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8. 목요일
창세기 49장 1- 15절
아들들의 쇱과 예언의 서막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부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르우벤 :상실된 장자의 위엄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이 끓음 같았은즉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시므온과 레위 : 폭력의 대가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이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유다 : 왕권과 풍요의 약속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의 새끼라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스불론 : 해변의 거주자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로다
잇사갈 : 좋은 땅에서 받는 압제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끓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단 : 심판자와 길의 뱀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갓: 추격과 반격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 : 왕의 수라상을 차림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납달리 : 놓인 암사슴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요셉 : 형제 중 뛰어난 자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베냐민 : 물어뜯는 이리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열두 지파에게 알맞은 축복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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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죽음 앞에서 열두 아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축복한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는 축복이라고 할 수 없고 저주에 가가운 예언을 한다.
야곱의 축복은 유다와 요셉에게 집중된다.
유다에게는 규와 홀의 축복과 그의 후손을 통해 실로가 오신다는 예언이다
요셉에게는 전능자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한없는 복을 축복한다.
훗날 12지파들의 삶은 야곱의 예언처럼 이루어졌다.
야곱은 어떻게 아들들과 그들 후손들의 장래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축복했을까?
유다와 요셉을 제외한 아들들에게는 딱히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들들의 지난 날들의 삶과 성격이 축복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삶 따로 축복 따로가 아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냐에 따라
장래에 주어지는 축복이 결정되는 것 같다.
인과론적인 것 같지만 하나님도 복 받을만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
물론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은 당신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다 복을 원한다.
큰 복, 많은 복을 받아 누리기 소망한다.
복의 신학적, 성경적 의미를 떠나서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요셉의 축복을 원한다.
그렇다면 요셉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요셉의 광야 같은 인고의 세월과 하나님과 동행하며 꿈꾸는 기도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요셉의 형통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
저에게도 복을 주시옵소서.
일평생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복을 주소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복을 주소서.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은혜의 단비를 소망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내주하심으로 온전한 통치와 다스림을 받도록 복을 주소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고 섬기도록 영원한 천국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 믿음의 순례길을 걸어가기에 힘들지 않도록 건강함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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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으로 묶인 공동체 ]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모아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며,
이스라엘이 단순한 혈연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속된 거룩한 언약 공동체임을 선포합니다.
3-4, 8-15절
인간의 행위와 중심을 헤아려 언약의 계승자를 친히 선택하시는 공의로운 주권자이십니다.
장자 르우벤은 탁월한 위엄을 가졌으나 정욕을 다스리지 못해 장자권을 잃었고,
잇사갈은 땅의 안락과 이익을 좇다 스스로 종의 멍예를 멧습니다.
주의 언약은 우리를 죄의 노예가 아닌 자유의 삶으로 인도하지만,
이익을 숭배하는 자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자신의 안위만 탐하는 자들을 통해서는
거룩한 역사를 이어가지 않으십니다.
대신 형제를 위해 자신을 담보로 내놓은 유다를 선택하셔서
그 지파를 통해 장차 메시아가 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경외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를 귀히 여기시며,
세속적 서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를 통해
구원의 경륜을 펼쳐 가십니다.
1-2절
야곱은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아들들을 불러 모아 '후일에 당할 일'을 예고합니다.
이 소집은 단순한 작별 인사를 넘어
형제들이 하나의 '말씀' 아래 모여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동동체로 새롭게 정의되는 순간입니다.
서로 다른 성정과 이력을 지닌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의 예언을 들을 때,
각자의 다름은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다양성으로 승화됩니다.
참된 연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함께 연합할 때 실현됩니다.
우리도 말씀 앞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한 통일체를 이루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를 일구어 가야 합니다.
5-7절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사건(34장)에서 보여 준
잔인한 폭력성과 통제되지 않은 분노로 인해
공동체 내에서 흩어지는 징벌을 받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용기는 분노를 터뜨리는 힘이 아니라,
원수 갚는 것을 주께 맡기고 화평의 법을 따르는 인내에 있습니다.
불의와 폭력으로 얻은 일시적인 승리는 결국 영광을 가리는 찌꺼기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분노하는 의리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를 선택해야 하며,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자신의 혈기를 다스리는 성숙한 인격으로 연마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교제하며, 선한 일을 위해 협력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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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공동체(교회)의 리더십 ]
찬송가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야곱이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후일에 당할 일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대부분 마음이 착해진다고(?) 하지요.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도 용서하고, 원수 맺은 것도 풀고 그럽니다.
그런데 야곱은 남도 아닌 자기 아들들에게 죽기 전에
축복은 못 해줄망정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축복한 아들도 없지 않지만,
오히려 더 많은 아들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합니다.
야곱은 이상한 아버지, 고약한 아버지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창 49장은 많은 사람들이 '야곱의 축복'이라고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28절의 말씀도 야곱이 열두 지파에게 축복한 내용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들들을 향한 야곱의 예언에는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것들은 축복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이 예언들은 자기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알고서 우리보다 야곱이 오히려 더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예언을 제게 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아들들에게 말하라고요...?'
야곱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자식들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에 대한 예언은 특별히 더 저주에 가까운 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저주가 축복으로 변합니다.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징계와 심판의 말씀이 복과 영생의 말씀으로 바뀝니다.
르우벤이 인간적 탁월함을 더 이상 자랑하지 않을 때,
그는 하늘의 장자들의 모임(히 12:23)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레위는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그들이 자기의 형제를 치면서까지 여호와께 헌신하였을 때(출 32:29),
그 예언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민 25:13).
겸비한 마음이, 겸비한 믿음이 복 중의 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압제 아래서 섬기는 잇사갈은 복 중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예'가 됩니다(고후 1:20).
유다의 지도력에 대해 야곱은 예언적인 축복을 합니다.
위로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가 있었지만
넷째 아들인 유다가 모든 형제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르우벤은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했지만, 리더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주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능력이나 힘의 측면에서 탁월했지만, 혈기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의 끓음 같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지도력은 위풍이나 권능 혹은 폭력적인 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머리 행세를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리더는 머리 노릇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머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자는 결코 교회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지체임을 알고, 머리에 잘 순종하는 본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챤 리더십입니다.
유다가 죄를 덜 지어서 리더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똑똑해서 그에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들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따지고 보면 르우벤과 똑같이 더러운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온유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겸허함(다말 사건에서 보이듯이)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축복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결코 머리 행세를 하지 않을 겸비함의 소유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에게 머리 역할을, 왕의 자리를 대행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자기 것으로 착복하지 않을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맡기십니다. 풍족하고 넉넉하게 주십니다(11-12절).
주님, 우리가 우리를 거역하는 자에게 혈기를 내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지체들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그렇지 못한 지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옵소서.
누구보다도 먼저 순종하고 섬기는 그런 리더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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