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붙듦과 맡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17. 07:23

2026.5.17. 주일

창세게 43장 1-15졸

 

기근의 악화와 유다의 직언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하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라.

 

야곱을 설득하는 유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내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어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야곱의 결단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황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 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접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

몇 개월이 흘렀을까?

이 문제를 두고 야곱은 불멸의 밤을 지세우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눈치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요셉의 문제 때문에 양심이 찔려 아버지를 강하게 밀어부치지도 못한다.

 

이스라엘의 오랜 갈등도 결국 기근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에서를 만나던 그때의 야곱처럼 

애굽 총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물을 준비하고 돈을 갑접이나 준비하게 한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주어진 환경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합당한 행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유다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베냐민을 무사히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자고 제일 먼저 제안했던 그가

이제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놓은 유다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게 한다.

유다의 이런 책임감 있고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이 야곱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가?

이런 유다의 모습 때문에 야곱은 유다에게 홀의 축복을 하였던 것인가?

야곱이 망설이고 주저하던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다의 설득이었다.

유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회개와 변화된 삶의 증거를 만나게 된다.

 

주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님 내 마음을 다스리셔서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고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삶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 아래서 해결됨을 믿고 의지하며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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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듦에서 맡김으로 ]

 

기근의 압박 속에서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스스로 담보가 되기로 자처하자,

결국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단합니다.

 

1-5절

상황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국면에 이르게 하십니다.

기근이 계속되자 야곱은 가족을 살리려면

애굽으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익숙한 자리와 낡은 고집에 머물도록 두지 않으시고

끝내 주저하던 발걸음을 내딛게 하십니다.

우리가 등 떠밀리듯 마지못해 내린 결정을,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은혜의 문을 여는 마중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11-14절

내려놓은 자리를 예기치 못한 기쁨으로 채워 주십니다.

야곱은 총리에게 줄 예물과 갑접의 돈을 준비해 주고

베냐민과 시므온을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이 고백은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이상 자기 손으로 붙들어 통제할 수 없다는 내려놓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손 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려놓은 야곱이,

'다른 형제'인 시므온뿐 아니라 '또 다른 형제'인 요셉까지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삶의 키를 하나님께 맡긴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경이로움'이라는 항구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6-10절

유다는 베냐민을 데려가는 것만이 온 가족의 살길임을 분명히 하고

자기 생명을 담보로 베냐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나섭니다.

과거 요셉을 팔자고 제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형제를 위해 자기  삶을 내놓은 가문의 수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지난 과오를 후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결단으로 증명됩니다.

 

15절

형제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예물과 갑절의 돈을 챙겨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는 관계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는 걸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맡김'과 '내 몫을 다함'을 갈라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되,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준비하고 실행하는 믿음의 하루하루가 모여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됩니다.

 

붙들던 것을 내려놓고 삶을 주님 손에 맡기며 믿음의 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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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와 자백 그리고 치유 ]
찬송가 466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

회개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폭로하시고, 찢으시고, 고치시고, 싸매십니다.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이키지만,

일이 이루어진 후에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처럼 역사하십니다.

야곱의 편애 증세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폭로하여 치료하십니다. 

자신의 편애가 온 가족을 죽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야곱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베냐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온 가족을 살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자식에게도 눈이 돌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의 형들의 마음이 이 한 마디에 녹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형들의 마음도 치유하십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탓하지 않고 용납하게 만드십니다. 

요셉을 미워한 자신들의 죄악을 직시하는 가운데(42:21), 

베냐민을 편애하는 아버지의 약점을 용납하는 마음이 

요셉의 형들에게 분명해졌습니다. 

44:22절의 유다의 말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베냐민을 꼭 데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탓하지 않고, 

늙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 새 백성인 교회의 온전함은 

교회 안에 부족하거나 연약함이 조금도 없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덮어버리는, 연약함을 대신 담당해주는,

사랑과 용납이 가득할 때 

교회는 온전한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가 됩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겸비한 회개에 이를 때,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용서가 일어나고 

이것이 우리의 공동체를 온전히 한 몸으로 만듭니다. 

지속적인 죄의 고백, 끊임없는 회개가 

우리를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로 만듭니다. 

야곱의 가족이 요셉으로 인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을 맞을 때 교회의 허물이 드러납니다. 

그 허물 앞에서 우리 교회가 남을 탓하지 않고 

먼저 자기를 돌아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외부의 압박을 탓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압박이면,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압박을 피하는 것에 힘을 쏟기보다

오히려 그 압박을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먼저 보고 형제를 용납하며,

심지어 세상의 약점까지도 포용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우뚝 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신

우리 주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마귀가 왕노릇하는 이 세상에 두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 세상을 힘으로 쳐부수고 

우리의 모든 권익을 찾아 누리는 투쟁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훈련을 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악한 세상 가운데 놓아두시는 목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권익(심지어 그것이 육체의 생명일지라도)을 지키고 영역을 보존하는 것이 

성도가 세상 속에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용서하게 하옵소서. 

피로 사신 교회가 생명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되도록 

주님이 주인공 되시는 요셉의 드라마를 연출하여 주옵소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 않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게 이끌어 주옵소서. 

겸비한 회개를 매일 하는 가운데, 

형제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갖게 하옵소서. 

비판하지 말고, 용납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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