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3. 토요일
창세기 46장 1-27절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게 희생제사를 드리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당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아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야곱 가족의 명단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라
그 달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이들은 라반이 그의 달 레아게게 준 실바가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아 로스와 뭅빔과 훕밈과 아릇이니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서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
단의 아들 후심이요
납달리의 아들곡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야곱과 함게 애굽에 들어간 자는야곱의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잡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
야곱은 요셉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애굽으로 내려가기르 주저하지 않고 서둘렀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애굽으로 가는 여정이 두렵웠던 것일까?
언제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
지금 이 길이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 다시는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먼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린다.
야곱의 인생 가운데 어떤 큰 일이나 여정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에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야곱의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이상 중에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 오셔서 다정에게 야곱을 두 번 부르신다.
그러자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던 모습이 연상된다.
하나님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셔서
야곱의 여러가지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제거해 주신다.
더불어 반드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겠다는 말과
요셉의 손에 눈이 감기리라는 운명도 덧붙히신다.
즉 죽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이어지는 70명의 가족들이 소개된다.
이들이 한 민족을 이루고 돌아올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다.
비롯 70명밖에 않되지만 하나님이 한 민족을 이루기엔 충분한 숫자였다는 말이다.
이 또한 게마트리아의 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70은 7x10으로 7은 언약의 수이고 완전 수이며, 10은 충만 수이다.
여자들의 숫자는 정확히 계수한 것인가?
야곱 가족에 속한 종들은 함께 내려가지 않았을까?
아브라함과 이삭은 많은 종들과 함께 살았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보다 더 든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랴
하나님! 오늘도 영원토록 저와 함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든든함 믿음 위에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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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 가족과 하나님의 동행 ]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낯선 땅에 가는 것이 두려웠지만,
하나님이 야곱과 그의 가족에게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2-4절
단지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기보다
두려움 가운데 동행하심으로
우리의 일상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시며 연약한 그의 마음을 다독이십니다.
두려움에 휩사인 야곱에게 다가오셔서
"내가 너와 함게 애굽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감독처럼 지시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게 뛰고 걷고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동행은 두려움을 설렘으로, 걱정을 기대로 바꿉니다.
8-27절
작은 것으로 큰 일을, 미약한 것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 70명은
민족이나 나라로 불리기엔 턱없이 적은 숫자이지만,
하나님은 이 70명을 통해 하나님이 뜻하신 나라와 큰 민족을 세우실 것입니다.
하는 일이 작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적다고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씨앗으로 위대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입니다.
1절
야곱은 아들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가는 중에 '브엘세바'에서 멈춥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21:33, 26:23-250인 브엘세바에서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일생의 중대한 이동 앞에서 인간적인 계획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인정을 구하는 영적 우선순위를 선택했습니다.
발뒤꿈치를 잡던 '야곱'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이스라엘'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대면하는 '브엘세바'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5-7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든든한 동행과 인도를 약속하십니다.
이에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모든 소유를 이끌고 자녀들과 함게 애굽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예배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묵상은 깊고 찬찬히 하되,
실천은 민첩하고 단호히 해야 합니다.
예배와 묵상이 순종으로 이어져야만
내 삶과 우리 공동체의 여정이 하나님의 뜻과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낯선 길에서도 주의 동행을 신뢰하며, 예배의 확신을 일상의 순종으로 증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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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된 여자, 애통하는 여자 ]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에 대해 야곱이 의구심을 갖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줄곧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이
갑자기 요셉을 통해 가나안을 떠나라 하시니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되지 않을 때,
다른 성경에서 하신 말씀과 반대되는 말씀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냥 그때그때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비록 반대되는 명령이라 할지라도
무작정 순종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희생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야곱의 이런 의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의문이고,
이런 의문이 들 때에는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며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 의문 없이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따져보며 확인하고 그래서 수긍하며 확정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더 깊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은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하고, 일을 잘 처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경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은 사실 풍족함과 안락이 보장된 길입니다.
요셉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라도 지체하기 싫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다 하며 얼씨구나 하면서 바로 내려갈 법도 한데,
야곱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야곱이 이뻤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야곱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집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시적으로 필요해서 내려가는 것뿐이고,
반드시 다시 인도하여 올라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한 가운데
이집트로 내려가라는 명령에 기꺼이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 내용보다 그것에 대한 기꺼운 순종, 신실한 순종이 더 중요합니다.
‘순종’에서 방점은 ‘순종’에 있지 않고 ‘신실함’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기꺼이 순종하여 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에 따라오는 순종은
마지 못해 하는 순종, 두려워서 하는 순종이 아니라 기꺼이 하는 순종입니다.
천국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였기에 천국인 것이지,
단순히 그곳에 환경이나 자원이 잘 갖춰져 있어서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믿음으로 간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모인 사랑의 공동체가 천국입니다.
그렇게 ‘신실한 순종’으로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 일족의 숫자가 70명입니다.
야곱과 그 아내 레아의 후손을 한 묶음으로 한 숫자가 33명(8-15절),
레아의 시녀 실바의 자손이 16명(16-18절),
라헬의 자녀손들 14명(19-22절),
라헬의 시녀 빌하에게서 난 자들이 7명(23-25절)으로서
합계 70명입니다.
야곱의 며느리들(아들들의 여자들) 외에 70명이라고 기록합니다.
여자를 제외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족보를 기록할 때 남자로만 표시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7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7은 언약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수 3에 세상의 수(사람의 수) 4를 합한 숫자입니다.
이 7에 ‘충족성’을 의미하는 10을 곱한 수가 70입니다.
요셉이라는 왕적 존재로 인하여 온전한 화해와 용서를 이룬 이스라엘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실 것임을 숫자로 상징하여 계시하십니다.
이 70은 400여 년 만에 60만이 되는 풍성한 생명력, 완전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 공동체,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70명 중에 여자로서 포함된 사람이 둘 있습니다.
15절의 '디나'와 17절의 '세라'입니다.
세라가 이 족보에 포함된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특별한 능력과 영향력을 가졌고
또 결혼하지 않고 본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명단을 기록한 민수기 26:46절에도
이 세라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이런 짐작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디나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15절에서 레아를 통해 난 야곱의 자손들을 언급할 때,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33명이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33명에는 야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곱 본인을 레아 자손과 함께 묶은 것을 보면,
야곱의 참 아내가 레아임을 성경이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참 이스라엘은 레아에게서 난 이 33명이며,
그 중에 유일하게 딸로서 디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라는 점이 강조되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은 '자손들이 모두 ㅇㅇ명'으로 표현되었으나,
레아의 자손들은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자는 단 한 명이었고 그 유일한 여자가 디나였습니다.
디나는 세상에서 욕을 당한 여자였습니다.
그를 욕보인 세겜이 오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34장의 사건 이후
아마도 디나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아버지 집에서 홀로 산 듯합니다.
이 홀로된 여자(이사야 54:1)가 교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남편을 찾아 세상으로 나갔지만 그 악한 남편에게 욕을 당하고,
급기야는 남편이 죽임을 당하여 애통하는 존재가 된 여자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홀로된 여자(교회)를 애굽으로 내려보내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언젠가 반드시 출애굽(출세상)시켜서
충만한 생명의 공동체로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3, 4절).
70인 중에 특이한 여자인 디나는 어쩌면 70인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창조하는 이야기, 구원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순종하는 자가 되었듯이
애통하는 여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신실한 백성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주님, 언제나 주님의 뜻이 우선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에
사용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이 땅의 남편으로 인해 실망하고, 그래서 영원한 남편을 소망하며 사는
순례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결핍과 홀로됨으로 인하여 애통하는 가운데,
오히려 주님을 더 굳게 붙드는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풍족함과 풍성함에 취하여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믿음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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