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0. 주일
창세기 39장 1-23절
-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 유혹을 거절하는 요셉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짖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모함과 거짓 고발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이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 투옥된 요셉을 돌보시는 하나님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나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여호와게서 함께하심으로' 이고 이어져 '요셉이 형통하였더라'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만사형통'이 있다.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사자성어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니 걱정거리가 없고 편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과는 차이가 있다,
요셉은 형통하였으나 보디발의 종이었고 죄수로 감옥에 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무엇을 보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을 알아보았을까?
여호와께서 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는지 무엇을 통해 깨달게 되었을까?
간수장은 어떻게 히브리 종이 왕의 죄수들을 관리하게 할 수 있도록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여호와와 함께하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보는가?
오늘도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지만 일언반구도 없다.
연이어 당하는 이 억울함을 요셉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참으로 꼬이는 인생이다라고 한탄했을까?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없다.
기도했을까? 아니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분명히 이 문제를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형들에게 죽지 않았고, 종으로 팔려왔지만 비교적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감옥에 갇혔지만 간수장의 은혜를 입은 것들을 돌아 보면서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하시고 돌보심을 깨닫았을까?
그리하여 하나님의 함게하심과 일하심을 기대하며 평온하게 때를 기다렸을까?
현실은 어떠하든지 나의 삶이 타인으로부터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심을 봅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주님
날마다 만사가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돌보심 속에서 얻는 형통이기를 바랍니다.
성령님 항상 제 안에 충만히 내주하셔서 동행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통치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을 듣게 해 주소서.
온전히 당신의 지배와 다스림 속에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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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통한 자, 요셉 ]
요셉의 삶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니 그가 보디발에게 신임을 얻어 가정 총무가 됩니다.
다만 보디발 아내가 내민 유혹의 손을 뿌리친 후 도리어 모함을 당합니다.
전체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지만,
이 일로 인해 애굽 왕 바로와 만날 기회에 가까워지고,
하나님 백성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지위에 점점 다가서고 있습니다.
요셉이 팔려 갈 때,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
무력하게 침묵하시는 듯 보이던 하나님은,
'꿈'을 자신의 방법대로 묵묵히 이뤄 가십니다.
나의 꿈에서 멀어지는 듯 보이는 일이
실상은 하나님의 꿈에 가까워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1-3절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주인 보디발의 집이 번성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3)는 말씀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내 가정과 교회와 직장이 복을 누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내 실력과 성실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6-10절
유다는 매춘부에게 '나아갔지만'(38:16),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갑니다.'
문란한 이 시대의 성문화에 대처하는 지혜는
'음행을 피하는 것'(고전 6:18)입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내 마음과 시선을 꼭 두어야 할 곳에 두고
죄의 자리 '밖으로', '도망하여' 피합시다.
11-19절
들짐승에게 공격당했다는 거짓 증거로 사용됐던 요셉의 '옷'이
이번에는 그를 강간범으로 모함하는 거짓 증거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옷'을 입은 교만한 모습으로 형제들에게 상처를 줬던 요셉이,
죄를 뿌리치기 위해 '옷'을 내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기 위해(갈 3:27)
내가 벗어야 할 옷은 무엇입니까?
20-23절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으로 옮겨 간 것을 두고
세상은 '실패'라고 평가하겠지만,
요셉에게는 그저 하나님의 뜻에 따른 보직 변경이었습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어떤 참담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통케 하시는 역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시 23:4).
오늘 하루도 욕심의 유혹을 뿌리치고 죄를 멀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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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통 ]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형통’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감.”
여기에서 뜻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예, 물론 ‘나’이겠지요?
그러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이 형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체가 내가 되는 형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체인 형통은 좋은 것인가요?
그렇게 형통하면 행복할까요?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요?
자기 마음대로 했는데, 그 일의 결과가 내게 비참함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없을까요?
입다가 자기 마음대로 서원을 했다가 참담해 했습니다(삿 11:35).
이런 일을 형통한 일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형통,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형통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형통’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내게 좋은 일이요,
내가 가장 잘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절).
보디발의 눈에도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 보였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이 보디발이 아내의 모함으로 요셉을 잡아서 옥에 가둘 때는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라고,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요셉이 형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3절).
그렇다면 성경이 증거하는 요셉의 형통은
단지 일시적인 육신의 형통, 겉보기 형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요셉의 뜻대로 되는 형통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의 형통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의 형통이었습니다(2절, 23절).
요셉이 옥에 갇힐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와 함께하셨고,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일 때와 마찬가지로 옥에서도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23절).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형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진짜 형통은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잘 따라 걸어가고 있는 것이 형통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형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 길이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와 절망의 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늘의 천군 천사들은 박수갈채로 환호를 보내는 영광의 길입니다(계 6:12).
그래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면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얻었기에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알고,
그것이 형통의 길임을 믿고, 계속 순종하며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40장 이후에 나타나는 요셉의 해몽 능력은
그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꿈의 비밀을 알기 위해
요셉이 기도하며 많이 애쓰는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은사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혜가 형통의 길을 가게 하는 힘입니다.
주님, 내 뜻대로 되는 형통을 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투정부렸던 것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잘 따라가는 형통을 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어,
지금 내 길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형통한 자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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