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야곱의 장례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30. 06:41

2026. 5. 30. 토요일

창세기 49장 29절 - 50장 14절

 

야곱의 유언과 죽음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게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 밭과 함게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거기 있는 굴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성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요셉의 슬픔과 애굽의 공식 애도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바로의 허락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우리 아버자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사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아벨미스라임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라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막벨라에 장사함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매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게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

파란만장한 험한 나그네 인생길 147년을 살다가 야곱이 조상들과 함께 눕는다.

요셉은 야곱의 유언대로 최고의 장례를 치르고 막벨라 굴에 시신을 장사지낸다.

요셉은 야곱의 호상 앞에서도 7일 동안 곡하는 슬픔을 보인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가 긴 세월을 살아 장수하였고, 자신과 함께 평안한 노년을 보냈다. 

아버지가 원하던 가나안 땅 조상들로 장사하게 되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수많은 애굽의 신하들과 모든 자녀들이 함께 장사를 지냄은 왕같은 죽음인데 말이다.

브엘세바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셉이 그를 장사지내고 죽어서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야곱의 죽음은 이제 열 두 아들들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다.

야곱의 죽음 앞에서 나의 죽음은 어떠해야 할지 묵상한다.

모든 가족들 앞에서 유언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

본인이 원하던 매장지에 조상들과 함게 묻히고, 

죽어서 조상들과 함게하고픈 소망이 다 이루어졌다.

자녀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억하기 위해

죽은 몸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부터 약속하신 언약의 땅을 기억하고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지막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부활의 신앙을 붙들고

이 땅에서 함께한 조상들이 육신이 함께 땅에 묻히는 것만 아니나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하리라는 소망의 표현인 것이다.

후손들에게 이것을 깊이 심어주고 떠나는 야곱의 마지막이다. 

 

주님 

우리는 주변의 망자들을 생각하며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야곱의 시신이 묻힌 가나안 땅 막벨라 굴이 주는 상징성,

후손들이 돌아갈 소망의 근거가 되었듯이

나도 죽음 앞에서 이런 유산, 이런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오늘도 부활신앙을 단단히 붙잡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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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향한 거룩한 귀환]

 

야곱은 아들들에게 자신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고 숨을 거둡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를 가나안에 장사하고 돌아옵니다.

 

29-33절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을 애굽이 아닌 조상들이 잠든 막벨라 굴에 장사할 것을 엄히 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회귀 본능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최종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그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에 있는 초라한 굴을 영원한 안식처로 선택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안락에 취해 돌아가야 할 본향을 잊기도 합니다.

야곱이 죽음의 문턱에서 약속의 땅을 보았듯,

우리 역시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하늘 시민'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0:1-6

요셉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통곡하며

애굽의 예법에 따라 시신을 향으로 처리하게 합니다.

이는 애굽의 관습을 존중하면서도

가나안까지의 장거리 운구를 가능케 한 현실적 지혜였습니다.

또한 요셉은 바로에게 정중히 허락을 구하며

아버지에게 맹세한 것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참된 싱앙은 세상과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언약적 가치를 우직하게 지켜 내는 것입니다.

요셉이 세상의 예법 위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듯이,

우리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지혜로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50: 7-14

애굽의 고관들과 병거가 동원된 야곱의 장례 행렬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아닷 마당에서의 큰 울음은 이방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겨

그곳이 '아벨미스라임'(애굽의 애통) 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 행렬은 장차 있을 출애굽의 예표이자,

세상 나라조차 예의를 표하는 신앙의 위엄을 보여 줍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던 나그네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 안에서 찬란한 영광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인생의 마지막 여정조차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통로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고난이 결코 끝이 아님을 믿고,

우리르 가장 존귀한 자리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 중에 인내해야 합니다.

 

세상의 하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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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장례 ]
찬송가 608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야곱은 자신의 장례에 대해 요셉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애굽에 장사 지내지 말고, 가나안 땅 조상의 무덤에 함께 장사 지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무덤은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자기 소유로 사서 만든,

이스라엘 조상들의 믿음의 고백이 깃든 장소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이, 

무덤으로 삼은 땅만큼은 돈을 주고 사서 기어이 자기 소유로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 이유, 그렇게 한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뜻을 이어서 야곱도 그렇게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무덤의 땅만큼은 굳이 돈을 주고 사서 자기 소유로 한 것은, 

그 무덤에 그의 모든 소망을 건다는 의미입니다. 

그 무덤이 그에게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기업 매장지'를 만들고 거기에 묻힘으로써, 

가나안 땅을 '영원히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는 약속(창 17:8)의 성취를 

그곳에서 지켜보겠다는 의지와 소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9:30절과 50:13절에 '매장지'로 번역된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로는 두 단어로 되어있습니다. 

옛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소유 매장지'로 번역했습니다.

이때의 '소유'는 상속으로 얻게 되는 재산을 뜻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기업'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즉 '소유 매장지'는 자손 대대로 물려줄 재산으로서의 매장지를 말합니다.

애굽 현직 총리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 장례식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요셉이 곡한 장소에 이름이 붙어 후대에까지 남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장사하였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애굽에서 장례를 치렀다면 훨씬 대단했을 것입니다. 

장례 후에도 그 무덤을 찾는 고관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살아 있는 한 무덤 속에서도 야곱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가나안 땅 야곱의 무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잊혀질 것입니다. 

애굽인들에게만 아니라, 야곱의 자손들에게도 전설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해마다 추석이 되면 무덤을 찾아 성묘를 합니다. 

그러나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 애굽이라는 큰 나라에서, 

이런 풍습이 정착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타국에 있는 무덤을 자주 찾아보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셉이 현직에 있을 때는 혹시 한두 번 찾았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후에는 자식들에게까지 잊혀진 쓸쓸한 풀무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잡초만 무성한, 쓸쓸한 무덤이 된다 할지라도

꼭 가나안 땅에 자기 무덤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곱은 영원한 생명, 부활 생명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46:4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내가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는 약속을 문자 그대로 믿었습니다.

사실 이 약속은 그 자체로 모순이 담겨 있는 약속이었습니다. 

요셉이 야곱의 눈을 감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야곱이 애굽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을 동시에 약속하십니다.

단순히 시체가 올라오게 할 것이라는 약속, 

가나안 땅에 장사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무슨 대단한 약속이나 되는 것처럼,

'반드시'라는 표현을 써 가며 하셨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부활 생명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즉 46:4절은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부활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부활 신앙이 분명해졌습니다. 

칼이 번쩍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키르케고르, 임춘갑 역, "공포와 전율/반복", 다산글방, 2007, 53).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이 부활 신앙으로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자기 소유로 하여, 

그곳에 자기와 아내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모리아산 부활 신앙 고백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이삭 역시 

이 부활 신앙의 계승자였기에, 

동일한 곳에 자신과 아내를 장사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확인해주신 부활 신앙에 근거하여 

자신을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여 줄 것을 요셉에게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장례의 여정이 얼마나 멀고 험할지가 충분히 예상되는 장례식입니다. 

고생만 실컷 하고 폼은 나지 않는 장례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야곱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는 소망을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있습니다(히 11:10). 

더 나아가 70일 동안 야곱을 위하여 곡을 한 애굽인들에게도 부활 소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나안 땅에까지 장사하러 가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자들에게

누군가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니 글쎄, 여호와란 신이

그를 다시 되살려 이 땅을 영원한 소유로 준다고 했다는구만.

그래서 저 난리들이야.”

우리의 장례식이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화려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무덤을 두는 장례식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빈소나 화장터, 무덤의 외양을 꾸미기보다는 

부활 생명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보여주는 장례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애굽 곧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는다는, 

우리 소망은 하늘에 있다는 믿음을 분명히 증거하는 

그런 장례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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