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4. 주일
창ㅅ[기 46장 28절 - 47장 12절
야곱과 요셉의 재회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요셉의 지혜로운 조언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들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땅에 살게 되리이다.
고센 땅을 허락하는 바로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바로가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라암셋 거주와 풍성한 공급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22년만에 사랑하는 아들과 아버지가 만나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살아 생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만났으니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한다.
20년 넘게 눈물로 지새운 숯한 고통스런 세월과
외롭고 허전한 가슴을 안고 살아 온 아버지의 마음이다
오매불망 아버지 얼굴 보기를 손꼽아 고대하던 요셉도 마찬가지이다.
요셉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형들이 바로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일러준다.
결국 계획한대로 고센 땅 라암셋에 정착하게 된다.
험한 나그네 인생길 130년을 살아 온 야곱이 바로를 축복한다.
왕이 아랫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일반이지만
나그네가 왕을 축복한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언약의 실현이다.
야곱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통해 언약으로 받은 축복권이 있음을 알았을까?
고통의 세월이 지나고 흉년의 힘든 시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풍요로운 땅 라암셋에서 아버지와 형들이 거주하게 봉향하는 요셉이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섭리가 이렇게 이루어짐을 요셉은 알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진다.
이제 라암셋에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에 충분한 장소와 터전을 요셉이 마련한 것이다.
주님 당신의 계획이 요셉을 통해 착착 이루어짐을 봅니다.
사람이 하는 것 같은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소서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을 따라 살도록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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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길을 여시는 하나님 ]
야곱과 요셉은 재회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요셉은 애굽 왕 바로에게 아버지의 가족을 소개하고
그들이 고센 땅에 정착하도록 돕습니다.
28-30절
상실의 통증을 씻기시고 삶의 의미를 완성하십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을 다시 만남으로,
야곱은 죽은 것과 같던 지난 세월의 무덤에서 소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은 오랜 상실과 결핍의 시간을
결코 헛되게 두지 않으시고,
마침내 "지금 죽어도 족하다"(30절)라는 고백이 나올 만큼
완벽한 치유와 회복을 선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비극적인 삶의 태도마저 새롭게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하며,
오늘 겪은 아픔 너머에 예비된 완성을 기대합시다.
47:11-12
하나님이 야곱 가족을 라암셋으로 인도하고 먹이신 것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12:2)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신실한 보존이었습니다.
고센은 기근 중에도 언약의 씨앗이 마르지 않도록 마련된 거룩한 피난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공급도 단순한 안락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사명을 끝까지 이어가게 하시려는
신실한 배려임을 믿고 의지합시다.
31절 -47:10
요셉은 가족들이 애굽인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업'에 종사함을
숨기지 않고 바로에게 정직하게 밝힙니다.
이는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인 동시에,
애굽의 우상숭배 문화와 섞이지 않고
'고센'이라는 구별된 땅을 확보하려는 영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신앙의 색깔을 흐릿하게 하기보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낼 때
오히려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전한 보호를 경험할 것입니다.
47:7
지치고 노쇠한 나그네 야곱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 바로를 축복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야곱은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과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그는 복의 통로입니다(12:2).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 법이지만,
야곱은 영적 권위로 왕을 축복합니다.
영적 자부심은 소유의 넉넉함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를 등 뒤에 둔 하나님의 자녀라는확신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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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센 땅의 ‘거류자’들 ]
찬송가 376 나그네와 같은 내가
야곱이 요셉을 만납니다.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서 얼싸안았을 때
야곱의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죽음으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 것 같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우리의 감격이 요셉을 다시 만난 야곱의 감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곱은 이 감격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의 야곱의 삶은
이 감격에 붙들린 삶,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으로 견인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을 다시 만난 이스라엘의 가족이 고센 땅에 정착합니다.
아니 정착이 아니라 거류입니다(4절).
거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구르’로서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의 뜻입니다.
야곱이 스스로의 입으로 거류하고자 왔다고 말합니다.
바로가 그의 나이를 물을 때,
야곱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그네’란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여
분명하게 고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직업으로 가장 적합한 생업은 목축업입니다.
언제든지 이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바로 목축업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집트에 거주지를 옮겨서도 이스라엘 일족은 목자라는 직업을 고수합니다.
그래서 농사짓기에 적당한 땅이 아닌,
목축에 적합한 땅 고센 땅을 달라고 합니다.
이들 이스라엘 70인 공동체는
애굽에 왔지만 정착하러 온 것이 아니고
나그네로 왔음을 고센 땅에 사는 것으로 확증합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 거하였던
그 믿음 이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입니다.
고센 땅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며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이집트인들에게는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땅입니다.
그런 고센 땅에 거류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살면서도, 이집트인들과 확연히 구별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이 거주지로 삼은 땅,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은
나일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나안 땅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출애굽을 준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누릴 진짜 삶은 가나안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고센 땅보다 더 좋은 땅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더 좋은 땅을 차지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요셉이 가진 권력이면 얼마든지 더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 일족이 이주하기도 전에
이미 바로가 그들에게 이집트의 좋은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45: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장 좋게 여겼던 땅은 소망을 붙들게 하는,
소망을 잊지 않게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좋은 땅은 이런 땅입니다.
이 땅에서 부를 누리게 해 주는 땅이 아닙니다.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갖게 해 주는 땅도 아닙니다.
가나안과 가까운 땅,
천국 소망을 잃지 않게 해 주는 땅,
항상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땅이 성도에게 가장 좋은 땅입니다.
성도는 언젠가는 헤어져 다시 보지 못하게 될,
이 땅의 삶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이,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 만날 그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헤어지지 않는,
이제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닌 삶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센 땅에 사는 자들은
다시 사는 삶, 진짜 삶이 따로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
그렇게 세상에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주 하나님,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됨으로써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세상에 부활의 소망을 증거하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꺼이 나그네의 삶, 거류자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여 주옵소서.
천 년 만 년 세상에 살 것 같이 그렇게 살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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