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라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21. 07:06

2026.5.21. 목요일

창세기 45장 1-15절

 

요셉의 정체 공개와 통곡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과거에 대한 요셉의 재해석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아버지 초청과 봉양 약속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보는 모든 것을

다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논물의 화해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

유다의 말을 들으며 감정을 억제하느냐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애굽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20년도 넘은 세월 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을 것이다.

누구를 붙들고 하소연 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요셉의 이 감정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으리...

막혔던 뚝이 터진 것 같았을 것이다.

 

요셉의 놀라운 통찰력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일어나고 있음을 형들에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큰 구원을 요셉은 분명히 이해하고 잘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일들을 바라보니 다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형들에게 지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설명해 준다.

이미 아버지와 형제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계획에 놓았다.

고센 지역을 점찍어 두었다.

하나님이 일하심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요셉의 모습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보고픈 마음에

아버지를 빨리 모시고 오도록 반복해서 이야기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참고 참았을까?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그분의 뜻과 계획대로 진행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요셉의 모습을 본다.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며 입맟추며 운다.

수십 년 지속되던 형제들 간의 갈등이 끝나고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감동의 시간이다.

요셉이 얼마나 기대하고 기다렸던 순간인가

이 땅 살면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며,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리 자신이 총리가 되고 부족함 없이 살고 있어도

형제들과의 풀지 못했던 갈등과 상처들로 인해 불편함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봄 눈 녹듯이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눈물은 그래서 필요하다. 많은 것들을 씻어 내린다.

그 어떤 것으로도 풀지 못했던 문제들도 진실된 눈물 앞에서 풀어짐을 경험한다.

사람말고도 눈물을 흘리는 존재가 있는지 모르겠다.

 

주님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큰 흐름을 잘 분별하고 깨닫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잘 해석하고 행하게 하소서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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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과거 ]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요셉은

모든 고난이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며,

눈물과 포응으로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합니다.

 

5-8절

과거의 의미를 바꾸십니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세 번이나 말합니다.

그는 이제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아버지와 형제들과 모든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는 순간,

요셉에게는 애굽의 종으로 팔린 사건이 

'형들의 버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송'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아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1-4절

요셉은 수종드는 자들을 물립니다.

형제들과 요셉만 남은 적막한 공간을 채운 것은

20년의 세월을 찢어 낸 통곡이었습니다.

비로소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총리'가 아닌 '아우'로서 형제들을 자기 곁으로 부릅니다.

이는 통치자의 가면을 벗고

그가 먼저 형제들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관계의 회복은 힘의 과시나 정죄가 아니라 

상대에게 진심 어린 '나'를 보여 주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9-13절

요셉의 용서는 눈물 어린 화해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남은 흉년을 대비하도록 아버지를 이곳 고센 땅으로 모셔오도록 했습니다.

참된 용서는 상대에게 복수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대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다 용서했다'고 말하면서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수고나 변화 없이 적당히 덮어 둔 일은 없습니까?

 

14-15절

요셉이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고, 형들과 입 맞추자,

비로소 형들도 입을 엵고 요셉과 대화를 나눕니다.

무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짓과 침묵으로 가로막혀 있던 소통의 문이

'용서'라는 열쇠로 활짝 열린 것입니다.

백 마디 말로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관계가

때로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포응으로 눈 녹듯 허물어지기도 합니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백 마디 말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랑의 행동 하나님을 봅니다.

 

주님의 섭리를 믿는 마음으로 과거의 상처를 믿음의 눈으로 다시 읽어 내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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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 자기 이해 ]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닮고 싶은, 자녀들에게 닮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자녀들이 그와 같이 살기를 원하는 성경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그 1, 2위를 차지하는 인물이 요셉, 다니엘일 것입니다.

왜 요셉, 다니엘이 닮고 싶은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요셉, 다니엘의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요셉과 다니엘의 입지전적인 성공(?) 때문일 것입니다. 

혈통적으로가 아닌, 실력으로 혹은 운(?)으로 이룬 최고의 성공,

왕으로 태어나지 않은 나와 내 자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을

요셉과 다니엘에게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 다니엘이 저 밑바닥(포로, 종)에서 시작하여

왕 다음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더욱더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 나나 내 아이들의 작음과 보잘것없음에 상관없이

소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지요.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믿음으로 살면

너도 저렇게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속삭여 줄 수 있기 때문일 테지요.

믿음으로 살면 훌륭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 

권세와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신앙적으로 유익한 가르침일까요? 

아니 그런 가르침이 신앙적으로 유익하냐는 판단보다도 

우리는 먼저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실 된 가르침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데, 

그것이 마치 성경적인 진리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유익의 판단을 잘못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창 45:5-8절은 요셉의 '자기 이해'가 담겨 있는 진술입니다. 

요셉은 자기 인생의 목적이 

훌륭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 권세와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았음을 

이 말씀에 의해 증언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기가 총리가 된 것이 

신앙의 정절을 잘 지킨 데 대한 

하나님의 보상, 상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수단으로 인식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살아간 목적이 

큰 사람이 되는 것,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을 꽉 채우는 것, 

이것이 요셉이 종이 되기도 하고 총리가 되기도 한 목적입니다. 

요셉이 정결한 삶을 지킨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종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종이 될 것이고, 

그 목적을 위해 총리가 되어야 한다면 또 순종으로 그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가져야 하는 바른 태도가 믿음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셉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계보에 참여한 자들 

곧 요셉의 가족들, 이스라엘 족속들도 

동일한 삶의 목적을 가진 자들입니다. 

단지 요셉이 그들보다 먼저(5, 7절 '당신들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것뿐입니다. 

이집트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 목적을 위해 지금 필요한 일이라면 

이스라엘의 가족은 그렇게 살아야 하고(13절), 

언젠가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종살이도 기꺼이 감당할 것입니다.

이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이 길을 걸어가는 자기 백성들에게 

언제나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도들에게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도록 가르칠 것을 주문하시면서 

그런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세하는 것, 권세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진짜 형통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 28:19-20]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 나도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종이 되든지, 왕이 되든지 

생명의 나라를 완성하는 목표를 향해 

형통하게 걸어가고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말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도하시고 간섭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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