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꿈의 해석과 대안 제시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13. 06:41

2026.5.13 수요일

창세기 41장 25-36절

 

요셉의 꿈 풀이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니이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그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망하리니

후에 든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요셉의 정책 제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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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한다.

단지 해석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을 택하여 이 일들을 추진하도록 권면한다.

요셉은 이 일에 자신이 어떻게라도 쓰임받을지 생각했을까?

어떤 보상을 기대했을가?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 벗어나고 자유민의 삶으로 복귀할 거라고 희망을 가졌을까?

애굽의 총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관원이라도 된다면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였을까?

 

요셉은 해석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하심과 일하심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일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것이다. 

신으로 추앙받는 바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한다.

바로도, 우리도 일개 피조물에 불과하다.

잊지 말아햐 한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의 관계를 

 

바로는 얼마나 만족했을까?

3년 묵은 채증이 확 내려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바로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꿈과 앞으로 꿈대로 되어질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뽑아야 한 사람은 요셉이 가장 적임자일 수밖에 없었다.

 

주님

요셉의 지혜를 바라봅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주관하심에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일하심에 대한 묵상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삶의 주인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묵묵히 따라가겠습니다.

다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주님과 동행함이 형통임을 잊지 않고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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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

 

요셉은 애굽 왕이 군 꿈이 애굽에 닥칠 위기에 관한 내용임을 설명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 대비책을 제시합니다.

 

전체

경솔하고 교만한 자랑으로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10대 소년 요셉을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33절)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 방법은 13년간의 종살이와 옥살이였습니다.

애굽에서 가정 총무로, 옥중 관리인으로 일하며 총리 수업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요셉의 13년은 버려진 시간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선명한 꿈을 보여 주셨지만,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종살이에서든, 옥살이에서든 요셉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방향과 의미를 알지 못하는 요셉이 무너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결과를 보장받지 못한 채 성실히 살게 하셨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자리를 버텨 내게 하셨습니다.

미래의 꿈은 불확실해도, 현재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확실한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닥친 고난의 시간 속에서 반드시 유익과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를 버텨 냈다면 하나님은 내 삶에 살아 계시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5, 32절

바로의 꿈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준 계시입니디.

두 번이나 보이신 것은 반드시 그리고 속히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며,

온 세상의 주권자는 신으로 추앙받는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꿈 역시 그가 '꾸는' 일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시고 행하시는' 일입니다.

 

25-31절

나일강의 풍족한 수원을 의지하여 번영을 누리던 애굽에 기근이 닥친다는 것은,

이 거대한 나라도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죽음의 위협 앞에 무기력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나 자원도 우리의 절대적인 희망의 수원지일 수 없습니다.

 

33-36절

요셉은 꿈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뜻을 보이신 목적대로 행합니다.

지혜로운 인재 등용, 행정 제도의 정비,

풍년 때 흉년을 대비하는 경제 제도 등 탁월한 정책을 내놓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철'과 '지혜'로 실행에 올겨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우리 참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진리가 제 마음 깊이 울려 퍼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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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요셉 ]
찬송가 68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옥중에서의 훈련이 끝나자 하나님께서 바로를 통해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을 옥에 가두고 있던 자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어놓았습니다.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고 

모의시험을 쳐가며 마음 졸이는 가운데 준비해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서류전형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앞에 나갈 때 입는 옷조차 요셉이 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염도 깎아주고 옷도 갈아입혀서 극진히 요셉을 모셔 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이렇게 당당하게 바로 앞에 서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응원에 힘입어 요셉도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방의 왕 앞에서, 백성들에게서 신으로 떠받들리는 애굽왕 앞에서 

주권자 하나님을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16절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언급하였을 때, 

요셉은 단순히 ‘엘로힘’(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신들’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함)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25절, 28절, 32절(2번)에서는 ‘하엘로힘’을 사용합니다. 

엘로힘이 ‘하’(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관사)와 같이 쓰이면, 

특별하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게 됩니다.

바로에게서 꿈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요셉도 어떤 상황인지 아직 확신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꿈 이야기를 듣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바로 그에게 꿈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해석하게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해석한 꿈의 해결책까지 알려주십니다.

문제를 알려주신 하나님은 정답까지 알려주십니다.

바로를 탄복하게 만든, 하나님의 풀 서비스입니다.

우리는 능력을 가꾸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상황에 잘 순종하면 됩니다. 

일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발을 동동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와 함께 답도 반드시 마련해 놓으십니다. 

그런 일에 지나치게 힘쓰는 것보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은 다른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실 때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나가라고 하실 때 나가며,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실 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때를 잘 헤아리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성공하기를 원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상 앞에 설 때 이렇게 당당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세상에게,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는 믿음 주옵소서. 

주님께서 알려주신 비밀로 인해 

오히려 세상을 해석하고 판정하는 왕으로 나타나게 해 주옵소서. 

그 믿음의 자리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고전 6:2-3]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