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회복을 가져오는 만남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15. 05:34

2026.5.15. 금요일

창세기 42장 1-17절

 

애굽으로 내려온 요셉의 형들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 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형들을 알아보는 요셉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 왔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군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

극심한 기근은 가나안도 덮치고 야곱의 식속들도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미리 요셉을 보내어 준비케 하시고 수백 년을 지낼 터전을 마련케 하신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한 민족을 이루기 위하여 흉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셨다.

 

짧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상황을 멀리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일들에 매몰되어 버리면

조급하고 불안해 하고 근심 걱정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 인생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평안이 찾아 오고 침착하고 지혜롭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20년도 더 지나 형들을 만났다.

세월은 사람의 감정을 무디지게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요셉은 형들에 대한 일들과 감정을 어떻게 정리했었을까?

형들이 자신 앞에 엎드린 모습을 보고 요셉은 자신의 지난 날의 꿈을 생각해낸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가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자기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을까?

형들을 시험하고 정탐꾼이란 누명을 씌워

동생 베냐민을 안전하게 데려오게 작전을 세운다.

 

곡식을 사러 왔다가 갑자기 정탐꾼 신세가 되어 감옥에 갇힌 형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3일 동안 감옥에서 서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자신들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았을까?

분명히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 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을 만나면 자신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고 

무슨 잘못으로 이런 재앙이 나에게 닥친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에게 행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을까?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했을까? 

 

주님

영안을 열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병원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주어진 인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의료기관평 인증원 자원조사위원이라는 직함이

나의 은퇴 후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일을

십 수년전에 인증조사위원으로 활동하게 하신 내 삶에 적용해 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인도해 가실 것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이여 나를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은퇴 이후의 나의 진로를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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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근 속에 시작된 회복 ]

 

하나님은 기근을 도구 삼아 잊혔던 언약의 꿈을 실현하시고, 

요셉을 도구로 삼아 형제들의 숨겨진 죄책을 들추어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1-5절

위기와 결핍을 통해서도 약속과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자, 요셉의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향합니다.

이 기근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요셉의 꿈과 야곱 집안을 향하신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과 분주한 발걸음 위에 하나님의 경륜이 더해져, 

마침내 하나님의 뜻은 현실이 되어 갑니다.

오늘 우리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막막한 상황도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그 상황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 위에 있음을 굳게 신뢰합시다.

 

6-8절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형들이 엎드려 절함으로,

오래전 소년 요셉에게 주셨던 꿈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배신과 악의 긴 침묵의 세월까지도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약속을 잊고 지내는 세월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흩어진 시간이라 생각한

사건의 조각들까지 모으시고 정교한 작품으로 완성하십니다.

 

9-14절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세우는 요셉의 언사는

인간의 숨겨진 죄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다루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손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의 압박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형들이 내뱉은 "하나는 없어졌다"라는 진술은,

20년 동안 그들이 애써 회피해 온 요셉에 대한 기억이자 자백이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뜻밖의 곤경으로 몰아넣어

감추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하시고,

우리 삶의 기초와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게 하십니다.

 

15-17절

요셉을 통해 그의 형들을 다루십니다.

옥에서의 삼 일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과거를 직면하게 하는 '멈춤'의 시간이었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도록 허락된 '징계'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묻어 두었던 과거 일을 정직하게 직면한다면,

하나님이 두신 고난의 공간도 은혜의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피하지 않고 회복으로 이끄시는 주께 집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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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탐꾼인가, 진실한 자인가 ]
찬송가 326장 내 죄를 회개하고

야곱의 편애가 여전합니다.

요셉의 형들을 향해서는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가라고 재촉을 하면서도,

유독 베냐민만은 위험하다고 두고 가라고 합니다.

요셉의 형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갔습니다.

형들이 양식을 얻기 위해 자기 앞에 와서 절하는 모습을 보며, 

요셉은 그가 꾼 꿈을 생각하였습니다. 

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예전에 당신들이 내 꿈을 조롱하더니 봐라, 지금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으로 의기양양했을까요?

무슨 생각인지 요셉이 형들을 시험합니다.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이며,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요구합니다. 

요셉은 그들이 자기를 노예로 판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하는 것일까요?

요셉의 마음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요셉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방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지금 진행하려는 일이 요셉의 꿈과 관련이 있음을 9절이 밝히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즈음 단순히 꿈을 해석하는 은사만 아니라, 

그 꿈에 대한 바른 처방까지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41:33-36). 

이제 요셉은 꿈과 꿈에 대한 해석, 처방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고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41:16, 25, 28, 32),

그런 요셉이 꿈을 생각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그 꿈과 관련된 나쁜 기억과 감정을 떠올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셉이 꿈을 생각하고 무슨 일을 진행하는데 

그것이 요셉이 형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을 꾸미는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꿈을 하나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꿈을 생각하며 무슨 일을 진행하는 것은, 

요셉을 총리로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표면적인 꿈의 성취(=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를 확인하고 자랑하며 

그것을 비웃던 형들을 혼내주려는 목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나는 장면과 그 이후에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숙고해 보면 

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난 것은 

요셉이 미리 충분히 숙고하고 준비한 계획에 의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연히 형들을 대면하게 되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으로 요셉이 어떤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대국 애굽의 2인자인 요셉이 

곡식을 사러 온 개인들을 직접 대면하여 곡식을 팔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6절의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라는 표현은 

요셉의 지휘하에 곡식 판매가 이루어졌다는 뜻이지 

요셉이 모든 거래를 직접 행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백성에게 곡식을 팔았을 텐데, 

그것을 어찌 총리가 직접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가나안으로부터 곡식을 사러 왔을 때, 

그들은 요셉과 직접 대면해야 했습니다. 

이는 요셉이 미리 명령을 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곡식을 사러 온 자들이 있거든 

반드시 총리에게 직접 데려올 것'이라는 지시를 해 놓은 것입니다. 

기근을 맞아 곡식을 구하러 형들이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한 요셉이, 

그것이 풍년과 기근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고 있는 요셉이, 

형들을 대면하였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놓았을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 계획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신 목적과 맞추어 준비한 

세부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45:7). 

그 생명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려는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받은 죄인, 회개한 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행 11:18). 

용서받은 죄인, 회개한 죄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른 죄인에 대한 용서와 용납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하신 부분도 ‘용서’였습니다. 

야곱 이야기, 요셉 이야기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42장부터 45장까지 무려 4장에 걸쳐서 진행되는 

야곱 가족의 화해와 용서의 이야기입니다. 

반목과 질투, 편애로 뒤틀려 있던 가족이 

온전히 서로를 용서하고 하나가 되는 회개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이 생명 얻는 회개의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정말 용의주도하게,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참아가며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 얻는 회개를 이루기 위해 

요셉(주 예수님)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굽에 노예로(세상에 종으로) 팔려가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참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실한 회개, 진실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진실’은 이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을 통해 하나님을 전부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사람만이 

죄인을 용납하는 사랑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과의 화해를 준비하며, 

그들이 '진실한' 마음을 되찾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갑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탐꾼'이 아니고 '확실한 자'라고 말합니다. 

'확실한 자'의 문자적인 의미는 '똑바로 세워진 자'입니다. 

요셉은 이를 '진실'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습니다(16절). 

진실한 자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진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벌거벗음을 감추고 있는 자, 

아닌 척하며 눈치를 보는 정탐꾼으로 남아 있는 자는 

똑바로 세워진 자, 진실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요셉은 두 번 세 번 그들을 '정탐꾼'이라 몰아세우면서(9, 12, 13, 16절), 

그들이 '정탐꾼'이 아니고 '진실한 자'인지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15, 16절).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사실은 '정탐꾼'에 불과한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정탐입니다.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정탐의 자세를 믿음의 자세로 바꾸어야 합니다. 

'채워주시면 믿어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정탐꾼의 자세로는 

하나님 앞에 진실된 자로 설 수 없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백이 나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하나님밖에 나의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는 믿음만이 진실한 믿음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기대하며 그들을 은근히 압박합니다. 

형들이 자기들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애통하고 회개하며 자신들이 죄인임을 자복하게 만듭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베냐민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용납하도록 만듭니다. 

야곱이 여전히 편애하는 베냐민을 과연 형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시험함으로써, 

요셉은 형들의 회개와 믿음의 진실함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자입니까? 

더 이상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자입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자입니다. 

‘저 인간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자입니다.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것까지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자, 

온전한 자기 부인의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자가 

하나님 앞에 확실한 자, 똑바로 세워진 자입니다.

이 확실한 자에게는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됩니다. 

심지어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하나님이 주시려는 진짜 생명, 온전한 생명, 풍성한 생명 누리는 

공동체로 우리를 세워 주옵소서. 

서로 먼저 용납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비함으로,

허물이 더 이상 허물이 되지 않는 온전한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나의 들보를 먼저 봄으로써,

생명 얻는 회개를 확실히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원수 같아 보이는 이웃을, 형제를,

겸손하게 용납하고 사랑하는 마음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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