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11. 06:34

2026.5.11. 월요일

창세기 40장 1-23절

 

- 두 신하의 투옥과 꿈

그 후에 애굽 왕의 술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데 내게 이르소서

 

- 술 맡은 신하의 꿈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나무 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떡 맡은 신하의 꿈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 꿈의 성취와 잊힌 요셉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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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요셉이 점점 바로에게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애굽의 노예에서 친위대장의 집으로,

비록 감옥이지만 바로를 지근 거리에서 섬기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자을 만나게 되고

꿈의 해석이라는 매게체를 통하여 바로에게 나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구속사를 펼쳐가고 계셨다.

영안을 열어 시대를 읽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봐야 할 것이다. 

 

친위대장은 감옥에 갇힌 두 관원장의 수발을 요셉에게 맡겼다.

아직도 요셉을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룻밤에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꿈을 구고 근심하여 이야기할 때

요셉은 주저함이나 거침없이 꿈을 해석한다.

죄수라도 한 나라의 관원장인데 함부로 그들의 꿈을 해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더더욱이나 떡 굽는 관원장의 꿈 해석은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하기도 하다.

자칫잘못하면 요셉에게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요셉의 담대함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나님과의 오랜 기도로 대화하며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 아닌가?

다니엘의 기도 후 느부갓네살의 꿈 해석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모습이다.

 

요셉은 자신의 꿈의 해석을 통해 감옥에서 풀려나고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학수고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만 갔다.

그의 개인적인 희망이 사라질 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요셉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셨다.

요셉은 단지 사적인 일에 매달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구속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틀고 계셨다.

 

주님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면

잘 깨닫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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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주인이신 하나님 ]

 

투옥된 요셉은 바로의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들의 꿈은 요셉의 해석대로 실현되지만 감옥 속 요셉의 존재는 잊히고 맙니다.

 

7-8절

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꿈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바로 왕과 그의 나라가 아무리 강성해도

꿈이 가리키는 미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아무리 왕의 최측근 참모라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의 꿈을 해석할 권한을 요셉에게 주심으로 

실상 그가 두 관리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이십니다.

비록 옥에 갇혀 있지만 꿈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요셉에게,

보디발이 맡기고(39:4) 간수장이 맡긴 것(39:22)보다 훨씬 더 큰 것,

곧 제국의 흥망을 좌우할 권세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실현되는 것은 세상이 품은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잘 좇는 것이 '꿈'이 되어 버린 시대에,

나는 하나님의 '꿈'을 좇는 사람입니까?

 

14-15절, 23절

관원장이 요셉에게 존재를 잊게 하십니다.

감옥에 있을 때에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요셉을 의지했지만,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자

옥에서 받은 부탁이 하찮고 미미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50:20)

그가 요셉을 기억하여 호출할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바로가 꿈을 꿀 때 비로소 요셉이 왕 앞에 설 수 있도록,

모든 인간사의 씨줄과 낱줄을 치밀하게 엮고 계십니다.

요셉은 무죄방면을 위해 관원장에게 간청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요셉의 계획보다 깊고 넓습니다.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신중해도 하나님의 뜻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내 제한적인 생각을 초월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을 기대합시다.

 

20-22절

두 관리의 꿈은 요셉이 해석한 그대로 성취됩니다.

요셉은 둘 모두에게 '머리를 들고'라는 해몽을 했는데(13,19절),

한 명은 지위를 회복하여 머리가 들리고,

다른 한 명은 나무에 달려 머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두 관리의 운명이 정해진 것입니다.

이로써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의 주인공이심이 드러납니다.

서로를 밀치고 높이 올라가 머리를 들고 싶어 하는 세상 사람들 틈에서,

나는 내 미래를 누구의 손에 맡기고 있습니까?

 

꿈의 주인이신 하나님, 주께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맡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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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주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 이루는 형통 ]
찬송가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항상 함께하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형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는 최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형통’ 여부의 판단을 믿지 않는 자와는 확실히 다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순조로운 것’이 형통이 아닙니다. 

‘기분 좋게 해결되는 것’이 형통도 아닙니다. 

‘내 뜻대로’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느냐 아니냐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길이냐 아니냐가 

신자가 형통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에 보내시고, 

이어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요셉이 갇힌 옥으로 보내어 

요셉과 만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꿈을 꾸게 하십니다.

‘꿈’하면 요셉입니다. 

요셉의 별명이 ‘꿈꾸는 자’(37:19)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꿈쟁이’인 것이지요.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거듭 주신 꿈에 대해서 각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형들에게 말하고, 아버지에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그 꿈이 예사로운 꿈이 아님을 요셉이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이 애썼을 것입니다. 

꿈의 뜻을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도하며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셉은 꿈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꿈 때문에 근심하는 것을 보고 

담대하게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8절)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꿈 해석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가 꾼 꿈의 의미도 명확히 해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신 은사를 통해 요셉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꿈쟁이라 불렸던 요셉의 특기를 사용하셔서 바로의 신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바로의 만남을 예비하셨습니다.

감옥은 요셉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지름길이었습니다. 

감옥이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면, 요셉이 바로의 측근 신하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설사 만났다 하더라도 그들이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옥 안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초조한 심정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이, 

하찮은 히브리 노예 소년에게 꿈에 대해 다 털어놓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의 꿈 해석 은사가 나중에 바로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에게 결정적으로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 때문에, 그 꿈으로 인해 하나님께 받게 된 꿈 해석의 은사 때문에 

또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단순히 꿈 해석의 은사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꿈 해석의 은사가 있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형통의 복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과 꿈 해석의 은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갈고 닦았습니다. 

요셉이 꿈과 꿈 해석의 은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라면, 

노예로 팔려간 애굽에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옥에 갇히는 일도 없었겠지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이미 명하신 것들을, 소중히 붙들고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것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주신 꿈은, 

지금까지 닦아 놓은 길을 계속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하고 계획하여 그 뜻대로 이루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 내게 일어나게 하신 것들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물론 내가 거역하고 잘못하여 초래된 일들까지도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런 부분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 내게 일어나게 하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거역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나의 욕심으로 초래된 상황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을 위하여 준비된 선한 일임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좀 더 감사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 주께서 내게 주신 것들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신 은사, 주신 환경, 주신 사람, 그 어떤 것이든지 

감사함으로 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주님, 잘 기다리며 잘 따라가도록 지켜주옵소서.

[딤전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