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야곱의 믿음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26. 07:00

2026.5.26. 화요일

창세기 47장 27절- 48장 7절

 

죽음을 준비하는 야곱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게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매어다가 조상의 묘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게 경배하니라.

 

하나님의 언약 회상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게 하리라 하셨느니되라

 

요셉의 두 아들 입양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므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

야곱이 147세로 긴 나그네 인생길을 마무리하려 한다.

애굽에서 17년의 평안한 노년의 시기를 보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장례에 대한 문제이다.

요셉을 불러 자신이 죽거든 반드시 조상들의 묘에 장사하라는 부탁이다.

요셉은 약속하지만 야곱은 맹세하게 한다.

그리고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경배한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그 땅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함인가?

아니 자신이 그 약속을 지키고 언약의 땅에 묻힐 거라는 기대감에과 감사함인가?

 

자신이 병들이 임종이 임박한 가운데

요셉과 두 아들의 방문 앞에서 

병든 몸을 일으켜 앉아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려준다

루스에서 만났던 벧엘의 하나님의 복의 말씀을 기억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 그리고 자신에게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요셉에게 전한다

어떤 유언의 말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의미심장한 유언 아니었을까 샆다.

 

야곱은 구지 여기서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왜 두 손자를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이려고 했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요셉의 어머니를

에브랏에 장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려 준다.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치 않다.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의 결론과도 같은 내용들이다.

자신이 붙들고 지켜야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히기를 소망하고 부탁한다.

그리고 다른 말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셨던 언약의 말씀으로 유언을 대신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회상하고 조상의 묘에 장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요셉과 후손들이 이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기를 당부하고 소망한다.

 

주님

그 어떤 이유보다 자신의 믿음의 여정을 설명하고

자녀들에게 믿음을 부탁하는 유언이 멋진 유언이라 생각합니다.

야곱의 인생의 끝이 참 행복하고 부럽고 존경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저의 인생의 마지막도 야곱처럼 믿음의 사람의 아름다운 마침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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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와 진실로 약속을 지키라 ]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고센 당에서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은 요셉을 불러 조상의 묘지에 장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27-28절

척박한 땅에서도 창조의 복을 성취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센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였다"는 기록은 

창조 시 인간에게 부여하신 문화혁명(1:28)

이방 땅에서도 중단 없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야곱이 애굽으로 가기를 주저할 때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 약속(46:3)의 신실한 이행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 비록 낯선 이방일지라도 

그곳을 축복의 산실로 바꾸어 내시며 주권적 섭리를 기어이 완수하십니다.

성도는 눈앞의 결핍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신뢰해야 합니다.

이방의 땅조차 거룩한 백성의 모판으로 삼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힘을 얻습니다.

 

29-31절

야곱은 요셉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 넣게 하여 

가나안 매장을 맹세시킵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을 걸고 언약을 지키라는

고대 근동의 가장 엄중한 의식입니다.

야곱이 당부한 '인자'(히,헤세드)와 '진실"(히, 에메트)

변치 않는 사랑과 확고부동한 충성을 의미합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욕망을 좇던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기업만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는 '언약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약속이 저절로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맹세를 통해 가나안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능동적인 신앙인입니다.

우리도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인자'와 '진실'의 마음으로

주의 뜻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그 약속을 확증해야 합니다.

 

48:1-7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양자로 삼은 것은 루우벤의 장자권을 요셉에게 넘겨

두 몫의 기업을 주는 절차이자, 세대를 넘어 벧엘 언약을 확장하려는 의도입니다.

손자가 아들의 항렬로 격상되면서 공동체는 구조적으로 세력이 늘어나는 기틀을 얻었습니다.

신앙은 다음 세대를 축복하여 지경을 넓힐 때 생동합니다

우리 세대의 은혜에 안주하지 말고,

우리 후손이 언약의 주역으로 당당히 설수 있도록 

그들 앞에서 언약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인자와 진실의 마음으로 주의 언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실한 증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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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믿음 ]
찬송가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히브리서에서 야곱의 믿음에 대해 기록한 것은 딱 한 절입니다.

요셉의 믿음에 대해 기록한 것도 딱 한 절입니다.

[히 11:21-22]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이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오늘 본문 말씀이 확인해줍니다.

야곱과 요셉의 믿음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로 번역된 31절을 

히브리서 11:21절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로 표현하였습니다.

‘침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타’는 

‘지팡이’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마타’와 그 자음이 동일합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어는 본래 모음 표기가 없이 자음으로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모음 표기는 기원후 6세기경에 유대 학자들이 독해의 편의를 위해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히브리어에서 침상과 지팡이는 사실상 동음이의어가 됩니다.

즉 히 11:21절 하반절과 창 47:31 하반절은 똑같은 구절에 대해 

‘ㅁㅌ’를 하나는 ‘마타’로 또 하나는 ‘미타’로 간주한 번역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히 11:21절의 야곱의 믿음에 대한 평가는 

오늘 본문의 상황을 두고 내리는 평가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야곱이 하나님께 경배한 것을 믿음의 행위로 평가했는데, 

창 47:31을 통해 살펴보면 야곱이 경배한 이유는 

요셉이 야곱의 유언대로 할 것을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유언은 자기를 애굽에 매장하지 말고 

가나안 조상의 묘지에 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ㅁㅌ’를 ‘침상’으로 번역하느냐 ‘지팡이’로 번역하느냐가 아니고,

31절 하반절의 상황이

야곱이 자신을 가나안 조상의 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하며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 매장하지 않고 가나안 땅에,

그것도 조상의 묘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가나안 땅 조상의 묘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야곱이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은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그리고 그들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이 아닌, 

영원한 가나안 땅 곧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터와 성을 바라보며 

가나안 땅에서 한 뼘의 땅도 취하지 않고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단지 그가 취한 가나안 땅은 그와 자손들을 묻을 묘지였습니다.

이는 그곳에서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겠다는 그의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영원한 땅으로 주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창 25:7).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야곱을 60세에 낳았으니 

아브라함이 죽을 때 야곱의 나이는 15세였습니다. 

야곱은 15년 동안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살면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이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물론 아버지 이삭에게서도 동일한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가 높게 평가한 야곱의 믿음은 

애굽에 소망을 두지 않고 

가나안에,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본향에 소망을 두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곱이 임종이 가까울 때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도 같은 믿음의 행위였음을 히브리서 기자가 확인해주고 있습니다(히 11:21 상반절). 

그렇다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것도, 

애굽에 소망을 두지 않고 가나안에 소망을 두는 어떤 행위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야곱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후손들도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소망을 두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야곱은 이집트 제사장의 딸을 어미로 하여 태어나서 이집트에서 자란, 

사실상 이집트 사람일 수밖에 없는 요셉의 두 아들을 

가나안에서 이주해 온 야곱 자신의 아들로 삼아버립니다(48:5절). 

즉 그들을 가나안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을 것입니다. 

날 때부터 대국 이집트 총리의 아들로 태어나 

애굽의 모든 선진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그들에게 

저 변방 가나안에서 온, 국적도 불분명한 

야곱이라는 시골 할아버지의 아들로 입양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여겨졌을까요? 

그렇게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야곱이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 축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 축복을 

과연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집트 총리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과 

그 아버지에게 직접 받는 축복이 훨씬 더 가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싫어하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야곱은 믿음으로 그들을 양자로 삼고 축복하는 일을 강행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이 입양한 것에는, 

단순히 요셉에게 두 몫을 주고 장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자손이 하나도 예외 없이 

가나안에 소망을 두는 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삼겠다는 이야기의 끝에, 

라헬의 장사와 무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요셉의 친어머니,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친할머니가 라헬입니다. 

어머니가, 할머니가 묻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갈 소망을 잊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애굽인이 아닌 가나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함으로써, 

그 소망이 이루어질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애굽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총리를 아들로 두고 애굽에서 17년간, 

이전의 험악한 세월과 너무도 다르게 편안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모든 영화를 안중에 두지 않고

가나안에 여전히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이었습니다. 

모든 자손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 곧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 되는 것, 

말년의 야곱은 이를 믿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리한 사람, 야곱의 믿음이 참 귀합니다. 

날로 더욱 귀합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로마서 9:13, 말라기 1:2-3)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찌질이 야곱에게 이런 믿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날이 갈수록, 죽음이 가까울수록, 

하늘에 대한 소망이 더 커지는 믿음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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