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 월요일
고린도전서 1장 1-9절
인사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미쁘신 하나님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6월부터 고린도전서의 묵상이 시작되었다.
고린도라는 그리스의 가장 큰 도시에
바울 사도가 전하는 복음과 신앙의 문제들을 깊이 묵상하고 은혜를 누리기를 기대한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하나님의 선택,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부르심, 사도로의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이 부르셨을까? 무엇으로 부르셨을까?
사명과 소명에 대한 물음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한다.
바울이 편지하는 대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라 부른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며,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도'만큼 영광스러운 호칭이 있을까 싶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며 인사한다.
사람들에게 문안할 때 가장 좋은 인사말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은혜,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평강이 당시 최고의 인사말이었단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족하다.
하닌모가 바른관계, 친밀한 교제 속에서 진정한 평안, 평강이 임한다.
이 평안은 기쁨과 감사로 표현된다.
바울이 감사하는 내용은
고린도 교회가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하여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며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소망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들과 교제하게 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적고 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거룩한 자로 서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거룩한 자신의 모습 외 무엇을 가지고 서겠는가?
오늘 본문만 가지고도 묵상할 거리가 넘쳐 난다.
주님,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날까지 견고하게 믿음 생활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믿음의 순례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하고
늘 삶이 평탄하고 평강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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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
예베소에 머물고 있는 바울은 사역했던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룩한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킵니다.
1-3절
바울을 사도로 부르시고, 고린도에서사 어디에서나 죄인들을 성도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召命)에는
그 부르신 뜻을 이루게 하는 '보내심'(사명, 使命)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라'는 명령을 담아
우리를 거룩한 사람들, 곧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사명이 없는 소명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보냄받은 자로서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4-7절
부르신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어떤 일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일찍이 고린도 성도에게 말과 지식의 은사를 더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실히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자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은혜의 '선물'을 내 노력의 '산물'로 여기는 순간,
감사는 사라지고 교aks과 자랑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물이 도리어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분열의 씨앗이 되고 말 것입니다.
8-9절
부르셨으니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자라도
여전히 문제가 많고 어려움 만날 때마다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아침마다 성실하심으로 우리를 건사하십니다.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빌 2:13)이
기어코 우리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완성해 가도록 모든 과정을 책임지실 떼니,
그 부름에 기대어 오늘의 삶을 살아갑시다.
4-7절
하나님이 공동체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주신 풍성한 은사를,
사람들이 얼마든지 가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자랑인 모든 언변과 지식의 은사는
감사의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교회를 어지럽히는 올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인 양 자랑하면서 손상했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순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오용을 낳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선물임을 인식할 때 삶은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더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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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견고함 ]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고린도 교회는 꽤나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물론 장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고린도는 헬라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문화가 발달하였고, 능력과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언변과 지식을 구비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런 장점들을 유익하게만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장점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고(5:2),
자랑하는 가운데 서로 다투며 방자하게 굴게 하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대도시에 사는 것이 그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지만,
그것이 그들이 세상 문화를 거스르는 십자가 복음을 따르게 되는 것에는
그다지 유익하지 못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시작하였던 고린도 교회가,
불신자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로 전락하였습니다(5:1).
이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편지합니다.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고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몸된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세우십니다. 말씀으로 세우십니다.
보이지 않는 국면에서는 성령님을 통해(요 14:26),
보이는 국면에서는 사도를 통해(마 16:18, 28:19-20) 그렇게 하십니다.
이 사도들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편지를 합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갖가지 추문과 불협화음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에 대해 말씀으로 책망하기 위해 펜을 든 사도입니다.
그러나 이 책망도 반드시 견고하게 하실,
미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믿음 중에서 하고 있습니다(4절).
이 믿음의 기초 위에서 책망하고 권면하고 있음을 사도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8절).
교만하고 방자하게 구는 고린도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고 있기에
바울은 확신합니다.
그들이 반드시 온전히 견고하게 될 것을,
결국에는 부족함이 없는 공동체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붙어 있기만 하면,
그 어떤 문제라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하는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로 인해 책망을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래서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하더라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심한 책망을 받더라도
반드시 그 문제를 극복하고 이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의미는
보이게는 교회를 가까이한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게는 성령님과 계속 교제한다는 뜻입니다(9절).
성령님과의 교제는 곧 예수님과의 교제입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는 말씀의 교제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요 14:26).
교회 또한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분부한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기 위해 세워진 공동체입니다(마 28:19-20).
이 예수님 안에 있음이,
문제로 인한 어려움과 실패를 반드시 극복하게 하는 능력의 동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우리의 견고함입니다.
책망을 듣지만, 야단을 맞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책망을 듣고 야단을 맞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받는 책망은 내치는 책망이 아니라, 우리를 세우는 책망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받는 징계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치료입니다.
책망을 받아도, 징계를 받아도 예수님 안에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성도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평강입니다(3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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