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십자가의 도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6. 3. 08:30

2026.6.3. 수요일

고린도전서 1장 18-31절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 십자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게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게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니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제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세상의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자랑이신 그리스도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십자가의 도.를 평생 묵상하여도 다 깨닫지 못한다.

십자가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죄성을 가진 인간이 세속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지혜를 뛰어 넘는 신비 그 자체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세상의 지혜와 총명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어야 사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그리스도만이 모든 질문의 답이고 해결책이다. 

누가 감히 그리스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능가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그리스도를 뛰어넘는 방법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오늘도 미련하게 복음, 예수 그리스도 생명을 전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심을 전하고 또 전할 뿐이다.

 

주님

이 십자가의 신비,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고 신뢰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미련하고 미천한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감사로 구원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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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 세상의 지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인 십자가의 말씀만 집중하기를 권고하면서,

세상의 모든 지혜와 자랑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강조합니다.

 

18-21절

'전도(선포)의 미련한 것',

즉 어리석게 들리는 '십자가의 말씀'으로 

이 세상의 지혜를 멸하시고 구원의 일을 행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게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유창한 '말'의 지혜를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지혜가 얼마나 허망하고 허세 가득한

'말잔치'에 불과한지를 폭로하십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그게 말이 돼?' 하는 세상의 물음 앞에서 

여전히 영혼을 살려 내는 생명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생생히 역사하고 있습니다.

 

26-29절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

곧 미련하고 약하며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부르심으로,

지혜롭고 유능하며 부유하고 강한 자들의 자랑을 무너뜨리십니다

(삼상 2:1-10, 눅 1:46-55).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유약한 그들이

교회의 기둥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세워 갑니다.

교회 안에서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을 자랑하며 으스대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무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는 방해물이 됩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맙시다.

 

30-31절

세상에서 '있으나마나 한' 존재인 우리를 택하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들 만한 자원이 내게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그 은혜만을 자랑합시다.

 

22-25절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여전히 어리석은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 '걸림돌'에 불과한 십자가는 

믿는 우리에게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성도나, 지금 우리나

세상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기를 요구받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보로 때,

비로소 그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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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도를 증언하는 자들 ]
찬송기 339장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욕심과 자기 자랑, 자기 주장으로 혼란스러워진

고린도 교회에 내리는 바울의 처방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

지혜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만

이것이 이해되고 믿어질 것입니다(24절).

예수님이 복음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분이십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가르처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지는 십자가였습니다.

이 십자가에 복음의 진수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인간, 

죄인인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 죄 문제를 해결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예수님께 붙어서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로 결정한 자들에게 

'의'가 선포됩니다. '구원'이 선포됩니다. 옛 죄를 사하십니다.

단순히 형벌을 면제해 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온전히 의로운 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사면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약 죄를 용서하는 것만으로 죄 문제가 해결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모든 죄를 용서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죄는 용서만으로 해결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는 믿음(요 1:12)을 요구하십니다.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될 때 

인간의 죄 문제가 온전히 해결됩니다.

이를 위해 주 예수님께서 인간 가운데, 

인간과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으로서 온전히 의로운 길, 십자가의 길, 

죽기까지 복종하는 길을 먼저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우리에게 증언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들에게, 

죄 용서가 선포되면서 성령님의 임재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로써 죄인인 인간이,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뒤따라 가게 됩니다.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원, 새로운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새창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께서 복음이십니다(23절).

복음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미래지향적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새창조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변화시킬 수 없어서 

그냥 죄를 없던 것으로 덮어주고 끝내는 무기력한 구원의 도가 아닙니다. 

대속의 십자가, 칭의의 십자가는 

죄인의 내부에 침투하여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전능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들의 목숨을 걸고 하신 맹세(유언)입니다.

주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유언이 헛되지 않음을 

복음의 증인들을 세워서 증언하십니다. 

복음을 하나님께서 직접 전하시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하심으로써, 

복음이 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복음의 증인들은 마땅히 이 능력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복음대로 살아내는 능력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주 성령님으로부터,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로부터, 

그 사도들로부터 믿음을 전수 받은 우리 믿음의 아비들로부터,

결국 우리들에게, 바로 나에게 전수되었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런 자는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꾀와 힘으로 하려고 하기에 

오히려 복음의 능력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약삭빠른 자는, 자기를 포기할 수 없는 자는,

스스로 강하고 능력 있다고 자처하는 자는,

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닌, 자기 안에 새롭게 바뀐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줄 수 없습니다.

너무 강한 자아가 예수님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과 강함을 보여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오직 미련한 자가, 자신을 약하고 부족한 자로 여기는 자가, 

십자가의 도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31절). 

바로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복음을 진실 되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 복음을 증언하기에 합당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는 자랑이 저에게 풍성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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