해 두었지만(37:11), 

그 꿈을 온전히 이해하고 믿지는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임을 확신하였다면, 

요셉이 죽었다고 단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꿈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그 꿈을 잘 이해하고 함께 참여하는 자가 있고,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꿈을 훼방하는 자도 있습니다. 

전자는 섬김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크게 해 주는 훈련으로서 고난을 겪지만 

기쁨으로 받으니 행복한 인생입니다. 

후자는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되겠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서 잠깐은 만족한 삶을 살 것입니다. 

제일 딱한 사람은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그 꿈을 온전히 자기 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재미도 못보고 하늘의 소망도 놓칠 위험성이 있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내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꿈을 확신하고 그에 동의하여 잘 따라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잘 몰라서 꿈을 방해하거나, 온전히 믿지 못하여

미지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일 없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