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유다를 다시 보다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20. 06:44

2026.5.20. 수요일

창세기 44장 18-34절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유다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십니다

이 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게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게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에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게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베냐민을 대신하려는 유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

유다의 자초지종을 듣고 있는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동안 변한 유다와 형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아버지와 형들을 힘들게 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유다. 유다의 변신은 정말 놀랍다.

동생을 팔아버릴 정도로 비정한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애굽의 총리 앞에서 동생의 목숨을 구하고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한 회개한 자의 완전히 변화된 모습의 전형이다.

말만 번지르한 회개가 아니라 생명까지도 내놓는 회개이다.

무엇이 유다를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게 하였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을까?

희생과 사랑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이다.

 

나에게는 유다와 같은 사랑과 책임감과 언행일치의 모습이 있는가

아버지를 위하고 동생을 아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이 아름다운 모습이 있는가?

그래서 유다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인가 보다

유다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다.

 

주님

오늘 유다의 멋진 모습을 닮게 하소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과 은혜를 닮아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게 인도하소서.

단순한 사랑이 아닌 희생적 사랑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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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하는 사랑 ]

 

베냐민이 종이 될 위기 상황에서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아픔과 베냐민의 안위를 자신의 목숨보다 앞세우며,

형제를 대신해 종이 되겠다는 놀라운 희생을 보여 줍니다.

 

18-32절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성장하게 하십니다.

유다는 베냐민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절박한 존재인지, 

자신이 아버지에게 한 약속이 무엇인지를 요셉에게 설명합니다.

한때는 요셉을 종으로 팔아서 아버지의 마음을 무너뜨렸던 유다가,

이제는 요셉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에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지를 헤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형들이 무엇을 느낄지 생각하지 않고 꿈을 말하던(37:5-10) 요셉이

감옥에서 두 관원장의 안색을 살피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40:6-7).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공감과 배려를 빚으십니다.

오늘 내가 주변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바라십니다.

 

18절

유다는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담보로 내놓으며 애굽의 총리 앞으로 나아갑니다.

유다의 담대함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베냐민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비겁한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책임을 다합니다.

핑계 대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할, 내게 맡겨진 일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지켜야 할 거룩한 사명은 무엇인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물러섬 없이 용기를 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생각해봅시다.

 

33-34절

유다는 긴 설득을 끝으로

마침내 베냐민을 대신해 자신이 종이 되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형제를 노예로 팔았던 유다가

이제는 형제를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훗날 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친히 고난의 종이 되셨습니다.

유다가 보여 준 희생적 사랑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자(요15:13),

십자가의 사랑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습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낮아지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고 복음의 요구입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작은 예수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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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백성의 징표 ]
찬송가 219장 주 하나님의 사랑은

37장부터 50장까지의 이야기는 야곱의 족보(37:2)입니다.

'족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톨르도트'는 후손, 계보, 역사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야곱의 족보는 곧 야곱 후손들의 이야기, 야곱 후손의 역사를 말합니다.

야곱 후손들의 이야기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요셉의 이야기 중에 유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끼어들고 있습니다. 

38장에서 훅 치고 들어왔다가 빠지더니, 다시 43장부터 유다가 등장합니다. 

장자인 르우벤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듯하더니(42:37), 

최종적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은 유다가 되었습니다(43:3-15). 

이후에 요셉의 형들을 통칭하는 명칭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44:14)로 바뀌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누명을 씌웠을 때, 

요셉 앞에 그들의 대표자로 나선 사람이 유다였습니다(44:16, 18). 

요셉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마침내 그 이야기를 마무리할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오게 될 것을 암시하는 전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야곱 자녀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을 번성하게 만드는 것이

요셉의 사명, 요셉이 받은 꿈의 목적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곧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주시려는 번성은

단순한 목숨의 연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거룩한 백성의 징표를 보여 달라는 시험을 내었습니다.

베냐민을 볼모로 잡고 형제들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유다가 정답을 내어놓았습니다.

그가 내어놓은 정답의 첫머리는, 

자신들의 죄악을 자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입니다.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려고 애쓰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부당한 일에, 불우한 환경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부당하게 느껴지는 상황과 누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16절이었습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그다음으로 그가 내어놓은 해결책은 33절입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보내소서."

유다가 이런 해결책을 내어놓은 이유는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죄인이 아님에도 죄인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죄인들의 멸망 때문에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희생을 기꺼이 자초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죄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야곱 가족의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에 대한 형들의 반발과 질투심이었습니다. 

이의 완전한 해결은, 

그런 편애를 형들이 완전히 극복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34절). 

형제들의 대표로서 유다는 

아버지 야곱에 대한 원망과 반발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베냐민을 위한 희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죄 문제의 해결은 유혹 거리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를 없애는 것이 죄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 사랑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죄 문제의 가장 완전한 해결책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동력이 되어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예, 그러면 다 된 것입니다. 

이로써 야곱 가족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로마서 13:9-10]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아들들을,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하나님 백성의 거룩은, 거룩한 백성의 징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사랑 만들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마음과 몸에 새기기 위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 생활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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