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9. 금요일
창세기 49장 16-28절
[어제보다 나은 내일]
야곱은 소외된 지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평한 구원을 선포하며,
특히 요셉에게 고난을 뚫고 담장을 넘는 풍성한 복과
선조를 능가하는 신앙의 전수를 축복합니다.
22-24절
대적의 공격을 이길 수있는 힘을 주십니다.
요셉은 담장을 넘는 '무성한 가지'의 복을 받습니다.
이는 평탄한 삶이 아니라 거센 풍파를 뚫고 피어난 승리의 열매입니다.
대적들이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품고 공격했으나
도리어 요셉의 활이 굳건했던 비결은
'야곱의 전능자'의 손이 그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고난을 제거하시는 방식만이 아니라,
공격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강인한 팔을 주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16-20절
단, 갓, 아셀은 서자라는 태생적 결핍이 있으나
야곱은 이들의 아름을 승리와 풍요의 상징으로 발전시킵니다.
특히 단의 예언 중 터져 나온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는 고백은,
환경의 한계를 역전시키는 열쇠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구원의 가능성은 출생 배경이나 역량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다림'의 신앙에 있습니다.
우리는 조건에 낙심하기보다
연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21절
놓인 암사슴 납달리가 내뱉는 '아름다운 소리'는
장차 그의 기업인 갈릴리에서 울려 퍼질 복음의 서곡입니다(참조 마 4:12-17).
우리는 납달리처럼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주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경험한 자의 삶은
산을 넘는 암사슴처럼 경쾌하며,
그 입술에서 나오는 구원의 증거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노래가 됩니다.
25-26절
야곱은 요셉에게 선조의 복보다 나은 복이 임하기를 구합니다.
하늘과 샘의 복을 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이전 세대보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바라십니다.
부모의 믿음보다 더 깊은 순종에 이르고
앞선 세대의 헌신보다 더 넓은 사랑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
언약 자손의 본분입니다.
과거의 복에 안주하지 말고
내일의 더 큰 영광을 향해 영적 지평을 넓혀 갑시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의 구원을 바라고 주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
[ 각 사람의 분량대로 ]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창세기 49:16-28>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공동번역 : 단은 이스라엘 어느 지파 못지않게 제 백성을 다스리리라.]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축복한 기준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입니다(28절).
문자적으로는 ‘각 사람의 복대로’입니다.
이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복
곧 각 사람의 분량이 최고의 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으로 정하신 복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셉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26절이 요셉을 그 형제 중 '뛰어난 자'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더 뛰어나게 해 주었다면,
나머지는 덜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고
이는 그만큼 복을 덜 받았다는 의미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각자가 최고의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뛰어난 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면 이런 의문이 해소됩니다.
요셉의 복조차도 결국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신 복과 전혀 다름이 없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말로 ‘뛰어난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한 단어로서 ‘나지르’입니다. ‘나실인’을 말합니다.
‘나지르’의 문자적인 뜻은
‘전지하지 않은 포도나무’. '손질하지 않은 포도나무'입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실인’에게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미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라고 주신 규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주신 능력에 따라, 자기의 분량대로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한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나지르’(뛰어난 자)였습니다.
요셉을 '뛰어난 자'로 표현한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탁월함', '능력이 많음'과는
다른 뜻을 가진 뛰어남을 가리키는 진술입니다.
26절에서 ‘나지르’를 ‘뛰어난 자’로 번역한 것 때문에 오해가 생겼습니다.
요셉은 ‘나지르’였고 그는 전혀 뛰어남을 추구하지 않은,
오히려 뛰어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뛰어남(나실인 됨)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시는 복이 최고의 복이라는 기준에서
예외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요셉의 뛰어남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하나님의 의도 그대로 잘 실현하였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총리가 되었을 때만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종으로 팔려가게 한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였고,
옥살이를 하게 하였을 때도
받은 은사(꿈 해석의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여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만약 애굽의 총리라는 직분을
형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와 자신의 노예 생활에 대한 보상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면,
그는 결코 '뛰어난 자' 곧 '나실인'의 이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받은 은사와 직분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 후손을 번성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한 '나지르'였습니다.
그는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가장 합당하게 사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실인'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구별한 자가 나실인이요,
그 구별됨에 충성 되게 봉사하는 자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준 분량과 은사를 잘 계발하며,
지체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뛰어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든지 그 '분량'대로, 그 은사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자리를 잘 지키는 자가 '뛰어난 자'입니다.
분량의 크기가 뛰어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량에 대한 성실한 충성이 '뛰어남'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역할들을 축복으로 받은 다른 형제들도
동일하게 '뛰어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각기 분량대로 주신 은사를 충성되게 사용하면,
우리 모두는 '뛰어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분량을 탐내고 다른 은사를 부러워하여
지체의 자리를 충실히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뛰어난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 12:29-31 ] 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고전 13: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렇습니다. 나의 은사를 가장 큰 은사로 만들어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된 마음, 헤세드입니다.
그 마음이 형제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충성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각자가 가진 은사를 가장 큰 은사로,
우리 모두를 가장 ‘뛰어난 자’ 나실인으로 만들어줍니다.
사랑은 은사가 아니지만 은사를 더욱 큰 은사로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뛰어난 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마땅히 사랑의 능력,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주 하나님,
우리를 은혜의 선택에 의해 각기 구별된 지체로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실인임을 잊지 않고, 나실인의 계명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하나님 주신 것 외에 내 것을 갖기 위해서, 더 많이 얻기 위해서,
꾸미고 장식하는 것에 골몰하지 않겠습니다.
각기 분량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대로 충성하겠습니다.
노예의 자리에서도, 총리의 자리에서도 동일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